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산적인 연애를 한다.
우리에게 연애가 어려운 건 모두가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의 단점은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남의 단점은 문제가 되며, 적은 노력을 투입해서 큰 결과를 바란다. P양도 그렇다. 자기는 애매하게 다가가면서 상대는 뭔가 확실하게 내게 말해주길 바라고, 자기가 콩깍지가 벗겨져 시들해지는 건 그럴 수 있고 상대가 그러면 마음을 가지고 논 것만 같다. 자꾸만 흐지부지되는 썸이 싫다면, 좀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전략을 가지고 치밀하게 다가가자. 당신이 똑 독한 것만큼 상대도 똑똑하니 말이다.
작년부터 두 번의 썸이 연이어 망하고 나서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님께 조언을 구해요. 첫 번째 썸은 동호회에서 만났는데 저를 따로 챙겨주고, 제가 허니버터칩먹고 싶다니까 다음 모임 때 구해서 선물해주고 뭐 그러긴 했는데 두어 번 영화는 봤지만 별 진도도 나가지도 않고 결국 혼자 관심 있던 기간이 오래되니 콩깍지가 벗겨져 쟤는 상대를 배려하는 게 좀 부족한, 남자 친구로서는 별로인 아이구나 하고 그때서야 관심이 잦아들었어요.
연애는 분명 감정적인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감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크든 작든 다들 어느 정도의 계산을 하고 상대에 따라 태도와 노력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사랑이야!"라고 할지 몰라도 P양의 사연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같은 또래고 분위기 있는 목소리, 그리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모습에 호감을 느꼈지만 그 이상의 대시가 없으니 금세 시들해져 버리지 않았던가? P양 조차도 첫 번째 썸남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P양에게 하는 행동에 따라 마음이 변하지 않았나? 제발 본인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면서 본인은 "아직 상대방의 마음을 잘 모르니까!"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상대방에게는 '진짜 사랑'이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나 정밀한 계산기가 한대씩 장착되어있다. 썸이 시작되면 이 계산기는 바쁘게 작동하는데 이 계산기의 목표는 하나다. "나의 노력과 애정은 최소한으로 투입하면서 상대에게서 최대한 많은 노력과 애정을 뽑아내는 것"
이러니 애매한 사람들끼리 썸을 타기 시작하면 진전이 안되는 거다. 쉽게 말해 서로 비슷비슷하니 자기가 더 노력하고 애정을 표시하면 손해인 것 같으니까 서로가 주저하게 되고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계가 싫다면 압도적인 매력을 갖던가 본인보다 훨씬 별로인 사람을 만나면 되겠지만 이건 또 썸 계산기가 용납을 안 한다.
상대가 애매하게 나오고 자꾸만 재는듯한 느낌을 주는 것을 불쾌히 여기지 마라. 어차피 당신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썸 계산기에 의한 매우 자연적인 현상이니 말이다. 그러니 괜히 토라지고 빈정 상해하지 말고 머리를 써라.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썸 계산기에서 긍정적인 계산 결과가 나오게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사실 첫 번째 썸남은 그냥 그랬는데... 문제는 두 번째 썸남이었어요... 친구들과의 술자리서 알게 되었는데... 저를 많이 챙겨주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관심이 있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여자 친구가 있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자주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여자 친구 얘기도 잘 안 하고 좀 힘들다고만 하고 자꾸 제게 연락하는 걸 보면서 저에게 호감이 있구나 하고 멋대로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나 자신에게 이로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때론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한다. P양의 경우가 그렇다. P양은 여자 친구도 있으면서 자신에게 잘해주는 남자를 "아! 여자 친구보다 내가 더 좋구나!"라고 판단했지만 사실 객관적인 판단은 "여자 친구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찝쩍거리는 남자"다.
연애할 때 특히나 애매한 썸을 탈 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경계해라. 상대에게 호감은 있으나 서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는 않는 상황에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자꾸만 상황을 미화하고 내가 편한대로 판단을 하게 만든다. "이게 무슨 연애고 사랑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라. 그게 바로 상대방의 생각이다.
P양 입장에서는 "그래도 이건 좀..."이라고 생각이 되겠지만 일침을 하자면 상대방은 P양이 자신을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골격 하고 체형이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정도랄까요?"라고 생각 다는 건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러니 상황판단은 최대한 냉철하게 하되 티를 내지는 마라. 자신의 노림수가 들켰다는 걸 알면 상대는 더욱 소극적으로 나오거나 썸 자체를 포기해버릴 것이니 말이다.
"이게 만약 진실이라면 이런 썸 안 탈래!"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자.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썸 계산기를 통해 계산을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상대의 입장과 생각을 받아들인 다음 그 상황에 맞는 대응책을 세우는 거다.
어쩌다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두 번째 썸남이 자길 좋아하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는 어쨌든 여자 친구가 있는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고... 혹시 자기가 오버하는 거면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뭔가 저에게 고백을 유도하는 느낌도 들고... 자존심도 상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착각하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돌아와 버렸네요. 연애를 너무 오래 쉬었던 걸까요? 정말 이제 썸 타는 것에도 자신이 없어지네요...
P양은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내가 보기엔 저 타이밍이야말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P양이 느낀 대로 두 번째 썸남은 자기가 고백하긴 싫고, P양이 뭔가 결정해주길 바라며 결정과 책임을 P양에게 넘긴 거다. 이때 P양의 현명한 행동은 "응?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몰랐어? 난 너 좋은데~?"라며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는 거다. (임자 있는 남자를 유혹하는 건 연애 상도덕에는 올바른 선택은 아니지만 지지부진한 썸의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에만 집중해서 설명하는 것이니 읽기 불편해도 양해를 구한다.)
상대는 저렇게 지지부진하게 나오는데 나 혼자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활수 있겠지만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나나 상대나 서로 치열하게 썸 계산기로 계산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썸 계산기는 내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에만 노력과 애정을 투입한다. (당신이 그러는 것처럼!)
고로 진짜든 가짜든 내가 노력과 애정을 투입하면 상대는 내가 투입한 만큼은 아니지만 노력과 애정을 조금 더 투입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인간이란 참 별것도 아닌 일에도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만약 저 순간에 P양이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다면 오히려 두 번째 썸남은 당황하며 새로운 계산을 하고 P양에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진짜든 가짜든 상대방의 썸 계산기로 하여금 노력과 애정을 더 투입해도 괜찮다는 계산이 나오도록 유도해라. 사랑과 연애는 달콤하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사랑과 연애를 하는 주체인 인간은 치졸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라는 거다. 잊지 마라 사랑은 문학보다 수학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