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에 대해
모교(고등학교)가 자립형 공립고로 전환하면서 교장 공모를 했다. 20년 전인 1992년, 내가 그 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부평여고에서 전근 온 수학 선생님, 그러니까 나와 함께 그 학교에 들어간 선생님이 공모를 통과해 교장이 되셨다. 여기까지가 올 가을의 이야기.
얼마 전 선생님을 모시고 동창 몇 명과 함께 인천의 한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선생님이 '동문 선배들이 얘기하는 직업의 세계' 비슷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방송사를 비롯해 증권사, 대형 백화점,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던 우리들은 선생님의 부탁같은 명령(?)을 거절하지 못했다.
오늘이 그 날이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해 출근시간을 늦추고, 마침 오기 시작한 폭설을 뚫고 모교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나와서부터 학교까지 15분이면 갈 거리가 무려 2시간이 걸렸고, 그나마도 꽉 막힌 것으로 추정되는 간석오거리를 크게 우회해서, 폭설로 폐쇄되기 직전인 산등성이 길을 달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학교가 무슨 시골에 있는 것 같지만, 평소 같으면 1시간도 안 걸리는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다.
올 겨울 첫 '대설'을 폭 뒤집어 쓴 학교는 예전 그대로였다. 본관 4층 건물 옆으로 체육관이니 동문회관이니 하는 부속 건물들이 붙어 조금 덩치가 커졌지만, 붉은 벽돌의 본관이 현관 앞 교훈이 적힌 표석을 감싼 모습을 보니, 졸업식 후 학교를 떠나며 올려다 본 그 때의 건물이었다. 다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들어선 딸린 식구들로 본관은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느낌.
예전에는 2학년 교무실 자리였던 곳에 교장실이 옮겨가 있었다.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담당 선생님의 안내로 강당에 가서 60명 남짓 되는 2학년 학생들 앞에 섰다. 간혹 눈이 반짝 빛나는 녀석이 보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학교에서 하는 의미없-게만 보이-는 일들에 휩쓸리는 것이 귀찮다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난들 안 그랬을까. 녀석들의 마음 속에는 '직업'이나 '회사'라는 단어가 아직은 그리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성적이 좀 괜찮은 녀석이라면 이번 겨울에 끝내야 할 문제집과 내신 성적들로 머리가 복잡할 테고, 그렇지 않은 녀석이라면 아마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계획에 골몰했을 수도 있다. 학원에서 본 여자아이가 궁금해 참을 수 없는 녀석이 있을테고, 방과 후에 몰려간 게임방에서 라이벌 친구를 어떻게 하면 누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가는 거겠지. 요는, 내가 그 아이들의 인생에 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주겠느냐는 말이다.
교장 선생님은 걱정이 크다고 하셨다. 말씀마다 추임새처럼 '애들이 너희 때와는 달라'를 반복하셨다. 숫자로 드러나는 평균 성적도, 대학 진학자 수로 나타나는 학교의 '잘 나가는' 정도도 예전 우리가 다니던 그때보다 훨씬 못하다고 하셨다.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하면서 뭔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하고는 있지만, 일단 본인의 '지망 학교'를 선택하고 추첨하게 되는 현재의 고등학교 배치 방식 아래서는 한 번 실추된 학교 이미지를 갈아 엎어서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하셨다. 허 참, 그렇군요. 걱정이네요. 교장실 소파에 빙 둘러 앉은 동문들의 입에서 의례적인 공감의 표현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선생님, 우리라고 뭐 그렇게 달랐을까요.
눈은 그쳤지만 돌아오는 길은 심각한 상태였다. 제설작업이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도로 위에 얇고 투명한 얼음막이 빈틈없이 펼쳐져 있었다. 기어를 저단으로 돌리고, 안전거리에 유의하면서 대로로 향했다. 막 학교를 나온 시커먼 얼굴의 녀석들이 차 옆을 스쳐지나갔다. 자기들끼리 뭔지 모를 고함을 지르고, 뒷통수를 때리고, 발길질을 하며 눈길을 뒤뚱뒤뚱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학교 밖에서, 나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아저씨였고, 그들도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고삐리'들이었다.
인생은 네가 깨달은 만큼 사는 거다. 나는 사실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모두 다 듣지 않아도 좋으니, 그 중에 조금이라도 진지한 녀석이 있다면 알아들었으면 싶었다. 맘대로 사는 건 어렵지 않으나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일정한 희생과, 노력과, 선택과, 포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그런 방향으로 수다를 진행했다면 '방송기자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힘든 시간이 됐을 것이다. 나에게도, 녀석들에게도 말이다. (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