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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22. 2021

내 인생의 BGM

음악으로 기억되는 장면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 중 몇 개가 생각났다. 일상에서 상상조차 못 해본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그리고 <현지 음악 + 현지 맥주 + 현지 음악> 세트를 갖기 위해."


살아온 시간 중에 음악으로 기억되는 장면들이 있다. 치앙마이 여행 중 쓴 위의 일기처럼 어떤 경험은 음악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나는 특히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남편과 살게 되면서부터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도 더욱더 특정 노래와 함께 기억하게 된 것 같다.


언제 들어도 두근거리는 노래는 아이유의 '푸르던'이다. 내 결혼식의 신부 입장 배경음악으로 골랐던 노래인데 아빠와 함께 나란히 버진로드를 걸으며 내려다본 웨딩드레스 끝자락,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신랑의 긴장한 어깨가 기억난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서 나의 좋은 날을 함께 기뻐하던 그날, 정말이지 무척 행복했다. 큰 딸 시집보내는 우리 부모님은 식 내내 울고 계셨지만 정작 그 큰 딸은 싱글벙글 손수 기타 연주까지 해가며 나의 결혼을 자축했던 날이다. 내 생애 참 푸른 날이었다.


2017년, 밴드 언니네 이발관이 해체와 함께 공식 은퇴 선언을 하며 마지막 앨범을 냈을 때는 끝내 놓지 못한 나의 20대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회사 동기와 내가 각각 연애를 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헤어진 적이 있는데, 퇴근길에 둘이 같이 큰 소리로 '순간을 믿어요'를 부르며 거의 울듯 횡단보도를 건넜던 기억이 난다. 그땐 참 뭐든 크게 아프고 뜨거웠다.


토이(Toy) 노래도 빠질 수 없다. 나의 첫아기와 함께 기억되는 토이 노래가 있다. 첫째 아이가 너무 일찍 태어나 이른둥이로 종합병원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보내지고, 제왕절개를 했던 나는 회복이 느려 면회도 한번 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주일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서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의 첫아기 이렇게 셋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날이었다. 그때 남편의 플레이 리스트에 있었던 토이의 '딸에게 보내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중이었다. 힘든 시간을 버텨온 우리 셋이 드디어 만났고, 그 노래의 가사와 함께 툭 끊어지듯 안도감에 젖어 참 많이 울었던 밤이었다. 셋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그렇게 가족이 탄생했다.


나의 사회생활 첫 프로젝트를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들었던 MIKA의 'Happy Ending'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로젝트 진행이 힘들 때마다 출근길에 듣는 노래이다. 그 노래와 함께 나의 '첫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고 두근거리는 걸 보면 정말 심장에도 기억이 있나 보다.


그 외에도 내 기억 속 BGM이 된 소중한 노래들이 많다 수시로 차곡차곡 떠올려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봐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기억의 주크박스를 틀어보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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