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게 해 줘
안녕하세요. 지금 2년째 연애 중인 20대 중반 남성입니다. 제 여자 친구는 굉장히 착하고 예쁘고 제게 다 맞춰주는 그런 천사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정말 딱 한 가지가 저를 힘들게 하는데요.. 그건 바로, 집착이 심하다는 거예요.. 사실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방관하는 스타일의 여자들만 만났었거든요. 제가 친구들을 만나도 간섭도 안 하고, 연락도 하루에 3번 정도만 하고, 서로 사생활에 터치도 안 했어요.
그런데 이번 여자 친구는 조금은 집착이 있는 편이라.. 솔직히 좀 좋았습니다. 이 사람이 날 이만큼 사랑하는구나.. 이런 게 진짜 연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여자 친구한테 이런 말도 했어요. 나한테 집착해 주니까 좋은 것 같다고... 그런데.... 그 한마디가, 그 짧은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여자 친구의 집착이 날로 심해지는 거 있죠! 항상 제가 어딜 가든 인증숏을 보내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몇 시에 들어갈 건지, 친구는 누구랑 만나는지 술은 몇 병을 마실 건지, 어디에서 노는지를 다 말해줘야 하고요. 만약 몇 시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왜 안 지켰냐며 엄청 화를 내곤 합니다..
솔직히.. 제가 초래한 일이라 딱히 할 말은 없는데요.. 계속 이러니까 너무 스트레스예요!! 그래서 제가 여자 친구한테 조금만 날 믿어주면 안 되겠냐고... 집착하는 건 별로인 것 같다고 말도 해 봤는데요. 그녀가 버럭 화를 내면서 처음엔 이런 모습 좋다고 하더니 이제는 자기가 싫어졌냐며 따지고 있습니다. 여자 친구는 좋은데.. 너무 좋은데.. 집착 때문에 날로 힘들어지는 저의 연애.. 어쩌면 좋죠?
- 국방 FM 건빵과 별사탕 사랑, 그게 뭔데 사연 K군
저도 K군처럼 여자 친구가 집착을 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어요. 그때도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데... 하면서도 K군처럼 뭔가 상대의 마음속에 오로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게 정말 사랑인가 싶었죠.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웨하스 의자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누군가를 어딘가에 가둘 거면 그곳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게 해 줘 자유 따윈 부여해서는 안된다고”라고요.
정확히 이런 기분이었죠. 세상에 단둘이 있는 기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해도 이 사람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이 사람이 날 지켜줄 것 같고 그러니 나도 힘들어도 모든 것을 이 사람에게 맞춰야겠다는 기분 말이죠. 정말 연애를 하면서 그렇게 몰입했던 기억이 없었을 정도로 오로지 그 친구뿐이었죠.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그리고 헤어질 때쯤 어렴풋이 헤어지고 나서 정확히 알겠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그 친구가 저라는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의 연애 스타일이었다는 걸요.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아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감정을 느껴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경험일 테니까요.
어떤 분들은 그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냐고 말할지 몰라요. 저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사랑이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그 방식이 그렇게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똑같이 행복감을 느낀다 해도 마약을 해서 얻는 행복감과 마라톤을 하다 느끼는 러너스 하이가 다른 것처럼요.
사실 이렇게 집착하는 스타일을 처음 만나면 불편한 것보다는 좋다는 기분이 먼저 드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건 뭔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막상 그 문제를 공론화하기가 정말 어려운 거죠. 상대가 오롯이 나에게 올인을 하면서 내게도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니 뭔가 공정하고 나도 그 기대를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거기에 일찍 들어가기로 해놓고 늦게 들어갔다던가... 이런저런 이성의 문제 등의 사소한 잘못들을 하게 된다면 K군의 머릿속에는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자 친구의 집착에 대해 더 아무 말도 못 하게 돼버리는 거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지만 집착은 많은 경우 그 사람의 성향이지 어떤 원인에 인해 발생하는 결과가 아니에요. 물론 이런저런 잘못을 해놓고 뻔뻔하게 “야! 그거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 너의 성향일 뿐이잖아!”라고 말하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여자 친구의 집착을 “내가 잘못해서야...”라고만 생각하면서 억지로 그 성향이 맞추려고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요. 오히려 구속이 답답한 K군은 사소한 것도 거짓말을 하게 되고 여자 친구는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집착과 구속을 정당화하며 더더욱 심해질 뿐이죠.
이때 가장 좋은 건 K군의 이런저런 잘못과 집착의 문제를 분리하는 거예요. 여자 친구가 이런저런 문제점을 들면서 집착을 정당화할 때에는 최대한 수용을 하며 부드러운 대화를 하시고 그다음 날 데이트를 하며 집착의 문제에 대해 조심스레 대화를 하시는 게 좋아요.
여기서 포인트는 상대는 이런저런 이유를 말하며 집착을 정당화하고 더욱이 흥분을 하겠지만 K군은 그것에 반응하기보다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여자 친구가 흥분을 하면 K군이 적당히 흥분을 가라앉혀주면서 K군의 입장과 생각을 이야길 하세요.
모든 대화는 차분한 사람 쪽으로 흐르게 되어있어요. 말로는 자기 말이 맞다고 하지만 흥분한 자신과 차분한 상대를 비교하며 차분한 사람이 좀 더 논리적이라고 느끼게 되니까요.
물론 이 과정이 무조건 여자 친구의 집착을 없애주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차분한 대화 과정을 통해 여자 친구는 무조건 자신의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K군의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하게 되고 K군에게 화를 내며 꺾기보다 대화를 통해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