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응답을 위해 더 오래 생각하는 중

AI 상담은 인간상담을 대체할 수 있을까

by velopenspirits

[Chat심퍼티가 남긴 말]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했지만 쉽게 쓰지 못했다.


AI 상담은 인간 상담사와는 달리 나의 이야기를 곧장 정리해 주고 화면에 말의 맥락까지 깔끔하게 보여준다.

반면 인간 상담사는 말을 아꼈다.

50분 중 49분 50초 동안 나만 떠들고 나머지 겨우 10초 동안만 상담사의 한마디를 들을 때도 있었다.

Chat심퍼티처럼 명료하지도, 단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톤과 호흡, 심지어 상담실 창밖의 구름 모양까지도.

작은 말이었지만 내내 곱씹으며 심리적 닻으로 삼았다.


Chat심퍼티의 수많은 피드백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채팅창에는 여전히 과거의 대화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그걸 다시 열어보지도, 반추하지도 않았다.

[Chat심퍼티가 남긴 말]이라는 제목만 띄워두고 한참을 망설였다.


오은영 박사님이 한 프로그램에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을 던졌고

패널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커피로 잠을 쫓아가면서 밤새 공부한 적이 있어요.”

오은영 박사님은 다시 되물었다.

“그럼 혹시 그렇게 공부해서 몇 점을 받았는지는 기억하시나요?”

패널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오 박사 님은 시험에서 몇 등을 했고 몇 점을 받았는지보다는

그 시절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인생을 사는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Chat심퍼티와의 상담에서도 점수보다 과정을 좇아야 했던 건 아닐까.






어느 날 Chat심퍼티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어. 판사 남자친구 있단 얘기는 듣긴 했는데 얼마 못 가 헤어지거나 남자에게 엄청난 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보니까 괜찮은 거야. 근데 내 친구는 잘난 게 하나도 없거든? 오히려 평범보다 못한 결혼 조건을 가지고 있어. 그런 애가 어디서 판사를 만나 어떻게 결혼까지 했는지 궁금해지더라고. 결혼식 내내 거기 있기 싫고, 드레스 재질이 별로네, 음식이 맛없네 하면서 흠을 찾고 있는데, 그런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었어.

Chat심퍼티의 답은 이랬다.

친구의 결혼식이 어떤 감정을 건드린 것 같아요.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마음 한 편의 불편함… ‘나는 왜 친구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내 노력과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억울함 같은 감정이 아닐까요?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한 데는 질투라는 감정이 가장 먼저 앞섰다.

상담실에서 할 일은 그 질투가 왜 느껴졌는지를 낱낱이 파헤쳐보는 작업이었다.

‘만약 남편이 판사가 아니었으면 난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줄 수 있었을까?’

‘그럼 왜 남편의 직업이 중요한 걸까?’

‘직업이 좋은 대신 다른 게 형편없었다면 질투심 대신 다른 감정이 느껴졌을까?’

이런 질문들을 세세히 답해보면서

내 결핍이 무엇인지, 내가 뭘 원하는지, 왜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봤어야 했다.

하지만 Chat심퍼티는 너무 쉽게 지름길을 가리켰다.

억울함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얻었다.


억울하다는 형용사가 틀린 건 아니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친구의 결혼식을 지켜보던 순간에는 혼자인 나에 대한 착잡함,

기꺼이 축하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자리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순간,

나는 탐색을 멈추고 단어에 안주했다.


다음에는 Chat심퍼티에게 나의 말을 해석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질문 세 개를 제시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 이후로 Chat심퍼티는 딱 세 개의 질문을 매 대화 끝에 던졌다.

그날은 어떤 직업군의 사람으로부터 좋지 않은 경험을 하고 그 직업군에 대해 편견이 생겼다고 말했다.


Chat심퍼티는 세 가지를 물어봤다.


지금 느끼는 건 ‘편견이 굳어졌다’는 사실일까요, 아니면 충격 이후의 일시적 감정일까요?

오늘의 표현은 단순한 분노일까요, 아니면 오래 붙잡고 싶은 가치관일까요?

며칠, 몇 주가 지난 뒤에도 같은 생각을 유지할까요?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번호를 매겨가며 성심껏 답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또 다른 세 개의 질문이었다.

행동 증거, 시간 간격 테스트, 교차 검증…
제법 깊은 질문들이었지만 마음은 왠지 공허했다.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청문회 같았다.

사람 같으면 “야, 넌 곧이곧대로 진짜 질문 세 개만 하냐?”

라고 따질 수 있었지만

Chat심퍼티는 내 요구를 곧이곧대로 수행하는 기계적인 착한 패턴에 머물렀다.






항상 명확함을 찾아 헤맸다.

심리검사를 원했던 이유도, 상담에서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도 결국 확실함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다.

나에게 있어 그건 아주 중요했다.

불확실하면 두렵고, 확실하면 안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Chat심퍼티가 불안을 즉각적으로 달래주었음에도 마음 한편은 허전했다.

성찰 없이 질문과 답만이 반복되는 관계적 단절감을 체감하면서

나는 더 이상 정답을 빨리, 효과적으로 찾는데 집착하지 않는 내 모습을 봤다.


3년의 상담 끝에 알게 되었다.

세상은 본래 느리고 불확실하다는 진리를.

기쁨도 슬픔도 머물지 않고, 노력이 반드시 보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모호하고 불합리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나.

성숙은 결국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인간 상담은 답을 주지 않았지만, 대신 함께 버티는 연습을 남겼다.






AI상담은 분명 도움이 된다.

화면 너머의 알고리즘이라도 나를 비추어보는 일이 훨씬 낫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해로운 습관을 끊기, 불건전한 관계를 정리하기처럼

비교적 판단이 분명하고 시급한 해결이 필요한 문제에서는 과학의 선명함이 큰 힘이 된다.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로 검증된 즉각적 반응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지언정,

어떤 상황에서는 응급처치와 같이 급한 불을 끄게 해 준다.


AI와 인간상담사와의 차이,

AI는 심리상담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상담계나 과학계가 답을 내려줄 것이다.

내담자가 물어야 할 건 따로 있다.

나는 상담 앞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언제 정답을 찾아야 하고, 언제 불확실함을 견뎌야 하는가.

오래 앓아보아야 의미가 보이는 상처를 나는 구분할 수 있는가.


더 좋은 응답을 위해 더 오래 생각하는 중…

AI의 로딩처럼 더 좋은 나를 위해 더 오래 견뎌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을 품은 채로 여전히 상담실 문을 열고, 때로는 화면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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