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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리 Jan 08. 2016

3. 아이슬란드, 밍크고래와 스치다

4) 레이캬비크에선 고래, 블루라군에선 실리카 머드 찾아 삼만리


이슬란드 데이투어는 왜 이리 험난한가. 투어 하나도 예상대로 진행이 안됐다. 골든써클 투어는 픽업버스 놓쳐서 다음날 가고 고래+퍼핀 투어는 당일 파도친다고 캔슬되고 덕분에 하루에 몰아서 두 가지 투어를 하게 됐다. 예정했던 블루라군 투어를 오전에 다녀와서 오후에 직접 마지막 타임 고래 투어(Whale searching)하는 배를 찾아 항구에 가기로 여행사와 이야기를 해놨다. 워낙에는 숙소 픽업이었으나 블루라군 투어를 하고 숙소로 가면 픽업차량 시간을 놓칠 거 같고, 길에서 버리는 시간도 줄일 겸 직접 배로 가기로 결정. 길치라 혹여 이 배마저 놓칠까 싶어 전날 미리 선착장까지 가보기도 했다. 골든써클 투어처럼 다음으로 미룰수도 없는게 다음날 오후는 아이슬란드를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에 픽업 차량을 타고 블루라군을 향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은 출국 하는 당일 오전에 온천을 하고 공항으로 가는 이들이 꽤나 된다는 점이었다. 거리로 보나 시간활용면으로 보나 오후 출국이면 꽤나 괜찮은 선택 같았다. 그 둘은 근방이고 또 그렇게 하면 왕복으로 차를 이용하지 않으니 투어비도 더 쌌다. 어제 언제 거친 파도로 날씨가 나빠 투어가 취소된 적이 있었나 싶게 하늘은 푸르렀다. 이놈의 날씨 운은 여행 첫날과 마지막 날만 좋다. 처음엔 기분 둥둥 뜨게 해놓고 마지막엔 아쉽게 해서 다시 아이슬란드를 찾게 하려는 누군가의 고도의 전략 같다. 입장권과 왕복셔틀버스비가 포함된 투어를 신청했더니 블루라군 입장권과 돌아오는 셔틀버스 티켓과 셔틀 운행시간이 적힌 안내지를 함께 줬다.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는 어느 시간 대든 원할 때 탈 수 있었다. 고래 투어는 5시라서 3시 셔틀을 타면 됐기에 아주 여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개인 입장객과 단체 입장객이 들어가는 줄이 달랐는데 단체 입장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됐다. 가져온 수영복을 갈아입고 길치답게 나가는 길을 조금 헤매다가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물을 봤다. 하늘도 파랗고 빙하도 파랗고 물도 파랗고 처음 경험한 아이슬란드는 물과 파랑의 나라였다. 그 중에 제일 파란 걸 찾기는 쉽지 않지만 이 곳은 이름부터가 '블루'아닌가! 파랑에 빠질 준비가 됐는가!


