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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Nov 09. 2023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세 히어로의 이야기

영화 <더 마블스> 스포 없는 리뷰

인피니티 사가의 폐막 이후 마블의 위용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흥행의 관성이 남아 있는지 아직 예매율만큼은 1위를 지켜내고 있지만, 장기적 흥행에서는 벌써 타 작품들에 밀려난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로운 작품이 개봉될 때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던 그때의 마블에 비해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여 안타까움까지 느껴진다. MCU의 자랑 중 하나였던 프랜차이즈 간 연계는 언제부턴가 진입장벽이라는 단점으로 변모했고, 디즈니+ 속 다양한 이야기들은 구독 경제의 압박과 피로에 묻혀 제빛을 피우지조차 못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에는 시리즈 전편인 영화 <캡틴 마블>만이 아니라, 모니카 램보가 등장했던 드라마 <완다비전>에, 카말라 칸의 기원을 다룬 드라마 <미즈 마블>, 거기다 닉 퓨리가 중심에 있던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전>까지 봐야 한다는 말인가. 계속되는 흥행 부진에도 앞선 단점들이 여전하니, 이제는 마블 스튜디오에 대한 믿음까지도 옅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작품의 재미는 사라지고 그저 디즈니+의 압박만이 더욱 강해졌다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해 본다면, 인피니티 사가가 남긴 뜨거운 감자 캡틴 마블에게 주목해 본다면, 이번 작품이 다시 한번 우리 마음속 기대의 불빛을 반짝이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피니티 사가를 거치며 내게 남은 캡틴 마블,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의 인상은 그저 매우 강한 히어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블은 그를 등장시키며 남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강력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두 편의 영화 속에서 그는 시종일관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채 그저 무지막지한 힘을 쏟아낼 뿐이었다. 분명 그에게도 쓰라린 과거가 있었고 그 또한 크디큰 상실을 겪은 한 명의 인간이었지만, 작품 속 그의 모습은 단순히 당장 타노스를 막기 위해 준비된 하나의 장치로만 다가왔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더 마블스>, 정확히는 <캡틴 마블>의 후속 제작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상당했다. 스크린 안팎에서 영웅이 되었어야 할 그가 여러 논란에 가로막혀 인터넷 공간의 뜨거운 감자로 남고 말았으니, 이번에는 부디 우리가 캐럴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나아가 그를 또 한 명의 캡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의 인간적인 면을 화면에 담아 영웅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주길 바랐다.



물론 캡틴 마블과 같이 능력적으로 완성된 캐릭터는 그의 성장을 표현하기가 결단코 쉽지 않다. 인격체로서의 성장이란 단순히 새로운 무기, 새로운 힘, 새로운 슈트를 쥐여준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거니와, 갈등의 대부분이 힘으로 해결되는 만큼 당사자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마블은 캡틴 마블의 이야기를 이어감에 있어, 단순히 새로운 적과 싸우게 되는 시리즈의 2편 대신 히어로들의 팀업 무비라는 이례적 선택을 내놓았다.


경쾌한 오프닝을 지나 등장한 캡틴 마블은 이제까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가 도움을 청한다면 어디라도 날아가 무엇이든 해결해 버리는 최강의 독불장군. 망설임 없는 그의 모습은 변함없이 당차고 강인했지만, 곧이어 모니카(테요나 패리스)나 카말라(이만 벨라니)와의 사이에서 얽힘 현상이 발생하자 영웅 캡틴 마블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강박이라도 있는 듯 그는 계속해서 전장으로 돌아가려 했고,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힘만으로 사건들을 해결하려 했다. 지구를 떠나 영웅이 없는 행성들을 지켜온 그 긴 세월 속에서, 어쩌면 인간 캐럴 댄버스가 짓눌릴 정도로 캡틴 마블로서의 책임감이 너무 크게 자라 버렸던 걸까. 그는 친구와도 또 가족 같은 아이와도 쉬이 마주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다소간 답답한 순간들을 만들었다.


만일 이제까지와 같았더라면 그는 변화를 거부한 채, 그리고 자신과 마주하기를 거부한 채, 다시 혼자 훌쩍 날아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얽힘 현상이 캐럴을 모니카와 카말라 곁에 묶어놓았고, 덕분에 본작의 매력인 스위칭 액션과 함께 ‘더 마블스’ 사이의 교감까지도 일구어낼 수 있었다.



캐럴은 홀로 우주를 지켜오며 줄곧 스크럴의 장치를 통해 잃었던 기억을 되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자신을 찾지는 못했는지, 그는 아직도 장치를 착용한 채 또다시 기억을 되뇌었다. 분명 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같은 기억을 되돌려 보았을 테다. 그럼에도 인간 캐럴 댄버스를 찾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면, 필시 인간이란 나 혼자만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내게 기대고 또 내가 기댈 수 있는 타인을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캡틴 마블은 분명 현재 MCU에 등장한 히어로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력할 것이다. 하지만 <더 마블스> 이전까지의 그는 빌런과의 승부만을 반복해 왔을 뿐, 마음속 부담과 죄책감, 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외로움으로부터는 고개를 돌려 피해왔을지도 모르겠다. 고민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함께 짊어져 줄 존재를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러한 감정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수도 있으리라.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야기가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누구나가 알고 있듯, 캡틴 마블에게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간단한 해결책이야말로 이 영화를, 그리고 캐럴 댄버스를 완성하는 최적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분노와 복수심에 빠져, 그토록 쉬운 길조차 떠올리지 못했는데. 함께 마음을 터놓고 머리를 맞대자 길은 놀랍도록 빠르게 그들 앞에 나타났다. 히어로와 빌런의 충돌보다 세 히어로들의 팀업에 초점을 맞추어, 함께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정답을 찾아가는 것. 이보다 더 캡틴 마블에게 어울리는 성장담이 어디 또 있을까.


전편에 이어 어김없이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뉘겠지만, 첫 등장으로부터 4년 반이 흐른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캐럴 댄버스의 이야기가 반짝이고 있음은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거대한 싸움에서 캐럴과 카말라, 그리고 모니카가 각각 어떠한 역할을 맡게 될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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