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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Apr 26. 2024

부디 그것만은 버리지 말아 다오, <범죄도시4>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리즈의 최신작

묵직함은 덜어내고, 어두움은 밝혀주고. 나름의 방향성을 찾아 흥행 기록을 세워가는 <범죄도시 시리즈>에 나는 왜 온전히 박수를 보내주지 못하는 걸까. 아직도 1편을 그리워하는 것은 정말 나 혼자만의 아집인 걸까. 그래, 한 번 달성하기도 쉽지 않은 천만 타이틀을 무려 연속으로 쟁취해 냈으니, 필시 이 시리즈에는 관객을 만족시키는 분명한 힘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도 또 찝찝한 뒷맛을 남기지도 않는 시리즈 경량화의 성과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스크린 밖 불황과 정쟁에 지친 사람들이 찾게 되는 현대판 권선징악의 비전일지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결론부터 이야기해 보자면, 나에게 <범죄도시4>는 갸우뚱하던 고개를 끝내 가로젓게 했을 정도로 당혹감이 큰 영화였다. 물론 그 이유는 결코 작품의 색깔이 나의 바람과 맞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실제로 아쉬움이 컸던 3편에 대해서도 코미디적 성취에는 고개를 끄덕였었고, 시리즈가 선택한 방향성을 수용하며 4편을 향한 기대까지 챙겼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영화의 성향이 나와 다르다면, 그럼에도 이렇게나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혹 나 자신의 시야가 개인적인 집착에 막혀 좁아졌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로도 이어지기에 비난은커녕 감사를 보내도 모자랄 판이리라.


앞서 말했듯 1편을 추억하는 내게 있어 다소 가벼워진 지금의 기조가 통쾌함보다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다는 그 가벼움이 시리즈를 흥행하게 한다면, 또 침체된 영화계를 뚫고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언제까지고 1편으로 돌아가라 억지 부리는 대신 나 또한 이 시리즈를 ‘부담 없는 즐거움’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의 성취를 알기에 차마 손뼉까지 칠 수는 없겠지만, 이 시리즈에 과히 딱딱한 잣대를 들이밀며 이렇다 저렇다 힐난할 필요도 없어질 테다. 그러나 만약 영화가 장르적 색깔을 넘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정체성마저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만큼은 흥행 성적에 관계없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 어디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영화에는 유난히 사적제재가 많이 나온다고. 민주화 이전까지 기나긴 독재 정권을 지나오며, 우리네 마음에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강해졌기 때문이라고. 꽤나 그럴듯한 이야기고 어쩌면 실제로도 그러한 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 매체 속 검경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들의 대부분은 지독히 부패한 악역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무능한 조연이거나 거의 이 둘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기에 주인공 마석도(마동석)를 비롯한 <범죄도시 시리즈>의 경찰들은 특별했다.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일까, 그들은 이제까지의 상투적 경찰 캐릭터들과 달리 당연히 악하지도 또 당연히 무능하지도 않았다. 진실의 방이라는 위법적 수사를 벌이거나 조직폭력배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등 이따금 회색 지대에 슬며시 발을 걸치기도 했지만, 그러한 모습들이 우리에게 악함이 아니라 일종의 인간미로 다가왔을 정도로 그들은 그 어떤 경찰 캐릭터들보다 더 우리의 곁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관객과 등장인물 사이의 친밀감은 작품으로의 몰입을 도울 뿐만 아니라, 이 부담 없는 시리즈에 새로운 의의까지도 더해주었다. 우리가 마석도와 동료들에게 신뢰와 응원을 보내듯, 언젠가는 그 마음이 자연스레 현실의 경찰관들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으리라. 그야 <범죄도시 시리즈>는 실화를 기반으로 삼기에, 작품 속 경찰들의 모습은 모티브가 된 형사들과 곧바로 맞물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피땀 한 방울마다 이제껏 쌓여온 경찰의 부정적 이미지들이 하나둘 씻겨나가며, 비록 조금씩이라 할지언정 우리의 인식 역시 그에 따라 천천히 바뀌어갈 테다.


실화 바탕의 이야기 속에서 쉴 틈 없이 분투하는 저들과 같이, 우리 곁의 경찰관들 또한 불철주야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수많은 매체 속에서 극화되어 온 경찰의 부정적 이미지 뒤편에는 몇천, 몇만 배의 정의로움이 묵묵히 자리 잡고 있음을. 영화는 친근하고 인간적인 경찰 캐릭터들과 함께 ‘무능한 경찰 클리셰’를 탈피하며, 우리 곁에는 언제나 민중의 지팡이가 서있음을 기억하려 했다. 시리즈의 2편과 3편을 거치며 작품의 긴장감이 다소 옅어지는 와중에도 이러한 감사의 가치만큼은 확실하게 붙잡고 있었기에, 다소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마 이 시리즈를 비난하며 고개를 가로저을 수는 없었다.



