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낯익음

두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조금 일찍 태어나 유난히 작았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에 비해서 조금 예민도 하고, 겁도 많아 잘 클까 염려되기도 했던 아이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세상에 대한 낯설어함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아버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든 생각이 많이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이의 할아버지였다. 내 아버지는 책을 좋아하 셨고, 야구를 좋아하셨다. 내 나이 18살 때 황망하게 천국 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나, 대화를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나도 이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내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나의 기억으로는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생일 때인가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야구 글러브를 사 오셨다. 더구나 그 야구 글러브는 왼손잡이인 내가 낄 수 있는 오른쪽에 끼는 글러브였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즐겨하는 걸 아버지 가 당신도 야구를 좋아하셨기에 글러브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 의 글러브도 사 오셔서 나와 캐치볼을 하셨다.


돌이켜보면 나와 아버지가 했던 유일한 놀이요, 스포츠요, 추억 쌓기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아이를 위해 해주었다. 그것도 둘이서만 하는 것보다는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불러서 함께 야구를 주로 하였다. 비록 테니스볼로 하는 야 구였지만, 내 아이는 내가 사준 글러브를 자랑스럽게 끼고, 내가 사준 배트로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하면서 조금씩 세상에 대해 낯이 익어갔다.


그런 아이가 목사를 아버지로 둔 덕분에 자기 나라도 아닌 독일에서 다시 낯선 아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독일 학교를 다니니 나보다는 독일에 낯이 익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다시 새롭게 낯섦으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그럼에도 너무나 고맙고 대견한 것은 그 후로도 수많은 낯섦을 만날 때마다 힘겹 게, 그러나 치열하게 낯섦과 싸우며 이제는 아이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16개월째 새로운 아버지로서의 낯섦과 싸우고 있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모든 것에 낯설어하면서도 잘 이겨낸 것처럼 아버지로서의 낯섦도 잘 견뎌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낯설지 않나. 우리는 항상 새로운 날, 새로운 시간을 대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낯섦을 따뜻한 낯익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처음으로 하는 아들과의 글의 대화라는 낯섦 역시 그렇게 낯익어 가리라.


3대에 걸친 추억을 AI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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