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이 되어가던 경영 컨설턴트. ‘우리’가 되다

여러가지의 '우리'가 되는 여정 #01

by 여러가지

MBA 학위 취득 이후, 잠깐의 직장생활을 거쳐 경영이라는 타이틀로 주로 비영리를 포괄하는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프리랜서의 삶을 산지 올해로 5년이 되어간다. 그간 업무상 나에게 붙여진 호칭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멘토, 컨설턴트, 연구원, 교수, 심지어 전문가까지... 각각의 호칭에 맞게 가지고 다니는 명함만 4~5가지다. 내가 직접 만든 명함은 하나도 없지만 나를 불러주는 호칭대로 여러 기업 또는 기관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명함의 가짓수가 한해, 두해 늘어만 간다.


하지만 그렇게 ‘불려지는’ 호칭대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부끄럽기만하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런 호칭과 명함은 나를 직간접적으로 불러주는 사람들(클라이언트)을 안심시키는 장치, 즉 돈을 지불해도 된다는 시그널일 뿐, 그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는 내 스스로도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딱히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망쳤던 경우는 없다. 오히려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수고했다는 격려, 또 한 번 같이 일을 해보자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여타 프리랜서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업무와 용역으로 한해 한해를 버틴다. 하지만 격려와 재호출과 상관없이 그런 호칭들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내 스스로의 만족도는 그리 크지 않다. 나의 이름 석 자 뒤에 붙는 ‘불려지는’ 호칭들을 내 스스로 자신있게 ‘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아마 깊이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깊이의 문제는 다시 지식의 깊이와, 관계의 깊이로 나눠질 수 있을 것 같다.


지식의 깊이의 문제는 내 스스로 컨설팅이나 연구 용역을 수행하면서 자주 쓰는 용어, ‘돌려막기’와 ‘쳐내기’ 등으로 대별될 수 있다. 동시간 대에 여러 가지 업무나 용역을 진행하다 보면 시간에 쫓기기가 다반사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 보다는 비슷비슷한 기존의 결과물들로 돌려막게 되면서, 결국 그 끝은 일의 성공적인 완수가 아닌 별 탈 없는 쳐내기로 마무리 된다. 물론 이러한 행태가 노하우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노하우라기보다는 꼼수에 가깝다.


관계의 깊이의 문제는 다시한번 내 식의 용어로 표현할 수 있는 ‘치고 빠지기’에서 기인한다. 멘토링, 컨설팅, 연구, 이러한 업무들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다. 멘토링의 경우, 멘토링을 받고자 하는 기업으로부터 직접 의뢰받는 경우보다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매칭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보통 그 기간이 1년 미만이다. 컨설팅이나 연구 용역은 경영전반을 다루는 자문이이라기 보다 특정 경영현안을 진단 또는 해결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매우 구체적인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 기간 또한 1년을 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멘토링, 컨설팅, 연구에 임하는 나의 자세와 시야는 함께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나홀로 치고 빠지기 바쁘다. 물론 이러한 행태가 전문가의 원포인트 레슨 정도로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진정한 전문가의 의견제시라기 보다 전문가인척 하는 빠꿈이의 전문가로 보이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그렇게 나를 부르는 고상한 호칭 뒤에 숨어 스멀스멀 올라오는 꾼의 모습... 이것이 최근 몇 년간 이 영역에서 내가 느끼는 죄책감이며 부채의식이다. 내가 시치미 뚝 떼고 아무렇지도 않는 듯 가만히 있다 해도 뭐라 할 사람도, 뭘 물어내라 할 사람도 없지만 그냥 마음이 무겁다. 나를 속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렇게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싶다.


이런 고민을 안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중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3년 전 1년간 멘토링을 진행했고, 간간이 컨설팅을 지원했던 여러가지협동조합에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전문인력지원사업을 활용하여 전문인력으로 함께 일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제안을 받고 내가 지금까지 벌려놓은 일들과 시간의 안배가 가능할까 에서부터 시작해서 정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망설임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나만의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떨쳐낼 수 있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설레임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불완전하고 가식적인 호칭을 떨쳐내고, 온전한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보다 깊이 있는 관계로 ‘치고 빠지지’ 않고, 조직의 경영 현안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돌려막지’도, ‘쳐내지’도 않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런 설레임 말이다.


물론 여전히 ‘전문’인력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다. 1년이라는 시간적 한계도 여전하다. 하지만 여러가지협동조합과 처음 맺었던 멘토, 멘티의 관계, 컨설턴트, 클라이언트의 관계가 친구의 관계로 유지되고 확장되어가고 있는 지금, 그런 부담감은 서로 ‘함께’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믿음과 자신감도 있었다.


여러가지협동조합의 설립 취지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책임지고, 결코 이윤만을 탐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커서도 일할 수 있는 사업체를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 된다.

우리는 함께 갈 것이고, 항상 진보할 것이며, 동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다.


사회적경제 경영 컨설턴트로서 꾼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나. 이제 여러가지협동조합의 ‘우리’가 되어 ‘함께’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