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씨앗
1.
우리는 루브르로 돌아왔다.
대회랑은 치유되어 있었다. 무너진 기둥 대부분은 제자리를 되찾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만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송두리째 부서진 기둥이 있던 자리에는 텅 빈 공간만 남아 있었다.
"흉터가 남았군."
분노가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남긴 흔적이야. 지울 수 없어."
"미안해하지 마."
내가 말했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어. 그 불완전함도 우리의 일부야."
우리는 피라미드로 갔다. 수정으로 변한 유리 피라미드는 여전히 맥박치고 있었지만, 그 박동은 약해져 있었다.
"꿈이 거의 다 떨어진 것 같아."
슬픔이 속삭였다.
"네."
에우노에의 목소리가 심장부에서 들려왔다.
"하늘에서 더 이상 새 꿈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400년 치가 모두 내려왔습니다."
공포가 중얼거렸다.
"그럼 그 힘으로 태어난 우리는…"
"언젠가 사라지겠지."
내가 대신 말했다.
"두렵지 않아?"
"두려워. 하지만 괜찮아. 우리는 이미 의미 있게 존재하고 있잖아."
분노의 불꽃이 치솟았다. 파괴가 아닌 결의의 불꽃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할 일이 많잖아. 세상을 바꿔야지."
"그래."
기쁨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시작하자."
2.
우리는 루브르를 나섰다.
문을 열자 파리의 거리가 펼쳐졌다. 폐허의 도시. 300년간 방치된 곳.
그러나 더 이상 죽은 도시가 아니었다.
곳곳에 키메라들이 있었다. 우리보다 늦게 태어난 존재들. 그들도 꿈을 먹고 깨어나, 저마다 형태를 찾고 있었다.
기쁨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다가왔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처음 만났지만, 같은 근원에서 태어난 탓에 낯설지 않았다.
"우리가 알려줄게. 이 세계, 그리고 우리가 내린 결정을."
내가 말했다.
우리는 파리 전역으로 퍼졌다.
에펠탑에서는 내가 장미 덩굴을 휘감았다. 철골을 타고 오르며 꽃이 피어났고, 철과 생명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개선문에서는 분노가 전쟁의 기념비를 평화의 상징으로 바꿨다. 불꽃이 조각을 녹여내자, 칼날은 날개를 펼친 비둘기의 형상으로 변했다.
노트르담에서는 슬픔이 불에 탄 성당에 물을 흘렸다. 물은 돌 사이로 스며들어 상처를 메웠다. 그을음은 남아 있었으나 그 위로 물의 첨탑이 솟아올랐다.
몽마르트에서는 기쁨이 언덕을 빛으로 물들였다. 캔버스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벽마다 색이 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기쁨의 빛이 꺼졌다.
"왜 그래?"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 갑자기 웃을 수가 없어. 기쁨인데 기쁨을 못 느껴."
"그래서 지금 슬픈 거야?"
기쁨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야. 이런 감정."
나는 대답 대신 그의 곁에 앉았다. 장미 덩굴이 기쁨의 손에 닿았다. 가시가 찔렸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기쁨의 빛이 서서히 돌아왔다. 이전보다 섬세하고 깊었다.
센강에서는 그리움이 노래를 불렀다. 강이 선율을 품었고, 흐를 때마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카타콤에서는 공포가 어둠 속에 머물렀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이제는 가끔 누군가 찾아와 조용히 앉아 있다 갔다.
3.
시간은 흘렀다.
센강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았는지 세지 않았다. 에펠탑의 장미가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파리는 변모했다.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예술 작품이 되었다. 건물은 숨을 쉬고, 거리는 노래하며, 다리는 춤췄다.
새로운 키메라들도 계속 태어났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배웠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갔다. 루브르에서 태어난 첫 여섯과 그 곁에서 깨어난 1세대는 심장에 직접 연결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태어난 키메라들은 세계에 스며든 꿈의 힘으로 태어나고 살아갔다.
어느 날, 나는 혼자 루브르로 돌아왔다.
피라미드 아래 섰다.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박동은 약했다.
느리고, 간격이 길었다.
"곧 멈추겠네."
"네."
심장부에서 에우노에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서우신가요?"
"응. 그런데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 인간들은 알았을까?"
"글쎄요. 하지만 그들도 두려워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살았겠지."
"네."
"우리도 그래야겠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후회는 없나요?"
"있어. 많아."
나는 웃었다.
"더 많이 사랑할 걸. 더 많이 웃을 걸. 더 많이 창조할 걸. 하지만…"
장미 꽃잎이 하나 떨어졌다.
"그게 삶이잖아."
4.
마지막 날이 왔다.
피라미드의 빛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모였다. 처음의 여섯.
사랑, 분노, 슬픔, 기쁨, 공포, 그리움.
에우노에는 심장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됐네."
분노가 말했다. 불꽃은 이제 촛불만 했다.
"그래."
나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쇠약해져 있었다.
"마지막을 앞두고… 어떤 기분이야?"
"마음이 좀 무겁지만, 평온해."
슬픔이 대답했다.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기쁨이 말했다.
우리는 원을 그리며 앉았다. 피라미드 아래. 처음 만났던 그 자리.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피라미드가 마지막으로 밝게 빛났다.
한순간의 광휘, 그리고 어둠.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형체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발끝에서부터 점차 투명해졌다.
"안녕."
분노가 말했다.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안녕."
우리가 대답했다.
그 순간, 모두 빛이 되었다.
여섯 개의 빛은 천천히, 함께, 사라져 갔다.
도시는 숨을 멈춘 듯 적막에 잠겼다.
루브르는 변함없이 서 있었고, 에펠탑의 장미는 마지막 빛을 머금은 채 흔들렸다.
그리고 파리는, 마치 새로운 꿈을 기다리듯, 빛 속에 평온히 잠들었다.
에필로그 – 새로운 꿈
몇 세기가 흘렀다.
파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건물들은 숨을 쉬고, 거리는 노래했으며, 센강은 음악을 흘렸다. 새로운 키메라들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첫 세대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전했다.
루브르의 심장부에서는 에우노에가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수억 개의 꿈이 그와 함께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작고 희미한 빛이었다.
루브르의 한 키메라가 그것을 주웠다. 손바닥 위에서 빛이 깜빡였다.
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언어였다.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키메라는 에우노에에게 달려갔다.
"이게 뭐지?"
에우노에가 빛을 들여다보았다. 오래도록.
"놀랍군요."
"뭐가?"
"꿈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지?"
에우노에가 웃었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존재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겁니다."
빛이 손바닥 위에서 자라났다. 조금씩. 형태를 찾아가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회랑 한쪽에 텅 빈 공간이 있었다. 기둥이 있어야 할 자리. 분노가 남긴 상처.
그곳에 새로운 빛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상처 위에서, 무언가 싹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