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탈리아산 로망

일상은 누구에게나 시지포스의 형벌

by Sienna Vark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Call me by your name>이다. 시원한 파란 포스터와 함께 노란 필기체로 가볍게 날리듯 함부로 써놓은 글씨체. 화면 가득한 목가적인 분위기. 지금 나의 삶과 다른 공간과 삶의 방식.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탈리아 북부 크레마(Crema)와 시르미오네(Sirmione)의 오래된 도시 풍경. 언제든 필요할 때 집 앞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필요한 서류를 폰으로 발급받고 쿠팡으로 새벽 배송을 받으며 에어컨 바람 밑에서 시원하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러니하게 나는 이탈리아 오래된 소도시의 목가적인 삶을 꿈꾼다.


20대의 나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책들에 빠져있었다. 그녀의 문체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 단정했다. 힘이 들어간 문장도 없이 담담하게 사실 과정을 서술한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역사학자가 아닌 그녀의 책은 역사 교양서쯤 되는데, 특정 인물에 대한 편애와 부정확한 사료 때문에 학문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교양서로는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물론 10권이 넘는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번역가이신 김석희 님의 공로가 크지 않을까 한다.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녀의 역사관 때문에 좋아하던 마음이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역사에 관심이 없던 백지상태인 나에겐 그녀의 책은 읽기 쉬운 입문서였고 그녀의 책들 덕분에 이탈리아는 평생 나의 로망이 되었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였을까.


뉴욕과 상하이의 빌딩 숲을 볼 때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부산의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해운대 마린시티만 보아도 커튼월 건물 특유의 반짝임은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바다가 보이는 태양 아래 화려하게 반짝이는 도시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그 건물이 가진 상징성 역시 만인이 동경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취의 압박이 온몸을 타고 전해진다. 그곳의 삶의 방식과 존재에 대한 태도는 성공한 자의 것인 만큼 냉혹하고 차갑다. 나의 경우엔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에 나오는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이 생각이 난다. 아무나 예약할 수 없는 레스토랑인 도르시아, 발렌티노의 정장과 아르마니 넥타이, 올리버피플스 안경테.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세련된 명함 베틀.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도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Mass)으로 존재하는 외로움이다. 우리의 삶 속엔 시대의 모습이 변해도 영원히 반복되는 감정의 서사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 살았던 5층짜리 아파트에선 모두가 이웃사촌이었다.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몇 명이나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 학교에 다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열쇠를 두고 온 날에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까지 나를 돌봐주셨고 엄마가 늦게 오시는 날엔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젠지 스테어(GenZ stare)라는 밈이 나올 만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연결에 대한 피로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결은 많아졌는데 질적인 연결은 줄어든 세상.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는 세계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쩌면 나의 이탈리아 로망은 진짜 이탈리아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환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익숙한 형태로 내면화한 결과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데이터가 많은 이탈리아로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고대 로마는 경이롭고 매력적인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고, 르네상스 문화는 여전히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으며, 다른 나라보다 도시국가로 존재했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도시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그곳에서 이제는 희미해진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과 <루카>만 보아도 우리가 진짜 인생에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토스카나 지역의 농가 민박 피드를 보곤 또 가고 싶은 곳이 추가 되었다. 낮은 언덕에 높게 자란 사이프러스 나무길, 그 끝엔 붉은 벽돌집. 모든 것이 완벽했다. 곧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올 것만 같았다. 호텔처럼 세련된 공간이 아니지만 시골의 할머니 집과 같은 정겨움이 묻어나는 그곳은 굳이 차를 빌려서라도 경험하고 싶을 만큼 특별함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동경하는 이탈리아는 실제의 이탈리아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각인된 ‘잃어버린 여유의 표상’일지도 모른다. 이제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고 해도 여름엔 에어컨이 없는 곳에선 5분도 머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도시가 제공하는 쾌적함 없는 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미루어 보건대 삶이 아닌 휴가 정도일 것이다.






잘 편집된 한 장의 사진 속엔
진짜 삶의 고달픔이 생략되어 있다.



누군가는 한국인의 삶을 동경할 것이다. 분명 우리의 삶은 경제적 물리적 조건으로 보면 아주 훌륭하다. 그럼에도 프라이버시와 동시에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고 필요 이상의 소비에 집착하며 타인과 끝없는 비교 경쟁 속으로 내몰린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유럽의 작은 소도시의 여유가 부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내가 만든 환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상은 누구에게나 시지포스의 형벌일 테니까. 어쩌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소도시에 있는 나’가 아닌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시각으로 순간을 천천히 음미할 기회가 아닐까 한다. 점점 빨리 감기가 되어버린 효율의 일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효율 그 너머의 삶. 덜어낼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