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부터 자율주행을 꿈꿨을까?

생각보다 오래된 자율주행의 역사

by 김수안

자율주행이 자동차 업계에 큰 화두다. 2020년을 전후로 다수의 제조사와 국가들이 앞다투어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쏟아지는 자율주행 관련된 뉴스에 곧 다가올 미래가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율주행이라는 기술이 어떤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먼저, 자율주행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싶어 졌다.



자율주행은 ‘운전’이라는 행동을 없애는 기술이다. 자율주행이라는 기술에 대해서 논하려면 필연적으로 운전이라는 행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운전은 크게 (1)기계의 조작과 (2)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나뉜다. 먼저 기계의 조작은 시동을 거는 일, 수동 기어를 조작하는 일과 같이 자동차라는 물체를 의지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 필요한 행동들이다. 자동차의 역사를 거슬러 초기의 자동차들을 살펴보자. 기록에 따르면 시동을 걸기 위해 자동차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8가지나 되는 행동들을 해야 했고, 주행 중에도 공기 조절 레버나 펌프 등을 작동시켜야 했다. 변속은 지금보다 훨씬 거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속도를 일관되게 제어할 수 있는 장치도 미흡했다.


다루기 힘들었던 초기의 자동차, 출처: Victoria and Albert Museum

현재의 자동차로 돌아와 보면,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시동이 걸리며, 기어의 변속은 전진 / 후진 / 정지 상황만 구별하도록 변화했다. 속도 조절과 핸들을 돌리는 일 이외에 별다른 조작 없이 차는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일련의 변화들은 운영체제가 DOS에서 Windows로 발전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명령어를 일일이 입력하여 작동시켰던 DOS가 개발 초기의 자동차라면, 정확히 컴퓨터가 어떤 연산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클릭 몇 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Windows는 현대의 자동차와 같다. UI의 진화 덕분에 자동차를 조작하는 데 필요한 학습이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고, 운전 중에 조작을 위해 신경이 분산되는 경우도 감소하였다. 기술의 발달은 운전의 한 부분인 ‘(1)기계의 조작’을 우선으로 사라지게 하였다.


기계의 조작이 사라지자, 인간은 (2)상황에 대한 대응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교통 신호들을 지키고, 다른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선택하는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계의 조작은 반복적이고, 선형적인 일들이기에 쉽게 자동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의 예시들은 여러 변수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다. 여러 변수는 인간의 지각 능력(시각, 청각 등)을 통해서 입력되기 때문에 물리적 기계 장치에 불과했던 때의 자동차는 애초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38614834964_356749fd2f_k.jpg 차도 상황을 지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LG전자 flickr

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자동차에도 지각 능력과 판단 능력을 심어주었다. 다양한 센서를 통해서 인간보다 뛰어난 지각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거리 유지나 긴급 제동과 같은 비교적 간단한 판단들은 인간만큼 뛰어나게 해낸다. 가장 최근 개발되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은 사물과 차선을 인식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선택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결국, 운전 중 판단의 영역도 최소화될 것이다.



최근 자율주행이 자동차 산업의 큰 변화로 주목받으면서 현대에 들어와 갑자기 생겨난 혁신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율주행은 결국 ‘운전’을 없애는 행위이고, 이를 위한 발전은 자동차가 탄생한 이후로 지속적인 변화의 방향이었다. 약간의 과장과 비약을 보태면 자동차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율주행을 목표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통제의 자동화 -> 판단의 자동화]의 순서로(통제로 이어지지 못하는 판단은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추가된다. 이러한 변화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수의 참여자의 의도를 한 곳으로 모으기는 어렵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욕망이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욕망이 100년 동안 지속되었을까?


다시 고민하고 싶은 질문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