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표지에 대해
지난주 국내에 정식 발매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주말에 걸쳐 다 읽었다. 20년 넘게 하루키의 팬을 자처해 온 터라, 이번 소설도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본격적인 독후감을 써 보기에 앞서, 오늘은 [기사단장 죽이기]의 표지에 대해 잠깐 말해보려 한다. 일본 신쵸사(新潮社)에서 펴낸 일본어판과 한국의 문학동네에서 펴낸 한국어판의 간단한 비교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좌: 한국어판 / 우: 일본어판)
일본어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고, 본문은 세로 쓰기로 되어 있다. 한국어판은 (당연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고 (역시나 당연히) 가로 쓰기다.
본문이 세로 쓰기인 일본어판의 표지는 모두 가로 쓰기로 되어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죽이기'에 해당하는 '殺し'가 앞 단어인 '騎士団長'과는 살짝 어긋나 있다. 물론 의도한 것이리라. 표지에 감긴 띠지에는 '[1Q84]로부터 7년, 기다렸던 최초공개 본격장편-선회하는 이야기, 그리고 변장하는 말'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한국어판은 조금 진지하고 차분한 느낌이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기사단장'과 '죽이기'의 어긋남 없이 담담하게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일본어판보다 저자의 이름이 작다. (작아도 된다고 본 걸까.) 일본어 제목은 그보다도 더 작게, 적당한 간격을 두고 쓰여 있다. 한국어판에서는 1부의 제목인 '현현하는 이데아'만이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어판에는 없는 그림이 있다. 먹으로만 표현된 동굴 같은 곳에, 출구의(혹은 입구의) 빛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다.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가장 큰 차이는 '칼'의 존재 여부다. 일본어판에는 '기사단장'이 주는 이미지에 걸맞은 호화로운 장식의 서양식 칼이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해 칼날을 두고 놓여 있다. 본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가는 세로쓰기 형식이라 책을 넘기기 위해서는 손잡이쪽 모서리를 들어 올려야 한다. 한국어판은 책을 감싸고 있는 표지를 벗겨내야 숨겨져 있던 칼이 드러난다.
위에서 아래로 읽는 가로쓰기의 한국어판 속표지에는 칼이 마치 바닥을 향해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칼 자체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루엣을 자세히 보면 일본어판의 칼보다 다소 장식이 덜하고, 속표지의 색깔에 맞춰 흑백으로만 묘사돼 있어 일본어판만큼의 화려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한국어판의 편집자들은 일본어판 겉표지의 칼을 속표지로 옮기고, 방향을 90도 틀어 놓았다. (겉표지에는 칼 대신 일본어판에는 없는 흑백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명징하고 단순한 칼의 이미지 대신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에 대해 딱히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고 보니 세로쓰기의 일본어판은 글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층층이 겹치고, 가로쓰기의 한국어판은 글이 좌에서 우로 흐르며 위에서 아래로 켜켜이 쌓인다. 일본어판의 칼은 수직으로 겹쳐 가는 글의 덩어리를 수평으로 찌르고, 한국어판의 칼은 수평으로 쌓여 가는 글의 무더기를 수직으로 찌르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어판이든 한국어판이든 이렇게 표지에 단호하게 드러나 있는 칼날의 방향이 의미하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독자가 눈으로 좇으며 읽어나가게 될 천 페이지가 넘는 글의 덩어리를 독자 스스로가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장치'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세로쓰기를 하는 일본어판과 가로쓰기를 하는 한국어판의 이런 '90도 편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기사단장 죽이기]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드러나 있었다. 두 책의 겉표지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속표지를 보면 역시 세로쓰기의 일본어판은 '가로' 중심, 가로쓰기의 한국어판은 '세로' 중심의 편집이다. 이런 걸 보면 표지 디자인을 하는 출판인들은 상당히 공통적인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