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sser panda
Aug 19. 2021
N잡러 이팀장 ㅡ 24
24. 누구나 상황 주의자
난 나중에라도 따라갈 생각은 별로 없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과 같이 가야 하지 않나.
예전 사수라면 모를까.
일의 실력으로나 인간적 감정으로나 뭐로 봐도
같이 할 만한 사람은 아니어서 그랬을 거다.
지난번 입찰 사건은 결정적 계기이고 평소의 언행조차
믿지 못할 만한 사람. 언행불일치 되시겠다.
업무의 책임은 최종 추진자의 몫이고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리이자 책임을 지라고 직책을 맡긴 것이 아닌가.
최소한의 내 생각은 그랬다.
알면서 안 했다는 건 핑계고 몰라서 못했다는 건 무능력.
ㅡ 감탄고토.
조직의 생리가 능력과 무능력을 실수 줄이기로 가늠한다고 하지만
인간이라 어쩔 수 없고 상황상 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감안한다.
내 미래는 사수처럼 더 큰 회사로 가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ㅡ 나를 정말 믿어주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런 사람이라면 힘들어도 같이 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7-80년대만 해도 전후 시대, 격변의 시기여서
어느 회사가 부도날 지경에 월급을 안 받고 의리로 일하며
같이 회사를 다시 일으킨 감동의 이야기들이 많이들 회자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려나.’
회사는 그 사람의 희생만큼 알아준다.
아니 알아주지 않는다.
알아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대부분이 가식임을 알게 되기까지 18년 이란 세월이 흘렀다.
자연스레 수긍하고 돌아오던 모습을 생각하자니 그러고 보니 나도 가식이었다.
ㅡ뜨악, 이제야 돌아본 내 모습도 사내 정치하는 아마추어 사회생활인이었던가!
물속에 고기가 흐름을 따라가는 것인데 헤엄치는 듯한 모습이었던 것.
그건 회사 전체가 아니라 회사 지도자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다르다.
상대적이다. 가식이 아니란 걸 증명해 보이는 것은 금전이나 시간적 보상이
될 때만 만족할 만한 진심으로 다가온다.
회사에 모인 관계는 연봉으로 엮인 금전적인 관계다.
그런 관계에서 믿는다는 건 초과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희생 봉사해주는 사람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면 맞겠다.
회사에 뼈를 묻을 지 대리는 대표와 혈연관계도 아니다.
단지 다른 회사에 갈 데도 없다는
자신만의 우물 속에 빠져 그 안에서 작은 월급으로 만족한다.
무슨 일이든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로 모든 일에 임한다.
눈에 보이게.
그가 몇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회사생활에 완벽히 적응하고 순응하는 지 대리의 모습은
어느 다른 회사에서도 볼 수 없는 순종적인 도구로서의 삶 그 자체였다.
회사생활을 하려면 지 대리처럼 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면서도 비위를 잘 맞춘다.
그러고 말단사원들인 대리급 아래 우리끼리 있을 때의 회사생활의 고됨에 맞장구란 어찌나 잘 치는지.
근무 주기가 짧은 중소기업에서는 더욱 예상할 수 없는
의리라는 고용유지에 대한 보상이다.
ㅡ능력에 맞는 몸값.
그것이 바로 직장인의 희극이자 비애.
능력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또 할 수 있는 것처럼
연극적인 면접의 자세는 필수 요소다.
ㅡ모르면 배워서라도 일을 처리하는 태도.
회사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면접자의 말과 행동은
면접자가 되고 나면 더욱 눈에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경험치가 쌓이면서 사람 보는 눈이 길러지는 것도 한몫하겠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측과 가까워지고
신입에 가까울수록 노측과 가까워지는 경향성이 있다.
근데 사람이란 간사한 마음이 맡은 업무와 직책이 무거워지면
보수적인 사측과 입장이 유사해진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다.
그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고위간부들을 이해했겠지.
ㅡ 상황에 따라 생각은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