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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un 21. 2022

부모의 탄생


요 며칠 동안 그런 상태였다. 쓰면서 풀어내고 싶었고, 읽으면서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쓰거나 읽기 위해 자리를 고쳐 앉으면 어김없이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라며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도 덮고 책도 덮었다. 나부터 살겠다고 숨구멍을 찾아 이리저리 궁리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어린이집에서 또 연락이 온 것이다. 우리 집 아이가 또 반 친구를 꼬집어서 상처가 꽤 크게 났다고 한다. 아이의 문제 행동이 쉽게 고쳐지지 않을 거라는 각오와 달리 막상 같은 내용의 전화를 연거푸 받으니 충격이 꽤 컸다. 아마도 나는 쉽게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결론으로 바로 뛰어갈 수 있으리라 쉽게 생각했나 보다. 당연히 그럴 리 없는 현실에서 나는 참 오만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원감 선생님께서 따로 불러 혼을 냈다는데 반성의 기색도 없었다고 한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우리 아빠가  "라는 (이해  되는) 말도 했다고 재차 전해왔다. "어머니께서   신경을 쓰셔야   같아요."라는 말에  어머니인 나는 아이에게 신경 쓰지 못한 여러 지점들이 떠올라 한없이 작아졌다.


아이에게 꼬집혀서 상처가 난 친구의 부모님께 사과를 하고 싶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우리 집 아이가 보는 앞에서 통화를 하고 그 부모님께 사과도 시키라고 하셨다. 아이들끼리 사과를 하면 되는 것이지 왜 우리 집 아이가 상대 아이의 부모에게도 사과를 해야 하는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미 한없이 작아진 (가해자의) 어머니인 나는 그리 하겠다고 했다.


"죄송.. 합니다.."


내 작은 아이의 입에서 흐느끼는 사과의 말이 나왔다. "죄송해요"도 아니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서 순간 놀랐다. 어디서 배운 걸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직전까지 내가 상대 아이의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나의 입과 눈에서 나온 그 사과의 말을 듣고 배웠나 보다.) 심장이 찢어진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사과의 말과 함께 터져 나오는 아이의 눈물과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나와 남편은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 같이 울어버렸다. 타인을 아프게 한 (가해) 아이의 부모로서 염치없게도, 그랬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울다가 자다가 또 깨서 우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과하게 괴로워하는가 의아해졌다. 아이를 잘못 키운 것 같다는 자책 때문인가, 아이의 문제 행동으로 친구들과 멀어질까 걱정 때문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과하게 속상한 것일까.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보며 깨달았다. 나를 괴롭게 만든 자격지심이 보였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부모 참여수업이 있어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여러 모습들이 참 인상 깊었다. 그중 엄마 두 명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라 그 모습에 비추어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한 엄마는 아이와 무척이나 재미있게 (진심으로 신나해하며) 놀아주었고, 다른 한 엄마는 아이와의 놀이를 계속해서 학습과 연계시켰는데 그 아이가 벌써 두 자릿수 덧셈의 답을 바로바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진심을 다하지 않으며 아이의 학습 활동에 여전히 큰 관심이 없는 나는 그 장면에 놀랄 수밖에..


우리 아이의 꼬집는 행동 때문에 어린이집으로 연락을 한 부모는 공교롭게도 앞서 말한 그 두 아이의 엄마들이었다. 나는 그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 데에 얼마나 크고 다정한 정성을 들이는지 잠깐이지만 분명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얼마나 속상하실까 죄송스러운 마음이 정말 컸다. 동시에, 아이에 대한 나의 정성은 그에 비해 크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왔다. 부모 참여수업 당시에는 그 사실이 크게 아프지 않았는데 막상 우리 아이로 인해 이런 문제 상황이 발생하고 나니 자격지심이라는 감정이 꿈틀거리며 나 스스로를 괴롭힌 것이다. 나는 나의 정원만 너무 정성스레 가꾸느라 아이의 정원이 말라 가는 것을 모른 척 한, 부족한 엄마였다.


다음날, 남편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둘이서 바람을 쐬러 나갔다. 답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의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답도 알 수 없었고, 대부분이 추측이라 서로 이견이 있는 부분도 많았다. 우리의 양육 방식에 대해 남편은 어린이집 선생님의 조언도, 아동학으로 박사 논문 준비 중인 내 친구의 조언도, 당분간은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부모인 우리 둘의 추측만으로 스스로의 양육 방식이 옳다 그르다 판단 내리지도 말자고 했다. 오직 아이의 말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답을 찾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한나절을 꼬박 아이와 둘이서 보낸 남편은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아이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무서운 사람, 놀아주지 않는 사람, 장난감만 사주는 사람'이었고,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짜증을 잘 내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로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왔다는 사실을 그간 잘 알면서도 고치지 못해 (혹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여기까지 왔으나, 우리 남편은 본인이 꽤나 친근한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진심을 마주하고는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무서운 우리 앞에서 그럭저럭 온순한 (억압된) 모습의 아들은 눌린 풍선의 반대쪽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아이와 함께 한 지난 5년의 시간을 곱씹으며 반성했고, 많은 얘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부모역할에 대해 서로 응원의 마음을 다졌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우리의 인생에 '부모'라는 이름을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아무리 나름의 성공과 성취를 이루어도 아이들이 잘못 자라면 아무 소용 없어지리라는 것을.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귓등으로 듣던 그 당연한 사실들이 비로소 우리 마음에 진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조리원에서 세 식구가 만나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던 날이 있다. 나는 그날을 <가족의 탄생>으로 이름 붙였다. 그리고 며칠 전, 남편이 아이의 말을 전하며 함께 눈시울을 붉힌 날이 있는데, 그날은 아마 <부모의 탄생>으로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이렇게나 무서운 엄마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붙인 말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우리 부부는 똑같은 마음이 되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아빠를 사랑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 아빠야."


앞으로 나의 정원은 어쩔 수 없이 조금 작아질지도 모른다. 이제 그렇게 되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가꿀 우리 가족의 정원은 더 크고 더 다채로운 공간이 될거라 믿으며 이 정원에서 내가 맡은 부모 역할에 좀 더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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