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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itas May 23. 2024

풍선 같은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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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집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풍선 폭탄 같은 존재였다. 나는 집 앞에 서면 현관문에 귀를 대곤 했다. 눈칫밥 짬이 어느 정도 찬지라, 현관문 너머의 작은 소리 하나만으로 그 너머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면 그 추측의 확률은 더 커진다. 굳이 누군가를 마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돌아가 쉬고 싶은 편안한 공간이, 나에게는 한없이 불편해 그냥 잠만 자고 아침이면 바로 뛰어나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지금도 그다지 그 집에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 집이 생겼다. 은행 돈으로 빌린 집이지만, 앞으로 2년간은 날 평안하게 해 줄 집.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이 통솔할 수 있는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나에게 평생의 숙원 중 하나였다. 나오기 전에도 항상 느꼈던 것이지만, 나오고 나서야 더 뼈저리게 느낀다. 더 빨리 나왔어야 했다고.


혼자 산 지 1년도 안되었다.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의 안온함이 벅찰 정도로 감개무량하다. 누군가는 뭐 혼자 사는 게 대수냐 좀 비웃을 수도 있겠다. 그 비웃음에 나는 함박웃음으로 답할 정도로 거리낄 것 하나 없이 만족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내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 창 밖의 여전한 풍경들을 매일 색다르게 감상하는 것. 이 모든 것에 하루하루 감격스럽다.


혼자 살기 시작하며, 항상 이렇듯 좋은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뜻밖에 사고에 홀로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가던 그날 나는 많이 울었다. 원래도 의지할 곳은 없었지만 그제야 진정으로 느꼈다. 진짜 혼자가 되었네,라고. 원래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득 현실로 다가오니 좀 서글펐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그 사고가 한때는 원망스러웠지만, 지금도 그 분함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감사한 부분도 있다. 혼자 걸어갈 수밖에 없는 그 절망의 무대를 그들이 꾸려주었다는 사실이 고맙다.


사고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이 아픔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고 또 이 시기를 무탈히 지낼 방법을 하루하루 끊임없이 강구하는 중이다.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나의 공간이 나를 위로해 주고, 나를 도닥여준다. 내 안식처이자 도피처. 나는 나만의 공간 속에서 허무를 깨닫고, 이 감정 안에서 비로소 평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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