사실 버스에서 내려서 입장하기 전부터 우유빛을 머금은 푸른 호수가 근방에 넓게 펼쳐져 있었다. 버스 승하차장에서 입장하는 건물까지 들어가는 주변의 풍경은 미니 싱벨리르 협곡, 판의 접경지 같은 분위기었다. 유리문을 지나 바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풍류파(?)들을 피해 용암지스러운 돌들이 올록볼록하게 벽면에 있는 조금 더 온천스러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저 너머를 바라보니 다들 바에서 붉은 빛이 도는 칵테일을 와인잔에 받쳐 들고 까치 걸음으로 종종 거리며 걷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 커플이나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온 무리들. 혼자 온 나는 조금 외로웠다. 블루라군에서 블루한 기분을 느끼며 더 뜨거운 곳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나무 데크에서 발만 담그고 첨벙거리다 등 대고 누울 수 있어 보이는 해변 같은 사이드로 접근. 하지만 서양 커플과 중국인 커플 사이에서 또 다시 방황. '아, 블루라군은 일본의 호젓한 온천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군, 여긴 혼자 올 곳이 못 돼!'라고 한탄을 하는데 어디선가 합창이 들린다. 뭔가 애국가스러운 곡을 단체로 빙 둘러서서 손을 잡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이건 또 뭔가? 이후로도 종종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풍경이었다. 좋은 경치를 만나면 서양인(유럽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곤 했다. 한 팀이 부르면 그 주변의 누군가가 또 따라 부르며 한 동안 진행되다 웃으며 다시 흩어지는 것이다.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지열과 온천열 사이로 해괴한 일본 게이샤 같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그렇다, 일종의 머드팩인 천연 실리카를 몸에 바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르면서 분처럼 된거다. 그게 또 피부에 좋다고 해서, 온천 안에서 무료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몸을 녹였다 싶으면 다들 흰 얼굴로 또 동동 떠다닌다. 그런데 이게 어디 있는거야? 따로 실리카 머드 안내판 같은 건 없고 있는 안내판은 블루라군 소개와 곧 증축 공사가 시작된다는 설명뿐. (2016년 1월에 그 공사가 진행됩니다. 해당일에는 블루라군 입장불가.) 외로움 보다 호기심이 앞서 커플들을 헤치며 흰 얼굴들의 동선을 따라 가다가 한 한국커플들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저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바르는거지?"

(온천 벽면에 하얗고 풀빛인 해초 같은 것들이 붙어 있다. 그걸 손가락으로 파내며...)

"이거 바르면 되는건가?"


아니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절대로 그러지 말기 바란다. 그건 물이끼 같은 거잖아~ 사우나 시설이 있는 다른 편 온천쪽에서 마침내 근원지를 발견했다. 몇몇이 모여 처덕처덕 중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할렐루야! 나무 판자를 열면 그 안에 실리카 머드가 들어있는 커다란 통과 나무 주걱이 있다. 그걸 퍼서 몸에 바르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용 통을 가져와서 옮겨 담아가던데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다. 어찌됐든 나도 얼굴과 팔에 바르고 가오나시처럼 돼서는 데크에 앉아 있었다. 꼬들꼬들 말라가는 피부를 느끼다 사우나 시설 옆에 있는 찬물로 씻어냈다. 개운한 기분을 혼자 느끼기 미안해 가족용 블루라군 화장품을 사기로 결심하고는 손가락에 주름 생기도록 머문 블루라군을 한 바퀴 돌고는 나왔다. 머리까지 말리려고 하니 어느새 버스 시간이 아슬아슬. 뛰쳐나가는 바람에 다시 한 번 보려고 했던 블루라군 주변의 풍경을 세심히 담지 못한게 아쉽다. 블루라군에서의 교훈은 두 가지, 절대로 혼자는 다시 오지 말자. 수영장 같은 온천장 보다 라바(용암지대)지형을 지닌 주변을 거니는게 사람도 적고 더 좋을 거 같다, 정도. 아니면 호텔에 머물며 밤의 온천을 즐기던가... 여름에 왔을 때는 빌 게이츠가 휴가를 즐기려고 아예 오후타임의 블루라군을 전세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돈만 많다면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은 곳이었다.


참고) 블루라군 사이트: http://www.bluelagoon.com/


틀버스 기사님께 구 항구 (Old Harbour) 근처에 내려 달라고 했더니 Harpa(일종의 콘서트 홀) 앞에 내려줘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김에 이전에 왔던 길을 슬렁슬렁 걸어내려 갔다. 미리 답사한 Special Tour사의 배 안드레아가 보인다. 선착장에서 입장객을 받고 있는 직원들에게 어제 투어를 못했고 이 시간으로 변경을 했다고 하니 어딘가에 무선기로 물어 보더니 입선시켜줬다. 사실 고래 투어는 후사빅이나 달빅이 더 적격이지만 북부까지 올라갈 수 없는 여건이라 레이캬비크에서 시행하는 고래+퍼핀 투어를 하기로 했다. 퍼핀은 개체 수가 많이 준데다 본격적으로 보이는 여름철이 아니라 볼 확률은 높지 않다고 했지만 운이 좋으면 볼 수도 있다는 말에 약간의 기대를 품었다.


