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enna Vark Jul 27. 2022

브러쉬드를 브리티쉬로 읽는 자의 삶이란.

성인 난독증의 일상


동글동글하지만 끝이 살아있는 음성의 힘


우리 모두에겐 자신의 결핍 한 방울을 섞어 만든 이상향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엔 유튜브 '지식 play'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전직 아나운서 김지윤 님이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소설이나 문학작품보다 사회, 문화 관련 서적을 좋아했다고 한다. 취향부터가 나의 취향저격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 수재들만 갈 수 있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며 UC버클리에서 공공정책학으로 석사를, MIT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것 봐라. 시작점부터가 학벌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나의 결핍을 콕하고 찍어 낸다.



그녀의 빛나는 지성미와 더불어 그녀에게 한 가지 더 부러운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어 전달력이다. 그녀의 음성엔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정치와 같이 다소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전달할 때도 그녀의 음성 덕분에 포용력으로 아우러진다. 그녀는 나보다 10살이 많으니 정말 롤모델로 딱이지 않은가. 분야는 다르겠지만 나도 그녀와 같이 나의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지 하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다짐을 해본다.


그녀에게 또 다른 한 가지 부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한 문장 안에서 다수의 고유명사를 전달할 때 느껴지는 스마트함이다. 나에겐 단어로 만들어진 지식은 블러 처리가 된 이미지의 잔상과 같아 그녀의 단어처럼 뾰족함이 없다. 적절한 시점에 입 밖으로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이미지만 머릿속을 동동 떠다닌다고 할까. 그래서 안다고 말하기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들이 많다. 나에게 많은 지식들 역시 그랬다. 캐플러의 공식을 이해해서 교내 과학 경시대회 최우수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국어 시간에 대사 몇 마디뿐인 단역 배역을 소화하거나 윤동주 시인의 시를 외운다거나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아는 것과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이 누구보다 큰 사람, 그것이 바로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우 난독증 중에서도 해독(decording ) 과정에서 지체가 발생하는 경우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랫동안 책을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어왔다.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법 리듬감을 가지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난독증의 증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성인 난독인의 일상


7월, 내가 일하고 있는 브랜드에선 한창 가을 상품들이 들어오고 있다. 신상품이 입고되는 월요일엔 새로운 매장 레이아웃으로 정신이 없는데 그중에서도 신입인 나 때문에 더 정신이 없을 것이다. 우리 매장에는 우리 브랜드 10년 차 점장님 1명, 2~3년 차 대행자 2명, 그리고 4개월 차에 접어든 완전 신입이지만 대행자인 나, 이렇게 4명에서 매니지먼트팀을 구성하고 있다. 요즘 매장들은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 무선주파수를 이용해 대상을 식별하도록 하는 기술)를 이용해 물류를 처리하는데 첫날, 나는 이 RFID(알에프아이디)를 보고 프라이드라고 읽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영어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면 저렇게 간단한 영어 단어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사실은 나에 대한 많은 정보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지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 그들이 나의 토익점수를 몰랐다면 나를 비웃었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우리 매장에서 가격 인하 제품을 담당하고 있는데, 주 업무는 날짜에 맞춰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격이 떨어지는 상품의 가격 안내표를 교체하고 변경된 가격표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다. 가격은 고객들의 구매 선택에 있어 민감한 정보이기에 우리 회사에서 중요하게 관리하고 있다. 가격 변동이 있는 날이면 조례 때 가격 인하 제품의 상품명과 위치에 대해 간략하게 브리핑을 해야 하는데, 내 머릿속에선 고유명사인 제품명이 둥둥 떠다니기만 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신입으로 어필하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순간에 제품명이 정확한 단어로 구현이 되지 않아 난처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운 신상품으로 브러쉬드(Brushed) 저지 ooo제품이 들어왔다. 나는 피팅룸을 보고 있는 스탭에게 "창고에서 브리티쉬(Brithsh) 저지 ooo제품을 가져와서 보충 작업해주세요."라고 너무나 당연한 듯 말했는데 창고에서 돌아온 직원은 브리티쉬 저지요? 혹시 브러쉬드 저지 말씀하신 건가요?라고 내게 되물었다. 그 순간 한글로 쓰인 브러쉬드를 브리티쉬라고 읽은 내 눈을 찌르고 싶어졌다.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싶은 나지만 이렇듯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빈틈을 마주하게 된다.



난독증으로 인해 글을 잘 읽지 못하고 받아쓰기를 잘하지 못해 일으키는 학습결손 따위는 사실 표면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한 난독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자기 불신이었기 때문이다. 인지적 구두쇠인 우리 뇌는 믿는 대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몇 가지 단서만을 가지고 새로운 인물이 창조해내기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난독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과 재능을 뒤로하고 매일 마주하는 하게 되는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나'에 자아상의 포커스가 맞춰진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온전히 단단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사회나 타인의 평가로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유추하게 되는데, 자신만의 재능의 성을 쌓아보기도 전에 이미 조금 모자란 사람, 애매한 사람 혹은 실패한 사람, 무엇보다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난독증의 실체다.




