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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Sep 30. 2023

<천박사>의 참신함에도 그에게 빠져들지 못한 이유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현실에 기반한 사고관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특별한 언급이나 묘사가 없는 한, 스크린 속 세상도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으리라 믿으며 이야기를 이해해 간다. 필시 저곳에서도 우리 세계의 법칙과 규율이 적용될 것이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역시 문제없이 기능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아 우리의 상식과 작품의 설정이 어긋난다면, 관객과 등장인물 사이에 인지적 충돌이 발생해 결국 몰입은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에 위의 전제는 일종의 불문율과 같이 지켜지며, 예외의 경우에는 그에 대한 설명이 수반되고는 한다.


대표적인 예외라 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판타지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다루고 창조하는 판타지의 특성상, 작품을 구성하는 설정들은 창작자의 상상력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형된다. 예를 들어 어느 작품에서는 비틀거릴 뿐이었던 좀비가 다른 작품에서는 육상 선수 못지않게 달릴 수도 있고, 십자가와 성수로만 제압되던 귀신들이 다른 곳에서는 부적에 봉인되어 퇴마 될 수도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등장하는 존재, 도구, 기술 등이 모두 천차만별이니 판타지에 있어 설정과 설명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의 주인공 천박사(강동원)는 ‘퇴마 연구’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귀신을 믿지 않는 가짜 퇴마사다. 그에게 있어 귀신이란 의뢰인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징에 불과했고, 그에 따라 퇴마는 곧 즉석 심리치료를 통한 상징의 해소와 같았다. 비록 그의 눈에 귀신을 찾아내는 영력은 담겨 있지 않았지만, 대신 자그마한 디테일 하나 놓치지 않는 통찰력이 깃들어 있었기에, 그는 그 옛날 전우치보다도 더 쉽게 수십 건의 의뢰를 해결해 왔다.


영화에서 나타난 천박사의 캐릭터는 이제껏 강동원 배우가 거쳐온 많은 배역들을 떠오르게 했다. 세밀한 관찰과 재빠른 판단력으로 있지도 않은 귀신을 만들어낼 때에는 <검사외전>의 사기꾼 한치원이 떠올랐고, 정말로 귀신과 소통하며 퇴마를 하는 듯한 모습에서는 앞서 언급한 도사 전우치가, 이후 칠성검을 휘둘러 꽂아 넣는 장면에서는 <군도: 민란의 시대>의 조윤이 겹쳐 보였다. 가짜 퇴마사라는 신선한 캐릭터에 배우 강동원의 옷을 입혀 풀어가니, 그 익숙함이 곧 충분한 설명이 되어 우리는 무리 없이 천박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천박사는 악귀를 물리치는 퇴마사라기보다 능청스럽게 관객을 홀리는 마술사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영화의 전반부에 그가 도술을 다룬다는 이야기는 없었고, 과거에 귀신과 마주했다는 이야기 역시 언급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작중에서 설명된 것은 의사 면허증이 있다는 것,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라는 것, 그리고 홍보물에 적혀있듯 귀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천박사는 여유와 재치로 똘똘 뭉친 캐릭터였다. 감초와 같은 강도령, 인배(이동휘)의 옆에서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마음껏 뽐내는 세상 제일 느긋한 캐릭터였다. 그야 그는 귀신을 믿지 않았으니까. 그저 늘 해왔듯이 퇴마쇼를 하고 수임료를 받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귀신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천박사 콤비만큼은 현실의 우리와 인식을 공유하는 평범한 사람들로 느껴졌다.


이처럼 이제까지 쌓아 올린 그의 캐릭터가 있었기에, 앞으로 이어질 악귀와의 대립에 대해 불안 섞인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평범한 인간이 대체 어떻게 악귀에 맞설 수 있을까. 자동차에 가득 실린 기계장비들로 한국판 고스트버스터즈를 보여주게 될까? 설마 그 유창한 말솜씨로 귀신들을 꾀어내게 될까? 아니면 이 눈치 빠른 사기꾼이 진짜 퇴마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까.



하지만 이 모든 기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다소 쉬운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천박사의 캐릭터를 무너트리더니 그 자리에 대뜸 당주집 장손으로서의 정체성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천박사의 몸에 당주 무당의 피가 흘렀다더라. 사실은 그의 부러진 칼이 악귀를 벨 수 있는 칠성검이었다더라. 무엇보다 사실은 천박사도 귀신이 존재함을 알고 있었다더라. 어째서 그는 이제까지 그 설정들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유경(이솜)의 등장 이후 다른 사람이 된 듯 갑작스레 무겁고 진지해진 천박사의 모습은 부정할 수 없는 캐릭터 활용의 실책이었다.


물론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비밀’이 언급되며, 울리지 않는 방울 팔찌의 존재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지도에 X자를 표시하던 모습 등에서 천박사의 과거에 퇴마와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캐릭터를 뒤집어버릴 것이라면, 전술했듯이 그러한 설정을 숨겨왔던 이유에 대해 마땅한 설명이 뒤따라야만 하지 않았을까. 창작자는 캐릭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 있겠지만, 관객은 오직 작품에서 설명된 범위밖에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설명 부족으로 캐릭터 인식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관객 또한 여유를 잃고 혼란 속에서 지쳐가게 된다.



영화 <천박사>에는 오로지 설명만을 위해 존재하는 등장인물이 둘이나 있다.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황사장(김종수)과 선녀무당(박정민)이 모시고 있는 선녀(지수)는 대사의 대부분 혹은 전부를 설정을 설명하는 데에 소비했다. 영화 스스로 해설이 너무 부족했음을 인지하고 있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 캐릭터를 소모했음에도 정작 필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보가 메워지지 못해 뻥 뚫린 구멍으로 남아있었다. 설경에 칠성검과 같은 도교적, 무속적 용어 자체에 대한 설명은 물론, 설경의 복원법이나 칠성검의 능력과 같이 이야기의 핵심에 맞닿은 설정조차 그 누구의 입에서도 설명되지 않았다.


영화의 시작은 참신했다. 귀신을 믿지 않는 퇴마사라니.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영화는 점점 필요한 설명을 밀어놓은 채 어수룩한 액션만을 거듭했다. 정작 그 액션에 사용된 칠성검의 능력조차 단지 빙의를 해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퇴마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천박사의 눈이 되어 팀워크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유경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못한 채 그저 영화 내내 어울리지 않는 전기 충격기를 휘두를 뿐이었으니, 그에게 빠져들어 궁금증을 키워가기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 과연 제목에 걸맞은 ‘연구’가 있었을까? 새로운 설정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감독의 연구가 정말 있었을까. 다시 퇴마사의 옷을 입은 강동원 배우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에 그저 편승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천박사>가 올 추석의 승리자가 될지 벌써부터 확답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나아가는 경쟁작들에 비해 다소 연구가 부족했음은 쉬이 부정할 수 없으리라. 퇴마 연구소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은 영화부터 연구해야 하지 않았을지 감히 이야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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