이 날의 항해는 정말 좋았다. 하늘도 푸르고 파도도 거의 없고 게다가 백야가 시작된 타임이란 투어가 끝나는 8시경까지 날이 환했다. 가이드가 몇번이나 항해하기 좋은 화창한 날씨라며 강조에 강조를 했다. 먼저 추위를 대비에 승선객은 준비된 두터운 바람 막이 옷을 입게 한다. 그리고 한 시간 거리의 바다로 나가 배의 꼭대기에 올라간 가이드가 몇 시 방향에 어떤 고래가 보인다는 식으로 안내를 했다. 다들 뱃머리에 붙어서 그 말에 따라 왼편과 오른편으로 눈과 몸을 돌리다 추운 사람은 배 안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간식을 파는 부스에서 요기거리나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가이드가 퍼핀이 날아갔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안 보였고 얼굴을 스치듯이 갈매기가 날아갔다. 내가 고개를 빨리 돌렸다면 갈매기랑 눈이 마주쳤을 듯. 신선한 경험이었다. 고래들이 몇 번 배 주변을 돌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래는 갈매기처럼 배 가까이로는 오지 않았다. 저 멀리 시선 끝에 고래 등이나 꼬리가 파닥(?)이며 잠시 보였다 사라져서 감칠맛만 났다. '밍크고래가 12시 방향에 나타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해 주는데 위에서 보면 더 잘 보이는지 아무리 망원경을 사용한다고 해도 어떻게 고래의 종류를 식별해 내는건지 그 감식안이 더 신기했다. 난 고래 꼬리 밖에 안보이는데 말이다. 그러던 차 어미와 새끼 고래가 동시 출몰했다. 하지만 역시 아쉽게도 저 멀리 두 마리의 등지느러만 바다 밖으로 살포시 등을 내밀었을 뿐. (아래 첫번째 사진의 바다 위 까만 점이 보이는지?) 이렇게 약 2시간의 투어는 끝나고 가까이서 못 본 고래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항구로 돌아가는 선실 안에서 들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보이는 고래의 종류와 특징에 대한 설명과 질문과 답변 시간, 그리고 스페셜 투어만의 자랑이라고 칭한 실물 고래 이빨과 지느러미를 직접 만질 수 있는 체험 타임이 있었다. 하지만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거대 생물의 박제물은 진짜 이게 고래의 일부일까 싶은 느낌만 들었다. 


스텔에 돌아와서 휴게실에 비치된 고래 사진집을 들여다 보며 가까이서 못 본 고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할그림스키르갸 교회와 함께 찍힌 고래떼들을 보며 예전에는 울산에서도 고래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고래라는 생물이, 바다에 살면서도 포유류인 그들이 인간들의 욕심으로 파괴된 자연환경 때문에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건 아닐까 싶은... 울산도 레이캬비크도 예전에는 고래가 친구 혹은 신같은 존재였을텐데 지금은 관광자원(!)일뿐인건 아닌가 싶어서 한 껏 관광객 모드였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참 신기하게 생물들의 이름을 잘 알아맞췄다. 관광객이었던 나는 그냥 한 마리의 고래를 보러 갔지만 그들은 친구로서 고래를 대했기 때문에 하나 하나 그들의 이름들을 부를 수 있었던건 아닐까 싶다.  굴포스에서 봤던 '친구를 팔지 않겠습니다.'라는 표지판이 떠올랐다. 폭포를 발전소로 개발하려는 투자자들을 물리친 실화가 적혀 있었던.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이렇게 빛나도록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 속의 하나하나를 모두 친구로서의 애정을 갖고 대하는 아이슬란드인들이 있어서란 생각이 들었다. 


참고) 스페셜 투어사의 고래 투어: https://www.re.is/day-tours/reykjavik-whale-watching


[아이슬란드 1인 여행자] 전편 모아 읽기
0. 아이슬란드, 물기 어린 나라 
1. 아이슬란드의 봄은 가을하늘빛 
2. 봄엔 핑크 게이사르? 
부록_ 아이슬란드 맛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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