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다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솔직히 K양의 사연을 보고 제일 먼저 생각이 들었던 건... "이걸 뭘 어쩌라고..."였다. K양과 남자 친구의 사랑은 애틋할 수 있겠으나 상황이 참... 내가 봐도 이 정도인데 K양은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이럴 때에 어느 정도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좋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노력하면 될 거야!"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면 K양의 괴로움만 커질 것이고 그런 K양을 바라보는 남자 친구의 마음도 좋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영국에서 만나 저만 한국으로 들어오고, 남자 친구는 지금 영국에서 유명 건설회사에서 설계일을 하고 있어요. 무엇이든 한번 집중하면 몰입을 하는 성격이라 바쁠 땐 연락도 잘 안되긴 하지만 서로의 끈끈한 신뢰 덕에 벌써 2년째 사랑을 이어오고 있네요. 문제는 회사일이 갑자기 바빠지면서 남자 친구가 너무 힘들어한다는 거예요... 영국에 있을 때에는 서프라이즈 방문도 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고...
한국과 영국... 시차만 8시간의 극악의 조건에 더욱이 남자 친구가 바빠지다니 정말 극악의 조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권태의 느낌은 보이지 않다는 것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소리일 뿐 현실적으로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K양을 비롯해 많은 커플들은 사랑하고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나이도 숫자일 뿐이고 역경은 함께 노력하면 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강연이나 글로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먹고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어디 현실이 그렇게 쉽던가? 바로 옆동네 살아도 바람피우고 권태기 오고 성격차이로 헤어지는 판국에 장거리에 과도한 업무까지 겹 친상 황이 어찌 쉽겠는가?
"상황이 좋지 않으니 포기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 푹 빠져서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라는 거다. 오히려 그런 맹목적인 희망과 믿음들이 현실의 연애를 더 망가뜨린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랑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계속 나빠지는데 마냥 "서로가 노력하면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희망과 믿음은 K양과 상대방 모두를 지치게 만들 수 있다.
차라리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현실을 인정하되 바로 앞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이별을 맞게 되면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억지를 부리다가 상대와의 관계 전체를 망가뜨리기보다 일단은 이별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상황이 나아졌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 좋다.
회사생활이 생각보다 힘든가 보더라고요. 매일 공부만 하던 사람이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실수투성이일 테고... 게다가 은연중에 인종차별도 받는듯했어요. 저번에는 너무 심하게 질책을 받아서 자존심에 너무 큰 상처를 받곤 자기는 무능한 쓰레기라며 울더라고요... 처음엔 다 잘될 거라고 위로를 해줬었는데 매번 힘들다고만 하니까 이제는 위로해줄 말도 없고... 정말 남자 친구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뭐라 위로해줘야 할지 곤혹스러워요...
지금 K양의 방식은 분명 여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에는 정말 좋은 방식이다. 상대의 기분에 공감해주고 긍정적인 말들로 상대를 위로해주기! 여자들이 힘들 때 가장 바라는 대처다! 하지만 남자에게도 그럴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K양의 방식은 힘들다고 남자 친구에게 칭얼거리는 여자 친구에게 "야! 그건 네가 잘못했네~!"라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남자와 같다.
남자가 우울할 때에는 공감과 위로를 하지 마라. 뼛속부터 이성적으로 구성된 남자 입장에서는 공감과 위로는 무의미할뿐이다. 물론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공감과 위로의 말을 들어도 상대가 노력하는 건 알겠지만 남자의 머릿속에서는 "저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그런다고 달라지나...?"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남자가 우울해할 때 듣고 싶은 건 "많이 힘들지...? 다 잘될 거야 걱정 마"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진부한 공감과 위로가 아니라 "오빠 나와! 술 한잔 하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주기적으로 우울의 늪에 빠질 때가 있는데 나 또한 그때마다 주변 지인들에게 칭얼거린다. 그때마다 "오빠 힘내요! 오빠 잘할 수 있으면서!", "잘될 거야! 바로는 강하니까!", "오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데!" 등의 응원의 메시지를 받지만 솔직히 고맙긴 하나 오히려 더 씁쓸하기만 하다. 그럴 때마다 가장 힘이 되었던 문자는 "오빠, 나 가로수길, 나 친구랑 있는데 나와요!"나 "아씨! 나 집들 가고 있었는데! 우울증 환자야 나와라 형이 쏜다!"였다. 남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해주지 마라. 남자는 공감과 위로보다는 현실적인 설루션 혹은 기분전환에 마음이 움직이니 말이다.
물론 K양 입장에서는 "자기야! 우울해? 빨리 한국 와!"할 수 없으니 난감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공감과 위로보다는 기분전환에 포커스를 맞추면 얼마든지 남자 친구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다. 나 또한 왕복으로 10시간 거리의 장거리 연애를 해봤는데, 한 번은 우울 시즌이 도래하여 하염없이 우울의 늪에 빠져있었다. 나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괜히 여자 친구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할 수밖에, 그때마다 여자 친구는 마치 이등병에게 휴가증을 발급하듯 사진을 보내줬는데 내게는 참 큰 힘이 되었었다.
K양은 "셀카는 저도 많이 보내줬었는데..."하겠지만 평범한 셀카 말고 내가 말하는 사진은 연인끼리만 간직할 수 있는 사진들을 말하는 거다. 혹시... 연인끼리만 간직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말에 K양이 너무 멀리 나갈까 봐 말하는 거지만, 타이트한 원피스, 섹시한 오피스룩, 비키니 뭐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남자 친구가 또 우울 한말을 꺼내면 통하지도 않는 공감과 위로 말고 차라리 금일봉 하사하듯 K양의 사진을 보내며 "오빠 힘내면 내가 한 장 더 보내주지~"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남자 친구 선물사 줄 돈으로 차라리 스튜디오 가서 콘셉트 사진을 왕창 찍어놨다가 한 장씩 보내줘 보는 건 어떨까?
남자 친구는 올 거면 말만 하라고 자기가 휴가도 내고 비행기표도 예매해준다는데... 그 돈을 남자 친구가 어떻게 벌었는지 다 아는데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해달라고 하나요... 또 항상 일에 치여사는 사람인데 휴가 내 기도 쉽지 않을 거고... 가까이 있질 못하니 너무 힘들어요...
참 보기 좋다! 시차 8시간과 쏟아지는 업무를 뚫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지금 남자 친구 입장에서 K양의 왕복 티켓 비용과 K양과 함께하는 시간 중 무엇이 더 소중할까? 물론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면 그만큼 K양도 준비해 가면 되는 거다.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 책, 선물도 사고 무엇보다. 영국에서 입을 특별한 옷(여기까지만...)들도 준비해보자.
남자 친구를 부담스럽게 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남자 친구를 기쁘게 해 줄 방법을 고민하자. 매일 만날 수 있는 사이도 아니고! 자신이 부담할 수 있으니 하는 말일텐니 확실히 부담을 줘도 괜찮다. 대신 영국에 가면 요리도 해주고 어깨 도주 물러 응? 응? 확실히 잘해주고 기쁘게 해주면 되는 거다.
그리고 남자 친구와 영국에서 스냅사진을 많이 찍어놨다가 한국에 와서 K양의 사진과 함께 예쁘게 편집해서 잡지처럼 인쇄를 해서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커플 잡지'라고 검색해보면 사례들도 꽤 있던데 참고해보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쁜 연애를 이어가는 K양 보기 참 좋다! 현실을 인정하되 너무 우울해할 필요 없이 당분간은 너무 멀리 보기보다 바로 앞을 보며 앞으로도 밝은 연애 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