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보고 싶어 쓰는 글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쓰는 글, 오늘은 고양이 가족 덕분에 배운 것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하나. 배가 고프진 않은지 춥진 않은지 몸 상태는 괜찮은지 살피는 일.
둘. 혼자 두면 걱정되고 못 놀아주면 짠하고 외출했다가도 냉큼 돌아오게 되는 일.
셋. 더 좋아할 간식이나 장난감이 있을지 자꾸 알아보게 되는 일.
넷. 수염이나 귀의 모양으로 표현되는 언어, 꼬리나 잠잘 때 몸의 모양으로 알 수 있는 심리 상태, 검색하고 기록하고 이 녀석의 언어를 알아채기 위해 공부하는 일.
등등등. 가장 크게는 내 시공간을 공유하는 일, 그것에 대해 유난히 배운 듯하다.
나는 형제 없이 어른 둘만 있던 집에서 홀로 아이로 자라는 동안 늘 내 방이 있었다. 문은 어느 때고 열렸지만, 닫으면 내가 좋아하는 책과 내가 좋아하는 색연필이 있는 나의 공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 내 이야기를 받아주는 일기장도, 나만 아는 히든 스페이스에 숨길 수 있던, 나의 공간.
보이진 않지만 엄연히 선이 존재하는, 명확한 부피가 확보된 공간.
고양이는 내가 만든 선을 신경쓸 줄 모른다. 인간이 영역을 주장하는 방식이 고양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야생에서 영역 동물인 고양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제 영역을 표시한다. 우리 고양이도 내 방에 숨을 공간과 편안하게 쉬는 공간들을 지정했다. 내가 나의 공간에서, 고양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된 것이다. 내 침대라든가, 내 책상, 내 책장, 책 읽는 의자 같은 곳에 새로운 의미가 덧씌워졌다. 고양이의 방식으로.
시간도 공유하게 됐다. 일을 마치면 오롯이 휴식 시간이었던 밤 시간에 고양이의 사냥 놀이 시간을 확보해주는 일. 내가 잠들 시간에 초롱초롱 활발해지는 이 고양이와, 잠을 쪼개 함께 놀아주는 일. 그렇지만 자꾸 놀자고 깨우니까 잠은 함께 잘 수 없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일. 기상 시간을 조금 당기더라도 고양이의 밥 시간을 챙기는 일. 하루 한 번 짧게라도 짬을 내어 열심히 쓰다듬고, 기분이 좋아졌을 때 겸사겸사 미간부터 꼬리 끝까지 빗으로 빗어 빠진 털을 정리하는 일. 달에 한 번 고양이를 위해 쓰이는 모든 용품을 소독하고 닦아 건조하는 일.
그러나 고양이에게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 보느라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오히려 혼자 있을 때 인색하던 휴식 시간도 늘었음을 깨닫는 일.
함께 사는 존재가 생겼기 때문에 배우는 감정도 있다. 일하는 중간 중간 짬이 날 때마다 관심을 몰아서 기울이게 된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 이 녀석이 놀고 싶어할 때 놀아주고 손길을 필요로 할 때 쓰다듬어 줘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어 미안한 마음이 늘어가는 일. 인간으로 책무를 마칠 동안 이 녀석이 외롭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는 일.
누군가에게 이렇듯 무한한 다정함을 담아, 깨끗하고 맑기만 한 상냥함을 줄 수 있다는 것. 나에게 있는 줄 몰랐던 말투와 톤으로 애정을 담아 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고양이는 그냥 그날 그때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 오늘 저 깃털을 꼭 잡아야만 쓸모 있는 고양이라고 느끼지 않고. 오늘 이 간식을 조금 남겨야 절제력 있는 고양이라고 느끼지도 않는다는 것. 그저 놀고 싶을 때 놀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같이 있고 싶을 때 옆에 와서 앉는다는 걸 알게 된다.
감사한 일이다.
어떤 존재가 소중해질수록 이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아무리 아끼고 사랑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작별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이별에 취약해질 것이다. 예정된 헤어짐을 알고 있음에도 덜 슬프거나 덜 공허하진 않을 것 같다.
'크다'는 말보다 더 크다고 표현하고 싶어서 '커다랗다'라거나 '거대하다' 같은 표현을 만들어 냈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커다랗다' 보다 더 '거대하고' '큼지막한' 슬픔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을 자꾸만 늘리고 채우고 넓혀서 쏟게 된다. 이 생명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을 다 끌어다 건네고 싶다.
훗날 '나보다 수명이 짧은 생명체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하고 어리석은 다짐을 하게 된다고 해도. '지금 이 생명체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