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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coming Oct 03. 2024

잘 기대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Schubert - Impromptus D.899 No.2


너는 요즘 힘든 일이나 고민 없어?


친구들과 모여 앉아있다 보면 각자가 짊어진 속앓이나 힘듦을 털어놓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때로는 자신도 몰랐던 고민이 제 몸 뉘일 곳을 찾았다는 듯 흘러나오고, 대화가 깊어지면 앞다투어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이 시간에는 마치 암묵적인 룰처럼 모두에게 고르게 발언권이 주어지는데, 그러다 보면 맨 끝에 남는 건 언제나 나였다. 천성적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일을 어려워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의지하는 방법에 서툰 탓일까. 친구들에 비하면 내 고민은 너무 사소한 것 같다는 자기 검열이 작동할 때도 있었고, 나조차 내 고민이 무엇인지 깊게 파고들지 못해서였던 적도 있다. 수다 중 무지개처럼 반짝 찾아오는 자기 고백 시간마다 내 이야기를 할 기회는 번번이 미끄러졌다. 아주 안전한 물가에서 모두가 풍덩 뛰어들어 몸을 흠뻑 적시는데 매번 혼자서 멀찍이 쭈뼛거리는 듯한 나에게 내심 서운함을 털어놓는 친구도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친구들이 눈물 흘리고 자신의 흉진 구석을 드러내는 순간마다 나는 모종의 부러움을 느껴왔다. 고통을 혼자 앓을 때와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낼 때에는 어떤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울고 끙끙대는 일이 낡거나 삐걱거리는 자리에 뭔가를 덧대 손을 보는 정도의 수리까지만 가능하게 한다면, 타인의 앞에서 상처를 열어보이는 것에는 자신을 한번 와르르 무너뜨리는 정도의 충격력이 있다. 무너질 수 있을 때, 새롭게 다시 세울 수도 있다. 헤르만 헤세도 소설 <싯다르타>를 통해 말한다. 우리가 수많은 어리석은 짓, 악덕, 오류, 환멸과 비참함을 거치는 이유는 또다시 어린애가 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붕괴된 일부를 드러내 보인 친구를 볼 때, 그가 통과 중인 어둠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이제 너는 곧 괜찮아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통증을 통증으로 인정하고 충실히 앓는 용기, 그 무엇보다도 지금 자신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 그것들이 앞으로 친구의 어떤 면을 아주 새롭게 이룰 것이었다. 덕지덕지 어설프게 손댄 자국만 가득한 위태로운 집 같은 얼굴로, 나는 그러한 재탄생의 에너지를 내심 부러워해왔던 것이다.


우정은 살아가며 맺어지는 여러 유형의 인연 중에서도 좀 희한한 구석이 많은 관계 같다. 내가 경험해온 우정은 완벽히 자의도, 타의도 아닌 것 같은 어떤 모호한 힘에 의해 주로 결성되었다. 어린 시절엔 ‘저 친구와 단짝이 될 것 같아‘라는 예감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때도 가끔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약간 없어보였나’ 싶을 만큼 정성을 들여도 상대와 절친해지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평생 우정이리라 짐작했던 친구와 사는 게 바빠 서서히 멀어지기도 하고, 이 우정을 지키겠다는 절실한 의지까지는 없던 사이였더라도 우연과 약간의 의지가 거듭되다가 자연스레 굳건해지는 우정도 있다. 그렇게 맺어진 결속은 부모 자식이나 연인, 배우자와의 관계만큼 강력한 구속력을 갖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성질에 비해 또 생명력은 제법 질긴 듯 하다. 우정의 신은 우리 삶을 가장 불규칙하고 예측불가하게 변주한다. 지금 내가 전보다 조금은 더 친밀한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제멋대로 변주곡’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고작 31살에 박명하기까지 무려 1000여 곡을 남긴 슈베르트는 뛰어난 재능을 당대에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음악가로서는 비운의 삶을 살았지만, 우정복만큼은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계에서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를 꼽으라면 단연 슈베르트다. 눈물을 안 흘린 것은 아닐지라도 자국 남을 새 없이 부단히 닦아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슈베르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재능을 경제적인 능력으로 치환하는 재주가 없었고, ‘오로지 작곡만 하러 이 세상에 왔다’고 스스로 말했을 만큼 다른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작게나마 자신의 힘으로 벌며 삶을 꾸리는 데에 큰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의 집을 나와 살면서부터 일생동안 친구들의 집을 전전했고, 그들의 피아노를 빌려치며 살았다.


