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Aug 24. 2021

나는 조금 변했어

20대의 나에게 전하는 30대 나의 근황

미얀마 비어와 인레 호수의 민물고기 튀김은 정말 대박이다. 불타고 있는 내 오른팔에 앞으로의 내 30대를 걸겠다.

혼자 미얀마 여행을 하던 중 쓴 일기의 일부이다. 미얀마 껄로에서 출발한 나는 1박 2일을 꼬박 걸어 인레 호수에 도착했다. 이 날은 내 20대의 마지막 생일이었다.


오늘의 미얀마는 쿠데타로 촉발된 유혈 사태로 큰 혼란의 상처를 겪고 있지만 그날의 미얀마는 참 평화로워 나에게 깊은 안심을 주는 나라였다. 로밍도 되지 않아 한국과 완전히 차단된 그 여행길에서 나는 한 미얀마 소녀 가이드에 기대어 산 넘고 물 건너 70km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팔려가서 장기매매에 희생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산길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모험이었다. 그 길 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까만 여백보다도 하얀 별이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며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달이 지고 새벽 물안개가 걷힌 후 그 길에 내리쬐던 미얀마의 햇빛은 무척이나 자유로웠다. 내 팔뚝은 그 자유의 상징처럼 빨갛게 불탔다. 나는 내 DNA에 '자유로운 모험' 인자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가올 나의 30대에도 당연히 자유와 보험이 가득할 거라 확신했다.




30대의 어느 좋은 날에 자상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이다.


자유와 보험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문장이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여 본다.


12년 차 회사원이다.


저런, 자유와 보험은 점점 더 멀어진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더 덧붙여볼까.


두 아이 중 막내는 이제 막 백일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 정갈하게 밥을 먹고, 원하는 때에 내 몸을 뉘어 잠을 청하는 일상의 기본적인 자유조차 통제당하고 있다. 훈육 중에는 내 멘탈을 챙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 내 안에 살고 있는 또 한 명의 미친 여자를 자주 만나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웃다가 울다가 세상 가장 큰 사랑을 나에게 준다. 불쑥 나오는 미친 여자에게도 말이다. 나는 이 아이들로 인해 부자가 되었다가 또 이내 마음이 팍팍한 성난 엄마가 된다.


나는 생명을 낳는 고귀한 일을 했는데 왜 이렇게 번뇌 속에 살아야 하는지 화가 난다. 그러다가 이 불손한 생각이 저주로 이어져 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가면 어쩌나 노심초사 한다. 결국 내 남은 생의 일부를 떼어서라도 부디 이 아이들의 인생에 빛 조각을 도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며 잠이 든다. 이런 새가슴이 된 엄마에게는 꿈에서조차 더 이상 모험이 어울리지 않는다.


미얀마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팔뚝에는 만성 산후통이 생겼다. 백팩이 얹어져 있던 여행자의 어깨에는 부모 역할이 더해졌다. 내 30대의 삶 속 자유와 모험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채워졌을까. 그 답을 찾는 것, 나의 두 아이를 통해 신이 나에게 준 숙제인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