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타
정말 추운 날이다. 간만에 큰 추위를 느낀다. 실은 그마저도 잠깐 느끼는 추위이다. 어릴적에는 훨씬 더 추웠던 날들이 많았는데 어른이 된 후로는 덜 춥다.
편도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초중고를 통학하던 학창시절, 이런 추운 날 부모님 차를 타고 등교하는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교복치마에 아무리 타이즈를 껴신어도 칼바람이 살을 도려낼듯 매섭게 추웠다. 그때 살던 집도 웃풍이 심해서 겨울내내 추웠지만 그래도 다행히 바깥보다는 따뜻했다. 방에서도, 교실에서도, 나는 따뜻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길에서 걷기보다 차를 운전해서 다니고, 난방이 잘 되는 좋은 집에 살아 예전보다는 덜 추운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도려낼듯 시린 겨울바람을 만나면 나는 문득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 귀를 아프게 했던 겨울바람. 아빠 귀는 겨울 내내 얼어 있었다. 따뜻한 귀마개를 하고 그 위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다녀도 항상 귀가 얼어서 고생하셨다. 나는 의아했다. 나도 똑같이 추운 날씨에 걸어서 학교를 다녔는데 귀가 얼어서 고생한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아빠는 피부가 좀 약한가 싶었다.
아빠가 거의 밖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몸을 녹일 교실 같은 실내가 없었다. 지붕은 있지만 문이 없으니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구조의 공장이었다. 그동안 아빠가 일하는 공장이 어떤 모양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른이 된 딸은 아빠가 손가락을 잃은 후에야 알려고 했다. 공장 사장에게 말했다. “사고 현장에 가보고 싶어요.“
그렇게 아빠가 30년 넘게 일한 일터를 만났다. 아빠 귀가 왜 겨울마다 얼어서 녹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곳을 찾았던 날은 초여름이었는데 난 마치 시린 겨울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는 이미 늙었는데, 계속해서 언 귀를 비비던 젊은 아빠만 떠올랐다.
정말 추운 날이다. 다행히 아늑하고 따뜻한 곳에 앉아있다. 온통 한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아무리 문틈을 막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을 어느 사람들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내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지작거리니 자꾸 어릴적 살던 집이 떠오른다. 언 귀를 비비며 골목길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빠의 모습도 떠오른다. 내가 그때도, 지금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나의 산타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