특히 슈베르트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빚진 친구들이 몇 있다. 요제프 폰 슈파운은 슈베르트와 학교에서 만났다. 그는 후배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고 평생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졸업 후, 본인도 하급 공무원의 처지라 월급이 빠듯했을 텐데도 슈베르트가 작곡할 수 있도록 오선지를 사주거나 오페라 공연에 데려갔다. 프란츠 폰 쇼버(그는 슈베르트를 어둠에도 물들였지만)는 19살에 부모님 집을 나온 슈베르트를 기꺼이 자기 집에서 살도록 했으며, 슈베르트의 작품을 감상하고 소개하는 모임 ‘슈베르티아데’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당대 저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요한 미하엘 포글은 무명 작곡가인 슈베르트를 알리기 위해 그를 반주자로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영향력을 아낌없이 활용했고, 재정적인 도움까지 주었다. 그 밖에도 많은 친구들이 슈베르트의 밀린 방세, 제화점과 의류점, 술집과 커피하우스의 외상을 갚아주고, 슈베르트가 선율을 붙일 만한 좋은 시를 추천해 주었다.


친구들로부터 이런 뒤치닥거리를 받을 정도의 주인공이라면 응당 꿋꿋하고 밝아서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곁에 두고픈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슈베르트는 전혀 그런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주변인들의 기록을 미루어보면 그는 내성적인 한편 기분이 급변하고 우울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니코틴과 알코올을 비롯한 유흥에 무절제하게 빠져드는 면도 있었다. 특히 1823년을 기점으로 매독의 증상이 극명하게 발현되면서 자기 파괴적 음주가 걷잡을 수 없어졌고, 술을 마시면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사생활이 손가락질받기 시작하면서 동료들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졌고, 절친한 친구들조차 얼마간 그와 거리를 두었다. 앨리자베스 노먼 맥케이는 <슈베르트 평전>에서 슈베르트의 여러 양가적 징후를 바탕으로 그가 ‘순환기분장애’를 앓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돌발적으로 분출되는 그의 변덕과 폭주는 자력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웠을 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슈베르트가 일생에서 완전히 혼자였던 시간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슈베르트의 친구들은 어떻게든 그의 치명적인 결점들을 견뎌주었던 모양이다.


슈베르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섬세한 모든 결을 다 알 방법은 없다. 세상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되었고, 자신의 생각을 남긴 글도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하게 감지되는 것은 슈베르트가 주변에 의지하는 일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친구들이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의 가장 큰 특성, 즉 그 자신만이 자아낼 수 있는 음악의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남루한 처지를 알리거나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왠지 모를 자괴감, 자격지심, 불안이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생존에 중요한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할 때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어느 정도는 무신경하거나 꿋꿋했던 것 같다.


내 것을 나누고 타인을 포용하라는 메시지는 많이 회자된다. 다정해야 더 강해질 수 있으며 생존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명제는 이제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내 다정함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내어줄 준비도 어느 정도 되어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혼자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쩔쩔매거나, 고립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타인에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은 상대적으로 희박한 것 같다. 나 역시 주변의 다정함에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영 서투른 편이다. 혼자 해결하려고 애쓴 뒤 정리된 상황을 털어놓는 편이지, 도중에 도움을 구하려는 생각은 잘하지 못한다. 이 정도로 별 것 아닌 상황을 가지고 남한테 징징대는 게 창피한 일이 되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의 조언을 내가 얼마나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내 불행이 다른 사람들의 수다거리로만 소비되지 않을까, 내가 기대는 것이 영 민폐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불안감만큼이 내 다정함의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두려움 없이 기댈 줄 안다면, 우리가 혼자서는 잘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드러낼 수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많은 것들이 자유롭고 가벼워지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든 면에서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욕심이다. 모든 방면에서 적당히 유능한 ‘육각형’ 인간이 선호되는 요즘이지만, 두드러지는 결점이 있더라도 끝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마력 같은 특성 한 가지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더 질긴 인간 관계를 쥐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작은 실수로 모든 관계를 망칠까봐 연연하다보면 정직하게 나를 표출할 기회도 잃는다. 남에게 나의 못난 점도 대수롭지 않게 내보일 수 있을 때, 나만의 미워할 수 없는 점도 들킬 수 있다. 슈베르트의 다소 불가사의한 우정을 들여다 볼 때도 그가 속을 직접 털어놓지는 않았을지언정 투명하리만치 잘 들키는 사람이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즉흥곡 D.899 중 2번은 이런 사유들을 담아 연주하기에 적절한 곡이라 생각된다. 슈베르트의 돌변적인 면모가 반영되었다고 분석되는 작품들이 여럿 있지만 가장 직관적으로 슈베르트의 인격을 닮은 곡 같다. 즉흥곡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슈베르트의 의지라기보다, 판매고를 높이기 위한 출판업자 토비아스 하슬링거의 의도가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만약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면 2악장으로서 이 곡이 지금과 같은 독자적인 존재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한다. 한 작품번호 안에서 보다 느슨하게 연계된 네 곡 중 특히 2번에서는 슈베르트의 극단적인 두 내면이 반영된 듯 격렬한 셈여림과 분위기의 대조가 두드러지게 반복된다.


