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책한잔 박기량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도 사람이고, 서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사람인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걸까.
그 단순한 질문 하나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을 덮을 즈음,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어린 저는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노을에 물든 강물 끝을 바라보며,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을 번갈아 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 질문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반복했을 뿐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선생님께서 과천 현대미술관 견학 기록문을 숙제로 내주셨습니다.
미술관 문을 들어서자마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탑이
하늘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TV가 한 대뿐인데,
이걸 이렇게 많이 쌓아 둔 사람은
돈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곧이어 마주한 그림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캔버스 위에 맺힌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분명 그림인데,
금방이라도 또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너무나도 선명하고 고요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그 물방울 앞에서
이유 없이 숨을 죽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무언가를 더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남은 흔적과 집착을
조용히 씻어내는 행위였다는 것을요.
그날 마음속에
아주 작은 문장이 하나 남았습니다.
‘나도 커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쩌면 그때 이미
이 꿈이 쉽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꿈은 그렇게
책과 미술관 속에서
조용히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20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늦게 그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요.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완전히 몰입하는 상태를
‘플로우(flow)’라고 부릅니다.
저에게 그림은
바로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습니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으며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찾아왔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은
맨발로 산을 걷는 일이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산을 걸었습니다.
누군가는 발이 아프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때의 저는
발바닥보다
마음속의 고통이
훨씬 더 크고 무거웠습니다.
그 힘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어린 시절 읽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속
톨스토이가 말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거창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포기하지 않게 붙잡아 주는 힘,
스스로를 완전히 미워하지 않게 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법을
조용히 가르쳐주는 온기였습니다.
이후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서울, 과천, 청주, 대전의
현대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던 중,
남편의 권유로
다시 붓을 잡게 되었습니다.
니체는 인간 정신의 마지막 단계를
‘어린아이’에 비유했습니다.
의무와 죄책감을 벗고
놀이하듯 삶을 창조하는 존재.
그 말처럼
다시
신이 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삶에는 분명
역경의 높낮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책을 통해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그림을 통해
나를 회복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서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완벽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기 위해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을.
눈 오는 1월 21일
오늘도책한잔 박기량이었습니다.
La vita è bell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