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에게 전하는 30대 나의 근황
미얀마 비어와 인레 호수의 민물고기 튀김은 정말 대박이다. 불타고 있는 내 오른팔에 앞으로의 내 30대를 걸겠다.
혼자 미얀마 여행을 하던 중 쓴 일기의 일부이다. 미얀마 껄로에서 출발한 나는 1박 2일을 꼬박 걸어 인레 호수에 도착했다. 이 날은 내 20대의 마지막 생일이었다.
오늘의 미얀마는 쿠데타로 촉발된 유혈 사태로 큰 혼란의 상처를 겪고 있지만 그날의 미얀마는 참 평화로워 나에게 깊은 안심을 주는 나라였다. 로밍도 되지 않아 한국과 완전히 차단된 그 여행길에서 나는 한 미얀마 소녀 가이드에 기대어 산 넘고 물 건너 70km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팔려가서 장기매매에 희생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산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모험이었다. 그 길 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까만 여백보다도 하얀 별이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며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달이 지고 새벽 물안개가 걷힌 후 그 길에 내리쬐던 미얀마의 햇빛은 무척이나 자유로웠다. 내 팔뚝은 그 자유의 상징처럼 빨갛게 불탔다. 나는 내 DNA에 '자유로운 모험' 인자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가올 나의 30대에도 당연히 자유와 보험이 가득할 거라 확신했다.
30대의 어느 좋은 날에 자상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이다.
자유와 보험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문장이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여 본다.
12년 차 회사원이다.
저런, 자유와 보험은 점점 더 멀어진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덧붙여볼까.
두 아이 중 막내는 이제 막 백일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정갈하게 밥을 먹고, 원하는 때에 내 몸을 뉘어 잠을 청하는 일상의 기본적인 자유조차 통제당하고 있다. 훈육 중에는 내 멘탈을 챙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 내 안에 살고 있는 또 한 명의 미친 여자를 자주 만나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웃다가 울다가 세상 가장 큰 사랑을 나에게 준다. 불쑥 나오는 미친 여자에게도 말이다. 나는 이 아이들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가 또 이내 마음이 팍팍한 성난 엄마가 된다.
나는 생명을 낳는 고귀한 일을 했는데 왜 이렇게 번뇌 속에 살아야 하는지 화가 난다. 그러다가 이 불손한 생각이 저주로 이어져 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가면 어쩌나 노심초사 한다. 결국 내 남은 생의 일부를 떼어서라도 부디 이 아이들의 인생에 빛 조각을 도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잠이 든다. 이런 새가슴이 된 엄마에게는 꿈에서조차 더 이상 모험이 어울리지 않는다.
미얀마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팔뚝에는 만성 산후통이 생겼다. 백팩이 얹어져 있던 여행자의 어깨에는 부모 역할이 더해졌다. 내 30대의 삶 속 자유와 모험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채워졌을까. 그 답을 찾는 것, 나의 두 아이를 통해 신이 나에게 준 숙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