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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로맨스 May 30. 2017

연락이 드문드문한 썸남, 어장관리일까?

상대가 왜 애매하게 나올까?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가 8살 때 처음으로 야구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가 끝난 뒤 폴 오스터는 그가 선망하던 야구선수를 만날 기회를 얻었고 오스터는 용기를 내어 사인을 요청했다. 야구선수는 폴 오스터에게 물었다. "그래, 근데 펜은 있니?" 불행히도 당시 폴 오스터와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펜이 없었고 야구선수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날 이후 폴 오스터는 어디를 가든 펜을 챙겨 다녔다고 한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펜을 챙겨 다니는 게 아니다. 다시는 펜을 챙기지 않아 좋은 기회를 놓치는 일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혹도 마찬가지다. 사인을 부탁해놓고 그제야 펜을 찾는 폴 오스터처럼 많은 사람들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발견하고 나서야 상대를 어떻게 유혹할까?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유혹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가능한 거다. 상대가 왜 애매하게 나올까? 내가 준비한 매력이 상대에게는 부족한 거다. 



소개팅 후 엄청 적극적이지는 않았으나, 꾸준히 연락이 오길래 처음엔 큰 마음이 없었으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한 세 번쯤 만났을 때 어색함도 없어지고 가벼운 스킨십도 있고 그래서 뭔가 되는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연락은 드문드문... 뭔가 감정 유희당한 것 같고  잘되든 안되든 화가 나서 따졌어요. "xx야, 내가 처음부터 널 따라다닌 것도 아니고 이렇게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 이러는 거 이해가 안 돼, 니 솔직한 마음이 뭐니?" 그랬더니 썸남이 놀라면서 내일 만나자 하더라고요... (생략) 망한 썸인 건 저도 알아요... 근데 궁금한 건 저와 썸을 타다가 다른 여자가 생겼던 걸까요? 아니면 그냥 썸남에게 어장관리당한 건가요?
- 연락이 드문드문한 썸남에게 화가 난 B양


B양과 비슷한 케이스의 사연을 파티에서도 많이 받는다. 그녀들은 남자의 행동이 심히 불쾌하다는 듯이 남자를 사람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는 식으로 비난을 한다. 재미있는 건 내가 웃으면서 한마디를 하면 그녀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피하고 당황하는 표정으로 바뀌는데 그 표정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하여간 내가 그녀들에게 해주는 말은 이렇다.


"잘 봐, 내가 너랑 썸을 탔어. 직업도 괜찮고, 성격도 괜찮아, 근데 생긴 게 너의 데드라인에서 간신히 턱걸이를 해, 그리고 좀 썰렁해. 한마디로 애매한 거야. 결혼 상대로는 나쁘지 않은데 사귀는 건 좀 그래. 그래서 일단은 내가 만나자는 대로 만나줬어.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너한테 나는 진심으로 널 좋아했는데 왜 날 사랑하지 않냐고 화를 냈다고 생각해봐. 넌 무슨 생각이 들겠니?"


입장만 바꿔도 쉽게 해결될 일이다. "왜 나에게 애매하게 행동하지!?"라며 불쾌하기 전에 "나는 어쩔 때 애매하게 행동하지?"라고 생각하면 답이 나올 일이다. "나를 불쾌하게 했으니 썸남이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야!"라는 유치한 생각은 그만하고 한 번만이라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좋긴 한데 2% 부족함을 느끼고 애매하게 행동하는 사람과, 왜 날 좋아해 주지 않냐고 화를 내는 사람 중 누가 이상한 사람일까?"


B양의 큰 문제는 썸이 망한 원인을 자꾸만 외부에서 찾는다는 거다. 그냥 "아... 내가 썸남 입장에서는 좀 애매한 사람이었나 보네..."하면 될 일을 "지금 나 가지고 논거임?", "나랑 썸 타면서 다른 여자가 생긴 건가!?", "지금 나 어장관리당한 거!?"라며 분노를 해서는 발전이 없다.


앞서 소개한 폴 오스터의 일화를 떠올려 보자. 폴 오스터는 자신이 선망하는 야구선수의 사인을 펜이 없어서 받지 못한 후로 펜을 항상 펜을 챙겨 다닌다. B양처럼 폴 오스터가 "왜 사람들은 펜을 안 가지고 다니지?", "그 선수가 사인하기 귀찮으니까 펜 있으면서도 없다고 했었던 건 아닐까?", "팬이라고 사인을 부탁했으면 어떻게든 구해서 사인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지금 B양이 해야 하는 건, 애매한 썸남을 비난할게 아니라 다음 썸남에게 애매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력을 갈고닦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항상 펜을 챙겨 다니는 폴 오스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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