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수확자 (1)

붉은 달의 밤

by Velina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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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천 번째 봄


그날 밤, 달은 붉게 물들었다.


루나는 천 년 만에 처음으로 가위 드는 것을 망설였다. 손잡이의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땀을 만들었다. 천 년 동안 단 한 방울도 흘려본 적 없는 땀.


정원의 달빛 꽃들이 미풍에 흔들렸다. 밝은 것들—환한 은빛의 첫사랑, 황금빛 아이의 웃음, 연보라색 어머니의 자장가. 천 년 동안 그녀는 그것들만을 수확했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밝은 기억만을 수확하거라. 천 년 동안 모아서, 마지막 해에 하늘로 보내라. 그것들이 별이 되어 우주를 밝힐 것이다."


루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백만 개의 별. 999명의 전대 수확자들이 만든 별들. 너무 균일했다. 지나치게 완벽했다.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가슴을 찔렀다. 반듯하게 정렬된 듯한 하늘, 눈부시게 밝은 빛.



정원 한편에 어두운 꽃들이 피어 있었다. 검은 줄무늬가 꽃잎을 가로지르는 것들. 중심이 회색으로 썩어가는 것들. 루나는 늘 그것들을 외면했다.


오늘 밤은 달랐다.


가장 검은 꽃 하나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겉은 칠흑같았지만, 중심부에서 희미한 온기가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상처 속에 숨은 사랑처럼.


루나는 그 꽃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냄새가 났다. 달빛 꽃들은 원래 향이 없다. 하지만 이 꽃에서는—


축축한 지하실의 곰팡이 냄새.


심장이 뛰었다. 수확자에게는 심장이 없다. 필요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뭔가가 가슴에서 두근거렸다.


"무서워."


그녀는 소리 내어 말했다.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한 순간, 알았다. 이것은 그녀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저 꽃 속, 지하실에 갇혔던 누군가의 두려움. 하지만 그 두려움이 지금 그녀를 떨게 만들고 있었다.


경계가 흐려지고 있었다.



천 년 전, 우주의 균열 속에서 그녀는 태어났다. 모든 수확자는 그렇게 태어난다. 추락하다가 땅을 발견하고, 눈을 뜨고, 자신에게 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승—제999대—은 그녀에게 가르쳤다.


"너는 빈 그릇이다. 그래야 타인의 기억을 담을 수 있다."


"왜 기억을 담죠?"


"우주의 균형을 위해서다."


"균형이 무엇인가요?"


스승의 형상이 흔들렸다.


"빛과 어둠의... 올바른 비율."

"올바른 비율은 얼마인가요?"


스승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루나는 질문을 멈췄다. 천 년은 긴 시간이니까. 언젠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스승은 떠나기 전, 마지막 말을 남겼다.


"네가 천 번째 봄을 맞이할 때,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의 눈동자가 수많은 색으로 명멸했다. 은빛, 황금빛, 연보라, 그리고 짙은 검은색.


형상이 빛으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천 년간 품었던 모든 기억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쳤다. 수십만 개의 별이 한순간에 탄생했다. 빛이 우주를 채우자 스승은 바람이 되어, 꽃잎이 되어, 루나의 숨결이 되어 사라졌다.


혼자 남은 루나는 정원 끝의 돌벽을 발견했다. 수많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흐릿한 긁힌 자국처럼 보였다. 읽으려 해도 글자가 닿지 않았다.


천 년 동안 그 벽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한 번도 읽히지 않았다.



루나는 가위를 들었다. 날이 선 금속이 검은 꽃줄기에 닿았다.


자르는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제2장: 경계의 해체


첫 번째: 지하실


한 아이가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루나는 그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되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감촉. 코끝을 찌르는 곰팡이 냄새. 그리고—


'엄마.'


그 단어가 루나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있을 수가 없었다.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닫혔다. 짙은 그림자가 방 안을 삼켰다. 아이는—그녀는—혼자였다. 배가 고팠다. 목이 말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엄마, 엄마.'


천 번. 만 번. 끝없이.


루나는 비틀거리며 정원 가장자리의 돌을 짚었다. 손바닥에 전해진 차가운 감촉이 시멘트 바닥과 똑같았다. 현실과 기억의 경계가 무너졌다.


"이건... 내 기억이 아니야."


하지만 그녀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두 번째: 총성


총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쓰러졌다. 뜨거운 것이 가슴을 관통했다.


루나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총알이 몸을 뚫는 감각이 생생했다. 폐가 무너지고, 심장이 멈추고, 시야가 좁아들고—


고통 속에 낯선 감각이 섞여 있었다. 총을 맞은 사람의 기억인가? 아니면 쏜 사람의 기억인가?


둘 다였다.


