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바라볼 때면 계속해서 되뇌는 질문이 있다. 이 작품이 혹 모델이 된 인물을 과하게 왜곡시키지는 않았는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제작자의 가치 판단으로 객관성이 훼손되지는 않았는가. 그에 따라 이 작품이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기능하지는 않겠는가. 이제껏 많은 영화들이 위의 질문들을 무시한 채 소위 신파와 국뽕에만 몰두하며 특정인, 특정국에 대한 혐오를 원동력 삼아 오고는 했다. 도전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은 채 그저 관객에게 분노라는 감정 폭탄을 던지고는 우리의 애국심에 편승했을 뿐이었다.
포스터와 예고편으로 먼저 접했던 <1947 보스톤>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본래 스포츠 정신이란 국가를 초월하여 함께 뛰는 서로를 존중하는 것임에도, <자전차왕 엄복동>이나 <드림>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들이 이를 그저 이분법적 선악 구도에 이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선수들을 조롱하고 방해하는 상대방은 일차원적 악인으로, 그 속에서도 스포츠 정신을 잃지 않은 대한의 청년들은 민족의 영웅으로. 하물며 이번 작품은 시대적 배경부터 일제강점기 직후의 미군정이었으니, 그 아래에서 비(非) 조선인이 어떻게 그려질지 우려가 앞서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그것이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영화는 반복적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다짜고짜 민간인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던 미군이나, 그 많은 간청에도 불구하고 비협조적이었던 하지 중장, 가슴에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달아버린 위원장에 기어이 서윤복(임시완)을 밀쳐낸 미국 선수까지. 중장과 위원장은 선수단과 갈등을 빚으며 이야기 속 나름의 역할을 맡았다지만, 다른 두 미국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속 표현처럼 그들은 그저 서윤복의 악과 깡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던 걸까? 그렇다기에는 그들이 남긴 것이 진부한 분노뿐이었기에, 어째서 그러한 상황을 연출했는지 이해보다는 의문이 더 크게 남고 말았다.
만일 미군정 당시 조선인들이 받았던 억압이나 폭력, 식민 지배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자국 정부가 세워지지 못한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더라면, 조선을 난민국이라 부르고 취급하는 미국의 지독함만으로도 충분했을 테다. 물론 전술한 캐릭터들을 극에 녹여내어 일종의 드라마적 갈등을 일궈낼 수는 있었으리라. 외적의 존재만큼 집단을 하나로 모으는 것도 또 없으니까. 하지만 실화임을 내세우고 있는 영화인 만큼 그 파급력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올라왔다. 자칫하면 한순간에 프로파간다로 변질되는 것이 역사극이니 말이다.
이러한 옥에 티에도 불구하고 <1947 보스톤>은 당당히 유의미한 성취를 이루었다. 필시 이번 추석의 신파 담당이 되어 관객의 눈물을 터트리리라는 예상과 달리, 영화는 수차례의 신파적 상황에서도 담백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윤복의 이야기는 신파를 덧씌우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음에도 말이다. 가난한 가정과 병든 어머니, 꽃을 피우기도 전에 꿈보다 돈을 좇아야만 했던 청춘의 이야기. 벌써 머릿속에서 영화 한 편이 뚝딱 만들어질 정도로 익숙한 재료들이었으니, 감독은 얼마든지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영화는 결코 과잉의 길을 걷지 않았다. 물론 선수단 출정식이나 마라톤 중계 등 일부 장면에서는 다소간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지만, 이제까지의 공장식 신파와 비교하면 그조차도 검소하게 느껴졌다. <1947 보스톤>은 인물들의 감정보다는 그들의 의지에 더욱 집중했다. 일제의 보복으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 손기정(하정우)의 아픔, 가슴에 태극기 한 번 달아보지 못했던 남승룡(배성우)의 아픔,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보내 누구보다 먹먹했을 서윤복의 아픔까지. 영화는 이 아픔들을 신파로 소비하는 대신 마라톤에 대한 의지로 승화시켜, 이들이 보스턴에 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했다.
동년 봄에 개봉했던 이병헌 감독의 <드림>과 비교해 보면, 스포츠를 다루는 두 영화의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극명하게 나타난다. 먼저 <드림> 속 홈리스들은 축구를 위해 달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저마다의 사연을 위해 국가대표가 되었고, 세계 대회의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는 오래전 잃어버린 인연과 재회하기 위해. 그들에게 축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물론 그 절절한 사연들이 이유가 되어 출전의 필요성을 외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그들과 하나 되어 응원하게 할 정도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반면 <1947 보스톤>의 세 주역은 달랐다. 그들에게도 마라톤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저마다의 목표가 있었지만, 그 이전에 그들은 그저 달리고파 했다. 조선의 마라토너로서 트랙에 오르고자 했다. 영화도 그런 그들의 의지를 존중했던 걸까. 숱한 신파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화는 한 걸음 한 걸음 보스턴을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담고 싶은 장면들도 분명 훨씬 더 많았겠지만, 영화는 과잉된 곁가지들을 잘라내어 하나의 이야기만을 확실하게 담아냈다. 덕분에 이야기의 밀도가 팽팽하게 유지될 수 있었고, 그들이 흘린 땀에 우리는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보다는 불안을 더 많이 품고 있었다. 이제는 실망조차 하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그저 그런 신파극일 것이라 마음속에서 미리 낙인을 찍어놓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느 명절 영화들이 그래왔듯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울리는 영화일 것이라 쉬이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영화는 우리가 숨죽인 채 인물들을 지켜볼 수 있도록, 저들의 의지가 왜곡되고 퇴색되지 않도록, 눈물과 웃음을 절제하여 담백한 스포츠 영화를 완성해 냈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타국에 대한 묘사나 관객이 느껴야 할 감정까지 중계하는 해설 위원 등 여전히 답습된 아쉬움은 있었다. 감정이 넘칠 순간마다 카메라를 돌려 절제를 꾀하는 점은 인상적이었으나,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영화 전체의 색깔이 다소 건조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장일단이었다. <1947 보스톤>은 함께 개봉하는 추석 영화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우려가 많았던 작품이었는데, 분명한 성취 뒤편에는 약간의 부족함이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돌아가 내 마음속 질문들을 다시 한번 던져본다면, 나는 이 영화가 실제 인물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답할 것이다. 신파가 없고 국뽕이 없어도 그들은 작품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약 8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도 우리와 그들은 이어질 수 있었다. 욱여넣은 감정에 관객이 지치지 않았기에, 우리는 오롯이 그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를 보면서도 이렇게나 응원하게 되었으니, 이는 분명한 영화의 성취가 아니겠는가. 아직은 이곳저곳 부족함이 눈에 띄지만, 분명 앞으로의 명절 영화들에게 이 작품은 하나의 자극제가 될 것이다. 세계 마라톤에 한 획을 그었던 서윤복 선수와 같이, <1947 보스톤>은 명절용 영화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당당히 상업영화의 새 지평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