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와세다 인터뷰

지난해 11월, 모교에 '무라카미 콜렉션' 기부

by SJ in Wonderland

지난해 11월, 늦어도 한참 늦은 여름휴가로 오스트레일리아에 갔을 때 중학교 시절의 은사로부터 하루키가 모교 와세다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하루키의 '광팬'인걸 기억하시고, '네가 (도쿄에) 있었더라면 꼭 갔을 것 같다'며 하루키의 인터뷰 기사 링크를 보내주신 것. 두 달 뒤에 특파원이 되어 도쿄에 왔으니 나로서는 그야말로 '조금 늦어버린' 셈이 되었다.


도쿄에 와서 이런저런 기사를 검색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당시 하루키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 봤다. 이래저래 맘에 안드는 산케이 신문에 의외로 담담한 인터뷰와 스케치 기사가 있어서 [발번역].



와세다대학의 '무라카미 라이브러리(가칭)' 설치에 즈음해 직접 기자회견에 출석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9). 국내에서는 37년만의 기자회견에 출석한 이유와, 기증하는 자료의 개요, 자신의 문학관 등을 이야기했다. 취재진과의 주요 문답은 아래와 같다.

<무라카미 씨는 검은 티셔츠에 카키색 자켓과 바지, 파란 스니커즈 차림으로 등장. 신발끈은 산뜻한 오렌지색이었다>


-37년만의 기자회견에 임하는 이유는?

=37년 전에는, (무라카미 씨의 데뷔작이 영화화되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영화의 기자회견에 나가주세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 회견에 나오게 된 것은, 저에게 있어서도, 와세다대학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책임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제대로 말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료 기증을 결심한 이유와 계기는?

=집과 사무소에 더 이상 보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이상 쌓아두면 마룻바닥에 무리가 오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쌓여서 슬슬 기증이라고 할까, 기탁을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건 언제부터인가?

=생각이 떠오른 건 4, 5년 전입니다. 외국의 대학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장소를 생각해봤습니다만, 와세다가 모교이기도 하고,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의 주요 내용물은?

=레코드는 반세기 이상 수집해서, 1만 몇 천 장이 있습니다. 지금도 아직 듣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듣지 못하게 될 테죠). 귀중하다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모두 열심히 모은 것들입니다. 책은 세어보지 않았습니다만, 제 직업과 관련된 책에 한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한 책이나 제가 직접 쓴 것들입니다. 다만, 저는 아직 살아 있고, 일도 하고 있으므로(웃음), 불쑥 전부 가져가게 할 수는 없죠. 조금씩 옮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애착이 있는 자료는?

=얼마전에 오래간만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군조신인문학상(쇼와 54년, 1979년)을 받았을 때의 [군조(문예지)]를 봤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수상 소감을 읽으면서 '그때는 어렸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건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작품의 원고를 기증하는가. 귀중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원고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고단샤에 보냈기 때문에 없습니다.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해서...'귀중하다'고 한다면 [노르웨이의 숲]을 쓸 때는 유럽에 있어서 대학 노트에 줄곧 원고를 썼습니다. 꽤 쌓였죠. 초고라서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있기는 할까...있다면 기증할게요. (웃음)


-편지는 어떤 건가?

=저는 잘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대단히 중요한 서한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연애편지 같은 건 없습니다.(웃음)


-젊은이들,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 말씀을 부탁. 또 문학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설의 중요한 힘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슥 스며드는 힘이 있다면, 언어를 뛰어넘어 교환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인터넷으로 가치가 교환되는 시대입니다. 이야기라는 것을 하나의 무기로 해서 브레이크 스루(혁신적 해결)해 나가는 힘을 품고 있습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계속 나와 준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하나의 문화 속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그런 힘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자필 원고의 내용은?

=[댄스 댄스 댄스](1988년 발행)부터는 워드 프로세서, 컴퓨터로 원고를 써 왔기 때문에 자필 워고는 그보다 전 단계 (1987년 발행 [노르웨이의 숲])까지입니다.


-와세대대학에 마지막으로 온 것은 언제인가?

=(와세다대가 개최하는) 쓰보우치 쇼요 대상 수상(2007년) 이후 처음입니다. 그 뒤로는 좀처럼 올 일이 없었네요.


-'무라카미 라이브러리'가 어떤 장소가 되기를 바라나

=제 자신의 경험에서 보면 교실이나 집, 또는 아르바이트 장소 외에, 특별한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에는 나가지 않더라도 (대학에) 기분 좋은 장소가 있으면 좋겠지요.


-무라카미 씨에게 있어서 외국 문학은 어떤 존재인가

=저는 10대 시절부터 줄곧 외국 문학작품을 읽고 있습니다만, 창문을 열고 다른 공기를 마신다고 할까요, 다른 풍경을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부모님이 일본문학을 전공하기도 해서 다른 걸 해보고 싶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고베에 살면서 외국 책을 읽으며 자라, 그쪽 문학 쪽으로 가게 되었죠. 그래도 소설가가 되고 나서는 역으로 일본 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번역이라고 하는, 다른 언어와 등가교환하는 작업을 엄청나게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번역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취미라고 해야겠죠. 저는 소설을 쓰는 것 이상으로, 그런 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습니다. 등가교환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제가 쓰는 문장도 변화를 겪어 왔죠. 번역하기 쉬운 문장을 쓴다기보다, 등가교환되어 다른 문화권의 사람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일본의 문화예술업계만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숨이 막힙니다.


-기증자료에는 원고와 장서 외에 레코드도 있는 점이 심오하다

=아직 사용하고 있으니까, 넘겨준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무라카미 라이브러리'에는) 제가 음악을 듣는 환경에 가까운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는 집념이 없어서 수집하지는 않고, 어딘가에 팔아버리거나 하고 있지만, 레코드만은 수집하고 있거든요.


-음악이 소설에 미친 영항은?

=영향은 잘 모르겠지만, 아침 4시에서 4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일을 하기 전에 전날 준비해 둔 레코드를 꺼냅니다. 산책 가는 것처럼, 전날부터 준비를 하는 거죠. 그걸 들으면서 일을 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37년만의 기자회견, 감상은?

=좀 더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두들 친절해서 다행입니다. 1명 정도 부정적인 질문을 하는 분도 계실텐데 말이죠.(웃음)


<시종 편안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에 임한 무라카미 씨. 일본 국내에서는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날은 카메라맨의 촬영에도 미소로 응해주며 회견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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