슈베르트는 생을 마감하기 1년 전인 1827년에 이 곡을 완성했다. 이미 3년여 전인 1824년 3월 31일에 슈베르트는 친구에게 ‘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인간’이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매독을 치료하기 위한 수은 치료로 몸이 많이 약해졌고, 머리까지 빠졌으며 정신 건강 또한 꾸준히 악화되던 시절이다. 그러나 고작 며칠 앞선 1824년 3월 25일, 그는 공책에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아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벼리고 정신을 튼튼하게 하는 반면, 기쁨은 이해에는 거의 관심이 없으며 정신을 연역하게 하거나 경시할 뿐이다.” 수렁 같은 어둠과, 어떤 어둠도 밝힐 만큼 강한 정신적 빛이라는 양극단을 자주 오가던 그가 말년으로 향할 수록 극심한 조울증을 앓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 곡은 청량한 물결이나 바람을 타고 기분 좋은 리듬으로 걷는 걸음을 연상케 하는 Eb 장조로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내재된 가장 순수한 상태의 기쁨처럼 흐르던 선율이 조금씩 절뚝거리다 등장하는 발전부에서는 B단조의 광기 어린 왈츠가 요동친다. 화자는 체념한 듯 절망에 온 몸을 맡기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파괴될 것 같은 시점에 이르러 여리고 간절한 기도 끝에 본 모습을 찾는다. 이러한 캐릭터의 대조를 뚜렷하게 만드는 것은 왼손의 악센트 변화다. 제1주제에서는 3박자로 진행되는 왼손의 정박에 포인트를 준다면, 발전부에서는 두번째 박자에 힘을 싣는다. 오른손 선율과 절묘하게 리듬이 어긋나며 무언가 뒤틀리는 느낌을 준다. 왼손의 악센트 변화는 제1주제의 말미에도 살짝씩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긴장감을 잘 살리면 이 곡이 더욱 다이나믹하게 전개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곡을 연습하던 초기에는 마치 깨끗하게 세탁된 영혼 같은 도입 멜로디를 좋아했지만, 요즘은 발전부를 처참하게 붕괴될 작정으로 광기 어리게 연주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 슈베르트가 듣는다면 이 곡은 그런 곡이 아니라며 멱살을 잡으려 들지도 모르지만... 인간 관계에서 내 추악한 면을 들키지 않으려 늘 최선을 다해 고삐를 쥐던 내 모습과 대조적인 이 부분에서 슬그머니 대리만족하는 버릇을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이 곡을 즐겨 연주하는 동안 자못 궁금해졌다. 무엇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완전히 망가지지 않고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나에게 그러한 자원이 있다면 무엇일까?


슈만은 슈베르트를 일컬어 “더 높은 손길이 심어 놓은 자신의 최고의 모습”에 충실했다고 표현했다. 그의 삶에는 매독과 당시의 부족한 치료법으로 인한 지독한 통증, 우울 등의 먹구름이 수시로 드리웠다. 그럼에도 말년까지 그에게 음악은 흘렀다. 슈베르트에게도,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그리고 아마 나에게도 ‘내 가장 좋은 면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그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특성이 혼재되어 있다. 그중 어떤 면은 추하고, 어떤 면은 놀랍도록 곱다. 삶은 때때로 나의 추함을 폭력적으로 끌어낸다. 그러한 절망이 강렬하거나 오래 지속되다보면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잘못 인식하게 된다. 조금 더 추한 쪽의 나에게 영점 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나에게서 최악의 면모가 새어나오는 순간에도 내 최고의 모습을 기억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부르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분석해서가 아니라 그저 ‘이 혼란이 지나가면 다시 너의 모습을 찾게 될거야‘라고 맹목적으로 믿어주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곁에 있기만 하다면,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힘을 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이 각박해져 간다는 시대다. 아무리 알뜰살뜰하게 서로를 살피는 친구 사이라고 할지라도 요즘 세상에는 슈베르트 때처럼 얼마간이나마 친구의 생계를 책임져주고 뒤치다꺼리를 해준다는 이야기는 들려오기 쉽지 않다. 이미 각자가 너무 허덕이며 살기 때문일까. 그래서 직접 말 걸기보다 바뀐 프로필 사진으로, 좀 전에 업로드된 인스타그램 피드로 안부를 짐작하며 희미한 연결감만 유지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2번은 우정이라는 사적이고도 든든한 사회적 안전망을 잃어가는 오늘날에 대하여, 그리고 어느 정도 스스로가 자처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나에게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앞으로 솔직하고 모난 나를 더 자주 들킬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이며, 나의 고운 면을 기억해주는 이들을 쉽게 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그리고 내가 보았던 너의 다정함, 상냥함, 결연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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