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만년필로 산다는 것

2015년 1월 방송기자연합회지 [방송기자] 기고(수정)

by SJ in 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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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년필이다. 이름은 카웨코라고 한다. 나의 조상은 독일에서 1935년에 처음 태어났다. 8각형으로 반듯이 깎인 뚜껑과 작은 키-평소에 10.5cm지만, 사용할 때 뚜껑을 뒤로 끼우면 그래도 13.5cm는 된다고 늘 자랑한다-가 특징인 나의 가계는 스테인레스 스틸 펜촉을 갖고 태어나는 비교적 '보급형' 만년필 축에 든다. 보급형답게 잉크는 저 자랑스러운 커다란 새 P사의 만국 공통 잉크 카트리지(미니 사이즈)를 쓸 수 있고, 그래도 나름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전용 미니 컨버터도 있긴 하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아담한 키 때문인지 우리 일가는 '스포츠'라는 날렵한 별명을 달고 세상에 나왔고, 역시 키 때문이겠지만 대부분의 형제들이 주로 손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여자들의 핸드백이나 필통 속에서 안온하게 살고 있다. 파스텔 색의 예쁜 몸피를 하고, 그녀들의 작고 소중한 비밀을 부드러운 다이어리 속지에 옮겨 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좀 예외다. 나는 올해 5월 중순에 이 녀석을 만났다. 내가 담겨 있던 양철 케이스가 열릴 때 뭔가 단단히 꼬였다는 예감이 짧은 몸 전체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일단 녀석은 남자였다. 남자들은 우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패대기치고, 술에 취해 어디다가 버려놓고는 신경도 쓰지 않기 일쑤다. 멀쩡했던 녀석들도 대학을 졸업하면 필통 따위는 유치해서 들고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고, 종이에 흔적만 남기면 그게 연필이든 볼펜이든, 수성펜이든, 유성펜이든 상관없다는 한심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사는 게 편한거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여자들에 비해 압도적이다. 게다가 나는 녀석의 두툼하고 살점이 많은 손에 희롱당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아니나다를까, 녀석은 나를 케이스에서 커내 두툼한 손바닥 전체로 감싸 쥐었다. "생각보다 작네..." 그래, 네 우락부락한 손에는 내가 참으로 부족하니 반품을 하든 다른 녀석을 새로 사든 하고, 어서 나를 내버려 달라고 외쳐댔지만 녀석에게 들릴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나의 절망적인 비명에도 반전은 있었다.


여기서 잠깐. 우리 만년필들은 한 가지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아마도 펜촉의 가장 끝, 잉크가 고여 흐르다가 종이와 만나는 마지막 지점에 응축된 능력인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만년필이면 어떤 가문을 막론하고 이 능력은 기본이 된다. 그게 뭐냐면 이런 거다. 나는 나를 처음으로 잡고 종이와 만나게 하는 인간의 '만년필 이력(履歷)'의 전체를 순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 몸에 마치 혈액처럼 잉크가 돌고, 내 속을 통과한 잉크가 적당한 필압을 받아 양쪽으로 벌어진 펜 끝에 맺힌 뒤 지면(紙面)에 내리 닿는 순간, 마치 계시처럼, 혹은 요즘 말로 '동기화'되는 것처럼 이 사람이 전에는 어떤 만년필들을 써 왔는지, 필체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우리를 대하고 있는지, 왜 나를 택했는지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생각을 굴리면 앞으로 얼마 정도 이 인간을 만나게 될지도 대충 짐작이 가고, 그 이후에 나는 어디에 있게 될지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밖으로 내색하지는 않는다. 몸을 써서 일하는 우리 종족들은 대개 말이 없는 편이다.


다시 첫 만남의 순간으로 돌아가자. 비명을 지르던 와중에 앞에서 말한 그 '동기화'의 순간을 겪었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녀석은 찰흙덩이를 뭉쳐 놓은 것처럼 무딘 손을 가졌지만, 10년 넘게 만년필-그것도 흔히 '입문용'이라 불리우는 평균 5만 원 정도 중저가의 실용적인 펜들-을 꾸준히 써 왔다. 썩 멋들어지지는 않지만 필체가 정돈되어 있었고, 특정 낱자를 쓸 때의 습관도 일관적이었다. 한 번 잡은 만년필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서 동시에 여러 개를 돌려가며 쓰지 않았다. (얘기인 즉슨,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헤어질 때까지 나는 녀석의 유일무이한 만년필이 되는 것인데, 그게 우리 중저가 만년필들에게는 꽤나 로맨틱한 이상이긴 하다.) 무엇보다 녀석은 컴퓨터와 키보드, 스마트 기기와 블루투스 키보드가 짝을 이뤄 세상의 손글씨를 학살하고 있는 이 엄혹한 시기에 손글씨를 여전히 즐기고 있었다. 녀석의 특성은 아마 직업 때문인 것 같은데, 사실 기자는 문필가, 저술가 다음으로는 역사적으로 우리와 가장 많이 동고동락한 축에 든다. 그래서 나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필 것도 없이 능동적으로 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더 이상의 저항이 무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고생은 참 많이 했다. 10월 마지막 날이 특히 기억나는데, 그날은 녀석이 출입하는 정부 부처의 높으신 분이 단통법인지 필통법인지 하는 법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의 기자간담회를 연 날이었다. 널찍한 회의실에 기자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는데, 녀석은 얇은 수첩과 나만 갖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대충 어림짐작으로도 한 시간 이상은 계속될 간담회를 어찌 다 받아 적으려는지, 녀석의 손아귀도 걱정이었지만 펜촉에 불이 나도록 종이에 문질러질 걸 생각하면 나 역시 벌써부터 잉크가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다른 기자들은 메모장를 띄운 노트북과 녹음기능을 켠 스마트폰으로 완전무장. 저 쪽에서는 아예 녹화를 뜨고 있었다. 역시나 높으신 분은 간담회에서 말을 참 많이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녀석은 크게 공들이지 않고도 슥슥 내용을 받아 적으며 진도를 잘 따라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기록을 타자에만 무조건 의존하면, 회의가 길어질수록 중심 내용보다는 말을 그대로 옮기는 데 신경을 쓰게 되고, 결국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다가 집중력이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ICT 분야처럼 영문 타자와 한글 타자가 얼기설기 섞이는 내용이라면 한/영을 넘나들다가 오타가 나기 쉬운데, 오타가 점점 쌓이면 (성격에 따라) 폭발해 버려서 기록이고 뭐고 쫄딱 망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름 10년 넘게 쌓인 '펜질'의 노하우라는 것인가.


녀석이 한자(漢字)로 자기 이름을 쓸 때 알아봤는데, 조선 말기에 수십 년 아껴 쓴 바늘이 부러지자 조문(弔文)을 지은 여인과 공교롭게도 성씨가 같다. 아무래도 이 녀석의 혈통은 가만히 생각이 가서 꽂힌 물건에 대한 집착이 좀 강한가보다. 설마 그 바늘처럼 오랫동안 이 녀석 곁에 있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건 비밀인데, 이 녀석 필통 안에는 내 몸값의 열 배가 넘는 M사의 '마이스터스튁'이 나처럼 싸구려 펜들과 함께 굴러 다닌다. 얼마 전에 마침 기회가 닿아 왜 이런 수모를 참고 계시느냐고 조용히 물어 봤는데,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시더라. 이제 나도 그 웃음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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