루나는 방아쇠를 당기는 손의 떨림을 느꼈다.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는 무릎의 통증도 느꼈다. 살인자이면서 희생자였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세 번째: 용서


병실이었다. 열두 살 소녀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미안하다."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는 너를 아프게 했어."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었다. 너무 길었다.


그러다 작은 손이 움직였다.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루나는 그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용서는 따뜻하지 않았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상처를 인정하는 행위. 상처를 품은 채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행위.


그리고 깨달았다. 팔백 년 전, 그녀가 수거했던 환한 기억—한 아버지가 갓난아기를 안고 우는 기억. 그것이 바로 이 순간의 시작이었다.


사랑과 상처가 하나였다. 처음부터.


손등에 희미한 멍이 생겼다.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소녀의 것도, 아버지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기억이 남긴 흔적.


멍은 천천히 사라졌지만, 감각은 남았다.


네 번째: 배신


직장. 한 남자가 친구를 배신했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루나는 그의 떨리는 손을 느꼈다. 서류에 서명하는 순간. 친구의 이름을 거짓 증언에 올리는 순간.


그의 후회가 그녀의 폐를 짓눌렀다.



다섯 번째: 죽음의 선택


호스피스 병동. 팔십 년을 산 노인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의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확실하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조여왔다. 두려움, 해방, 죄책감, 평온.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뒤섞였다.


"살아있는 건 축복이에요. 하지만 끝낼 수 있는 것도 축복이에요."


바늘이 피부를 뚫었다. 차가운 액체가 혈관을 타고 흘렀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루나 안에서 또 다른 기억이 깨어났다. 사백 년 전, 같은 노인이 손자를 처음 안았을 때의 환희.


'더 살고 싶다.'


그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충분하다.'


지금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두 생각은 모순되지 않았다. 그것이 온전한 삶이었다.


루나는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눈물인지, 노인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눈물 속에 소금기가 닿았다. 팔십 년 인생의 무게가 그 소금 결정 하나하나에 스며 있었다.



여섯, 일곱, 여덟 번째 꽃.


이별의 통증. 실패의 쓴맛. 절망의 무게.


각 꽃을 자를 때마다 루나는 조금씩 흩어졌다. 아니, 확장되었다. 한 사람에서 수십 명으로, 수백 명으로. 경계가 사라지고 있었다.


아홉 번째: 우정의 재회


교도소 앞. 삼 년 만에 출소하는 남자. 그를 배신했던 친구가 서 있었다.


"왜 왔어?"


"미안하다고... 말하러."


친구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같이 밥 먹자."


그날 밤 둘은 소주를 마셨다. 친구는 그날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배신자는 울었다. 친구는 울지 않았다. 그저 술을 따라주었다.


루나는 이 기억 속에서 두 사람을 동시에 경험했다. 배신한 자의 죄책감과, 배신당한 자의 선택. 그것은 용서도 포기도 아니었다. 그저 계속 살아가기.


오백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두 아이가 모래성을 쌓던 기억. 순수한 우정의 기억.


같은 두 사람이었다.



열 번째: 자아의 분해


마지막 꽃을 자르는 순간, 루나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아니, 수십 개의 이름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니, 수십 개의 이름이 동시에 떠올랐다. 지훈, Maria, Julien, Amara, たけし, 秀英, Jean, 은지, Ibrahim... 누가 루나인가? 누가 그들인가?


거울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여러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이, 노인, 남자, 여자. 한 순간 모두였다가, 다시 아무도 아니었다.


"나는..."


입을 열었지만,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라는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렸다.


공포가 아니었다. 경외였다.



열 개의 어두운 기억을 수거했을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천 년 동안 모아온 모든 밝은 기억들이 갑자기 뒤집히기 시작했다. 첫사랑의 설렘 뒤에는 이별의 아픔이 있었고, 아이의 웃음 뒤에는 성장의 고통이 있었으며, 어머니의 자장가 뒤에는 상실의 슬픔이 있었다.


마치 동전이 뒤집히듯, 그녀가 가진 모든 기억이 온전한 형태를 드러냈다.


어두운 기억 열 개가 열쇠였다. 천 년간 불완전했던 기억들을 깨웠다. 반쪽짜리 기억들이 완성되면서, 루나는 수십만 개의 삶을 동시에 마주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감각. 태어남과 죽음, 사랑과 미움, 희망과 절망.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왔다.


루나는 쓰러졌다. 아니, 수십만 번 쓰러졌다. 수십만 번 일어났다.


"나는... 사라지고 있어."


그 순간 깨달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정원 밖으로 퍼져나갔다.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불완전함이 일제히 깨어났다.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멈춰 섰다. 가슴 한편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직감. 그들은 이끌리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달빛 정원이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 「정원사의 새벽」은 8월 23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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