그랬던 내게 <범죄도시4>는 그야말로 당혹 그 자체였다. 이 시리즈가 다분히 마석도 원맨쇼의 성격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돌이켜보면 이제까지의 영화들은 절대 동료 경찰들을 한낱 병풍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아 왔다. 물론 빌런과의 마지막 결전은 매번 일대일 구도로 그려진 것이 사실이지만, 범인을 쫓아 그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 마석도의 곁에는 언제나 강력반과 광수대 식구들이 함께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어차피 결국에는 마석도의 주먹이 다 해결해 줄 텐데, 굳이 저들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필시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던 어느 히어로 영화의 캐치프레이즈처럼, 한 명의 초인적 개인에게는 벅찬 일일지라도 경찰청이라는 조직의 연계를 통한다면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이와 동시에 마치 식구와도 같이 서로가 의지하는 모습을 화면 안에 담음으로써, 저들이 차갑도록 무심한 민중의 몽둥이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 명 한 명의 평범한 사람들임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잠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범죄도시>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의 중반부에는 장첸에 의해 상처를 입은 막내 홍석과 마석도가 병원 벤치에 앉아 속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최고의 명장면으로 뽑는 이 신에서, 마석도는 홍석을 위로하며 자신도 칼이 두렵다고, 상처가 나면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그래, 저들도 사람인데 어찌 두려움이 없겠어. 흉기를 든 범죄자에 맞서는 당당한 모습, 알면서도 위험 속에 뛰어드는 그 결연한 모습에, 나도 몰래 그들은 나와 다르다며 저 멀리 선을 긋고 있었더라. 이처럼 영화는 그들의 가슴속 한 편에 숨어있던 유약함을 조심스레 비춤으로써,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는 경찰관의 굳센 의지를 감성적으로 또 서사적으로도 훌륭하게 담아내었다.


그런데 4편의 경찰들은 어땠는가. 이들에게도 분명 고민이 있었고 또 상처가 있었지만,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영화는 이들의 인간적 면모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부상 입은 동료는 병원에 다녀와 붕대 몇 번 감으면 그만이었고, 그렇게 “괜찮습니다.” 한 마디로 넘어가면 또 그만이었다. 고민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 마석도는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지 않았고, 홀로 고뇌하는 시간을 갖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길에 ‘나쁜 놈’ 몇 명 세워놓고 그들을 샌드백 삼아 답답함과 무력함을 폭력으로 쏟아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범죄도시4>를 보며 가장 탄식했던 장면은 바로 장이수(박지환)가 경찰들을 앞에 두고 인터넷 도박에 대해 브리핑을 하는 신이었다. 물론 해당 신이 캐릭터의 힘을 잘 표현한 코미디 장면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장이수의 등장이 이제까지 유지해 온 시리즈의 정체성에 금을 내는 선택이지 않았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이수의 말마따나, 어째 형사들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본래라면 회의를 이끌었어야 할 사이버수사대는 스승님을 만난 학생인 양 이것저것 질문하기 바빴고, 그 결과 4편의 경찰들이 너무나 무능하게 보인다는 부작용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전작의 인기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은 시리즈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전략 중 하나이지만, 감독은 영화의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만 쏠리지 않게끔 적절한 선을 지켜야만 했다. 한정된 파이 내에서 장이수에게 과도한 비중을 부여하려다 보니 비슷한 역할의 사이버수사대로부터 조명을 뺏어왔을 수밖에. 차라리 이들 사이에서 주와 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한지수(이주빈) 형사에게 더 많은 발언과 리더십의 기회를 허락했더라면, 혹은 허무하게 퇴장해 버린 빌런 장동철(이동휘)과의 사이에서 일종의 두뇌전을 그려냈더라면, 시리즈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물론, 주먹 일변도의 시리즈에 새로운 색까지 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속편이 거듭될수록 영화가 스릴보다는 웃음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이번 4편은 그 정도가 지나쳐 기어이 고개를 젓게 할 정도였다. 작중 백창기(김무열)에 의해 시민이 휘말리게 된 직후에도, 심지어 고인을 추모하며 함께 묵념한 직후에도, 영화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 듯 코미디로 극을 채워 감정의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이는 앞서 언급한 ‘길거리 샌드백’과 마찬가지로 혹 감독이 드라마 파트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 아직 미숙함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까지 피워낼 정도였다.


이런들 저런들 <범죄도시 시리즈>는 그 제목만으로 마케팅 효과를 발휘하는 성공적 프랜차이즈고, 이를 증명하듯 <범죄도시4>는 사전예매율부터 신기록을 세우며 트리플 천만의 달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전편들에서 다분히 맛본 바로 그 익숙한 맛이기는 지만, 여전히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였기에 4편 역시 흥행하리라는 예측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그 영원할 것 같았던 마블 또한 침체기에 빠져있는데, 언제까지고 시리즈가 성공하리라 그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범죄도시4>는 이를 극복하려 슉슉 대는 효과음과 쉬지 않는 코미디를 첨가했지만, 그 결과 방치된 드라마가 휘청이며 시리즈의 정체성까지 훼손되고 말았다. 대체 이 영화를 제작하며 어떠한 고민들이 있었을까. 혹시 그 모든 고민들이 그저 주먹 한 방이면 해결되리라 믿고 있던 걸까. 전작들에 천만이 넘는 관객들이 호응했던 것은 결코 액션 하나만의 공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경찰과 범죄자 캐릭터를 구상하며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굴해 냈기에, 그들이 더 가까이에서 관객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부디 앞으로는 초심을 되짚으며 시리즈의 정체성을 떠올리기를, <범죄도시 시리즈>가 지닌 선한 영향력을 다시금 발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긴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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