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

나이 들고 아픈 개를 돌보는 것에 관하여

by 벤선생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개를 사랑하는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터넷을 쓸 줄 알게 된 이후부터 세상 모든 견종별 특징, 성격, 유의사항 등을 정리해 두꺼운 파일을 만들었고 이걸 통째로 외우고 다녔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는 나중에 개를 키우면 지어줄 이름을 메모해두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 생길때마다 수첩에 추가했으니 이 메모는 점점 길어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커서 독립하기 전까지는 절대 개를 키울수 없다고 하셨다.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부러운(그리고 키우지 못해서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간혹 가다 인사할 수 있게 해주는 주인들이 있으면 잠깐 만져보는게 강아지에 관한 경험의 전부였다. 그러다 내가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면서 드디어 개를 키울수 있게 되었다. 꿈만 꾸던 개 주인으로서의 삶이 드디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내 강아지를 데려온 날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긴 이야기는 다음에 천천히 풀기로 하고, 어쨌든 지금의 난 4살 된 리트리버의 자랑스러운 엄마다.


내가 회사에 나가는 날 우리 강아지가 햇빛을 받으면서 산책할 수 있게 정기적으로 도그워킹을 맡긴지도 벌써 일년이 넘었다. 올해부터 주 3일 출근, 나머지 나흘은 내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펫시팅을 시작했다. 평소 쭉 써왔던 업체에 펫시터로 지원을 하고, 온라인 및 오프라인 산책 교육과 테스트를 마친 후 정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펫시팅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부수입도 벌 수 있다는 건데, 이보다 더 좋은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견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들을 보면서 인간으로써 배울 점이 많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얼마 전 돌봄을 하러 간 집에는 18살짜리 노견이 두마리 있었다. 한마리는 말티즈, 다른 한마리는 푸들이었다. 펫시팅을 하기 전, 아이들의 보호자가 남긴 설명에 푸들은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려 겁이 많다는 코멘트가 쓰여져 있었다. 이 정도의 노견은 처음이다.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대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해질녘, 예약 시간에 맞춰 집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쪽에 은은한 불빛의 램프만 켜져있고 쥐죽은 듯 고요했다. 천천히 거실로 들어가서 소파를 봤더니 작은 강아지 두 마리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아마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듣는것 같았다. 잠시 소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존재를 알아차려주길 기다렸다. 말티즈가 먼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이내 고개를 드는데 자면서 바닥에 있던 오른쪽 얼굴은 털이 다 눌려서 앙증맞게 찌그러진 모습이었다.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코를 열심히 움직이며 공중에 퍼진 내 냄새를 맡고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옆에 있는 친구가 움직이는걸 느꼈는지 푸들도 곧 잠에서 깼다. 희끗한 회청색을 띈 눈은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바로 두리번거리며 냄새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아가야, 라고 말을 걸었는데도 반응이 없다. 이 친구한테는 냄새로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겠구나. 아이들 앞에 손을 놔두고 충분히 냄새를 맡을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말티즈는 등을 살짝 만져주었더니 꼬리를 흔들며 좋아했지만, 푸들은 만지면 놀랄것 같아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인사는 이 정도로 해두자. 보호자가 부탁한 정리와 청소할 거리가 많으니까. 일단 화장실 불을 켜고 바닥에 있는 아이들의 똥을 치웠다. 이미 여러번 소변을 본 배변패드는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세면대 아래에 있는 새 배변패드를 깔아주었다.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두 마리의 아이들이 모두 내 외투에 코를 박고 열심히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이코오 아가들아~ 새로운 사람 냄새가 나지? 말을 걸었더니 말티즈가 먼저 나한테 다가왔다. 곧 푸들도 뒤따라왔다. 내밀었던 손에 푸들의 어깨가 닿았다. 다행히도 놀라지 않는다. 살짝만 만져주고 식기를 씻기 위해 방 한쪽에 있는 밥그릇과 물그릇을 가지러 들어갔다. 나오는길에 보니 두마리 모두 내 신발 한쪽씩을 맡아 열심히 킁킁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울수가! 아직 나를 졸졸 따라다니기엔 좀 낯설기도 하고 힘에 부치니(둘다 다리 근육이 많이 없어서 마루바닥에 가만히 서있으면 다리가 점점 미끄러지며 벌어졌다) 가만히 있는 내 옷이나 신발 냄새를 맡는게 더 쉬울 것이다. 싱크대에서 밥그릇과 물그릇을 씻고 있으니 곧 밥을 줄 거라는 걸 아는지 둘 다 내 발 밑으로 다가왔다. 아까보다 아이들의 몸에 활기가 돈다. 마침 보호자한테 문자로 연락이 왔다. 실시간 영상을 보니 아이들이 둘다 신나보인다며 감사인사를 전한다. 깨끗한 물을 주고 각자의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주었다. 나머지 집안 정리를 좀 하고, TV는 켜놓은채로 두고 가달라는 보호자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켜놓고 나왔다.


뉴스에서 보면 늙고 아픈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가장 예쁘고 건강할 때 제일 많이 사랑해주다가, 반려견의 생기가 덜해지면 사랑도 그만큼 줄어든걸까?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니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거나 어딘가가 아픈 개를 생각하면 뭔가 모르게 걱정이 된다. 어릴때만큼 많이 사랑받고 있지?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 품에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지?라고 물어본다. 하지만 이날 만난 아이들을 보니 뭔가 마음이 든든해졌다. 18살의 노견 두마리. 저녁일정 때문에 늦게 귀가할것 같아 펫시터 서비스를 신청한 보호자. 아이들은 너무 잔잔하고 조용했고 천사들처럼 스윗했다. 돌봄을 마치고 집을 나갈때 둘 다 터벅터벅 신발장까지 나와서 떨리는 다리로 선 채 나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어쩜 이렇게 예쁘고 의젓할까? 개들은 늘 말이 없다. 감정의 요동도 크지 않다. 특히 서글픔이나 화 같은 감정을 쉽게 표출하지 않는다. 감정의 폭이 넓고 표현도 다층적으로 하는 나로서는 크게 배울 점이다. 나이든 개들만이 가진 이런 차분함이 나를 더 의연하게 한다.



* 프라이버시를 위해 펫시팅한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모든 커버 이미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