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아프다'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다. 그저께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몸에서 바이러스가 성장하고 있음을 신경세포 하나하나에서 느꼈다. 어제 아침 일어난 남편에게 응급실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일요일에 진료하는 병원도 있었지만 링거라도 맞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요즘 병원마다 감기 환자들로 가득가득 차 있었다. 바로 일주일 전 막내가 B형 독감 확진을 받은 병원에서도 아픈 아이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응급실에서는15분 정도의 기다림이 있긴 했지만 대기 의자에 늘어져 있는 그동안도 열과 몸살 통증으로 눈물이 주룩 흘렀다. 대기실에서 응급실로 들어가 문진을 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얘기하면서 아픈 환자에게 저렇게 질문을 쏟아내야만 할까 싶어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물론 그들도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고쳐줄 수 있지만 말이다.
응급실 5번 침대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다가 앳된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바늘이 굵어서 따끔합니다를 외치던 그녀는 팔꿈치 안쪽에 날카롭고 기다란 통증을 주더니 이 부위가 부어서 다시 해야겠다고 하며 주삿바늘을 뺐다. 내 고통이 바늘이 쑤신 혈관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다시 그녀가 찾은 혈관은 어릴 적부터 유난히 울퉁불퉁 선명하게보이는 손등이었다. 또 한 번의 따끔함을 견디고 주사기를 통해 진통제가 들어오자 고통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많이 아파 보였는지 침대를 이동해 X-Ray를 네 장쯤 찍고 독감검사,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마친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하얀 응급실 천정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결과는 의외였다. 당연히 B형 독감이 걸린 막내에게서 옮았으리라 예상했건만 인상이 후덕한 젊은 의사 선생님이 A형 독감이라고 하니 놀라서 다시 재차 물었다.
"A형 독감이라고요? B형이 아니고요?"
"네. 맞아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물론.
그런데 아파서 끙끙거리며 병원으로 나서는 내 모습에 죄책감 가득 담은 눈으로 괜찮냐며 묻던 막내아들의 눈빛이 맘에 걸렸다. 아이 확진 후 설거지를 할 때마다 계속 식기를 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였지만 컨디션이 돌아오니 장난하듯이 끌어안고 뽀뽀하는 막내를 나도 내심 의심했다. 걱정이 클수록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막내 성격을 알기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얘기해 주었다.
"엄만 A형 독감이래. 너한테 옮은 거 아니야. 죄책감 가졌지? 너한테 옮은 줄 알고?"
"어떻게 알았어 엄마?"
금방 울 거 같은 표정의 아이에게 너의 탓이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 7,8명을 가르치는 알바를 하고 있으면서 안일했다. 아이들이 독감으로 꽤 결석을 하고 있었다. 보건용 마스크만 쓰고 있었으니 누구 탓이겠는가. 모두 내 탓이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고 집에 돌아와 잠도 조금 잤지만 타미플루와 다른 약을 복용하고 나니 밤새 식은땀이 나고 잠들 수가 없었다. 새해를 꼬박 뜬눈으로 맞으며 시간이 아까워도 글이든 책이든 손에 잡을 힘은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 먹은 후엔 꼭 해야 할 밀려 있던 일들을 하느라 노트북을 켜놓고 있으니 남편이 그만 좀 쉬라고 걱정을 하고 방문을 닫았다. 자려고 불을 모두 끈 느지막한 오후에도 잠이 오지 않아 결국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욘 포세의 책을 며칠 동안 읽으며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 글을 쓴다는 주인공에 동화되어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 첫날이 불안감을 이겨내기에 딱 좋은 날이기도 하니까
훨씬 정제된 글로 오래 쉬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2023년의 결산, 2024년의 포부 따위를 적으며 그 말에 책임을 지는 한 해를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가득 찬 몸으로 두서없는 바이러스 글을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충분하지 않나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오래 잠들지 못한 간밤에 울린 브런치 알림 중에 눈에 띄는 분이 계셨다. 내 브런치를 구독하신 분이었다. 왜? 라고 나도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브런치로부터 몇 번의 독려 메시지를 받았고 오래오래 망설여왔다. 그럼에도 간간히 라이킷을 연속해서 누르시는 분도 계셨고 브런치를 구독하며 관심을 표현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때마다 놀랐고 고마웠다. 오늘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브런치 구독을 눌러주신 그분들의 힘이 90이라고 생각한다.
글이 무엇이 되어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무척이나 불안했고 매일 숙제를 남겨놓는 기분에 휩싸였으니 새해엔 일단 무엇이라도 쓰기로 했다. 쓰는 루틴을 만들기 위해 만만치 않은 글쓰기 모임에 입주하기도 했다. 올해는 이런저런 계획에 글쓰기가 치중되어 있으므로 소소하나마 다시 쌓아두는 시간이 되길 내가 나에게 기대한다. 왠지 지독하게 쓰는 한 해가 될 것 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