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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Jun 03. 2018

터번을 쓴 노인

다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사람은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개는 얼굴에 고스란히 역사가 담겨 나온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그간의 삶의 흔적이 주름의 골짜기 사이사이로 내비치는 듯한 기분에 숙연 해질 때가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어르신들의 얼굴에 그런 감정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멋진 주름을 가지고 오랜 시간을 겪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모두 칭송받을 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떤 주름을 가지고 나의 역사를 얼굴 위로 드러낼 사람이 될 것인가. 




오래전에 터번을 쓴 노인을 한번 그렸던 적이 있다. 그때도 이런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렸더랬다. 

그렇지만 수채화로 그렸던 당시 그림에 몹시 실망하며 아쉬움만을 남겼던 적이 있다. 

잘 그리고 싶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만큼 큰 실망감도 없다. 


당시의 패배감을 잊은 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함께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내게 사진을 한 장 내밀면서 말했다.


-베가님은 이런 그림을 잘 그릴 것 같아요.


오래전에 그렸던 터번을 쓴 노인이 떠올랐다. 터번을 쓴 노인이라는 공통점도 있었지만, 대차게 망했던 당시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사진을 받아 들고 이번엔 제대로 한번 그려보리라 마음먹었다.




수채화로 다시 그리기보다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해서 그리자고 마음먹고 얼마 전 사두었던 모나미 볼펜을 들었다. 모나미 볼펜으로 처음 그리는 것이 다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때와는 달리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흘렀고 많은 그림을 그렸으니 나 역시 어느 정도 성장해 있겠지.


상당히 공을 들여 선을 쌓았고, 그 결과 제법 볼만한 그림이 그려졌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다.

과거 아쉬움이 많았던 한때의 그림을 보다 만족스럽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이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언제고 오래전 수채화로 그렸던 '터번을 쓴 노인'을 바라보며 아쉽기만 했을 것이다.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과거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았던 일들을 다시 바로잡는 것에는 이렇게 성장과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시 반복해보는 것으로 얼마큼 성장했는가를 가늠해보게 하는지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 얻어지는 만족감과 그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위안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과거에 했던 것을 다시 한번 해봄으로써 얻어지는 것들도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림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생겨나는 많은 부분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 할 것이다. 


다행이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 그림이 제법 많이 성장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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