있는 그대로의 온전히 나를 수용한다는 것

BTS의 노래 '아이돌'의 가사처럼 우리 속 안엔 몇 십 몇  백명의 우리가 있다. 하지만 영화 ‘뷰티 인사이트’ 남자 주인공인 우진처럼 매일 아침 달라지는 자신의 얼굴 중 가장 건장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거울에서 확인한 날이 되어서야 여자 주인공인 이수에게 다가가 고백하듯 우리 모두는 가장 완벽하고 근사한 얼굴로 타인과 세상을 마주하고 싶어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경험으로 채워가는 동안 불안을 느끼지 않으며 온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자아)라는 명확한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하여 나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믿는 것엔 나름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 이해의 과정과 그것을 뒷받침해줄 증거가 필요하다. 불안은 감정이기 이전에 감각이다. 감정은 과거에 대한 나의 경험의 결과이지만 불안은 직감이자 본능에 가깝다. 내가 사회 속에서 어디쯤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실 굴곡 없이 온전히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흐릿해도 괜찮아.


얼마 전 승급 시험을 보기 위해 준비하던 중 지난번에 승급시험에 떨어져 이번에 나와 같이 시험을 보게 된 한 사수가 점심시간에 자신이 보고 있던 부분에서 문제를 하나를 갑작스럽게 나에게 냈다. (6개월에 한 번씩, 1년에 2번 승급시험을 볼 수 있다.) 우리 회사가 지속가능성을 위해 하고 있는 여러 사회사업 중 하나를 묻는 문제였는데 흐릿하게 알고 있는 내가 정확한 단어로 말하지 못하자 “어 내일이 시험인데 이런데 통과하겠어요?” 라며 농담 반 진담 반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보통 나는 그런 상황에선 찐 INFP처럼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버버 거리게 되는데  그날은 무슨 일이었는지 대뜸 ‘전 통과하는 게 아니라 백점이 목표예요. 우리 시험 보고 나서 말해요. 제가 토익 960점을 그냥 받은 건 아니랍니다.’라고 웃으며 받아친 것이다. INFP인 나에겐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 사수는 82점 턱걸이로 시험을 통과했고 나는 50문제 중 3문제를 틀려 94점으로 최고점을 받으며 승급시험에 통과했다. 덕분에 내가 한 말 중 절반은 챙길 수 있어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참 애매한 사람이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운동을 잘한다고 하기에도, 리더십이 있다고 하기에도 뭔가 뜨뜻미지근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지식들 역시 뭔가 끝이 무뎌서 안다고 말하기에도 모른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감각의 것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마치 데뷔 가능성이 있어 보일 듯 없어 보일 듯 애매한 아이돌 연습생만냥 나 역시 나의 인생을 걸고 케스팅 오디션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남들이 말하는 그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말이다.




아는 것 같지만 모르겠고
모르겠지만 알 것만 같은, 그 미묘한 접점에서


사실 나는 정말 내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하는 내가, 매일매일 꼬박꼬박 책을 소리 내서 읽는 내가, 쉬는 날에 도서관에 와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귀요미 회사 승급 시험에도 전력질주를 하는 내가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트루맨쇼의 짐 캐리를 생각해보자.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본다면 벌써 포기할 만도 한데 마흔두 살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여전히 꿈에 대해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사랑스럽지 않을까. 학창 시절 나에게 단 한 번도 일등을 허락하지 않았던 나의 스터디메이트이자 절친이 말했다. 요즘 내 주변에서 너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없다고.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의사들과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 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흐릿하고 뭉툭하지만 있는 그대로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이 든 건 최근에 들어서다. 나는 내가 늘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만큼 잘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생각해보니 여전히 조바심이 완전히 살아진 건 아닐 테니 조바심이 나는 순간이 줄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노바디, 옷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매 순간 나는 진심을 다 해 내게 주어진 생의 숙제들을 풀었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했듯이 밀도 있게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깐.


자신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 단순한 조언을 가슴으로 이해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나의 욕망과 결핍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자아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도 필요했다. 그리고 생리학적 관점에서의 자극, 반응 그리고 변화에 대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 사회학자이며 아비투스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뇌뿐 아니라 주름 몸짓 말투 억양 발음 버릇 등 우리를 나타내는 모든 것에 기록된 몸의 역사’라고 했다. 우리는 타고난 취향 가치관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이 닮고 싶은 역할을 배우고 행동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연기가 아닌 타고난 본성처럼 보이게 된다. (책 아비투스, by도리스 메르틴) 그러므로 나는 나의 출발점이 어디든 상관없이 나의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오늘 움직인 동작은  몸에 새겨질 것이고 오늘 웃은 미소는  얼굴에 새겨질 것이며 오늘 읽은 좋은 문장은 나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나의 배경이 어떠하든 나의 타고난 신체적 특징이 어떠하든 나는 원하는 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올바른 방향일  속도가 아니다. 당신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무엇이든 얻을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