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아이들이 우리와 대화하는 방법

by 벤선생

여의도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 11시쯤 집을 나섰다. 이제 봄이라 도다리가 잡힌다며, 식당 사장님께서 도다리 쑥국을 추천해주셔서 일행 모두 한 그릇씩을 배부르게 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펫시팅 예약이 하나 잡혀있어 커피는 마시지 않고 일어났다. 이 날 예약도 두 마리의 친구들이다. 프렌치 불독과 푸들. 프렌치 불독은 힘이 세고 활발하며, 푸들은 약간 낯을 가린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다. 한 시간 동안의 돌봄과 산책이니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아이들을 편안하게 해준 후에 나가야지, 생각했다. 집 앞에 도착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안 안쪽에서 타다다닥 소리가 났다. 강아지의 발톱이 타일 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다.


문을 열었더니 푸들은 후다닥 도망가는 뒷모습만 보여주곤 시야에서 사라졌다. 푸들이 뛰는 뒷모습은 마치 토끼같다. 일단 보호자님이 요청하셨던 대로 집안을 정리하며 아이들이 내 존재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그런데 프렌치 불독이 두 발로 서서 점프하며 관심을 받으려 난리다. 뒷다리로 서는 건 관절에 좋지 않은데… 아이한테 무리가 가지 않도록 내 자세를 낮췄다. 그랬더니 내 팔 아래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장난을 건다.


조금만 유심히 지켜보면 개들이 장난을 치는 건 굉장히 단순하고도 효과적이다. 공격적이지 않되 같은 행위를 끈기 있게 반복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신경이 쓰일 수밖에 만든다. 가장 조용한 방법으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가서 뚫어져라 인간을 쳐다보는 것이 있다. 나의 반려견은 자주 이렇게 한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면 원하는 곳으로 잠시 곁눈질을 했다가 다시 내 눈동자를 쳐다본다. 예를 들면 나를 봤다가, 공을 봤다가, 다시 나를 보는 식이다. 쉬하러 나가고 싶을 땐 현관문을 슬쩍 봤다가 다시 나를 본다. 여기서 몸의 다른 부분(고개를 까딱거린다거나)은 전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조금 더 적극적인 말 걸기는 이 프렌치 불독 아이가 하는 것처럼 몸을 이용한 것인데, 코로 내 몸을 꾹꾹 누른다거나, 내 팔에 손을 계속 올린다거나, 이렇게 팔 사이 혹은 다리 사이를 계속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사람 아이들도 엄마가 관심을 줄 때까지 같은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듯이 강아지들도 똑같다. 펫시터인 나와 놀고 싶다는 이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다. 화장실의 배변 패드 정리를 마친 후 바닥에 앉아서 장난감으로 터그놀이를 해주고, 중간중간 보호자님이 챙겨두신 간식을 조금씩 떼서 보상을 해주었다.


간식 소리를 듣고 슬그머니 푸들 아이도 거실까지 걸어나왔다.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게 되었다. 검정 푸들이라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아이의 한쪽 눈이 없다. 펫시팅 앱 상에 올라온 사진에서는 양쪽 눈이 까맣게 빛나고 있었는데, 아마도 노화 등으로 인해 문제가 생겨서 수술한 것이리라. 백내장은 사실 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유전병 중 하나이다. 이 아이는 입은 꾹 다물고 있지만 양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어서 씨익 웃는 얼굴을 하고있었다.


푸들은 아직은 내가 낯설지만 간식은 먹고 싶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앉아, 기다려를 한 후에 간식을 줬더니 냠냠 먹고는 바로 다시 침대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바스락, 간식 봉지 소리를 냈더니 문 앞까지 다시 뛰어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조금 더 뒤로 가서, 아이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했다. 다행히도 나한테 천천히 걸어온다. 잘했다고 칭찬하며 간식을 줬더니 먹고 바로 다시 침대방으로 줄행랑.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래도 계속 와주는 게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두 아이를 함께 산책해달라는 보호자님의 요청대로 일단 프렌치 불독 아이에게 하네스를 채워주고, 나를 낯설어하는 푸들에게 어떻게 하네스를 채워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처음 내 반려견에게 하네스라는 존재를 알려주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하네스를 몸에 닿게 하고 가만히 잘 있으면 간식을 주고, 목을 넣는 구멍에 코만 들어가도 칭찬하면서 간식을 주고, 이런 식으로 하네스와 친해지게 하는 방법이다. 푸들 아이의 이름을 불러 나에게 집중하게 하고, 하네스를 바닥에 둔 채 간식을 아주 조금씩 떼어서 줬다. 아이는 이제 간식을 먹고도 방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방 문 정도에서 나를 뒤돌아봤다. 내가 부르면 다시 뛰어와서 간식을 먹고, 다시 방 문까지 뛰어가고를 반복했다. 내가 반복된 패턴을 보이니, 이게 놀이의 일종이라는 걸 파악한 것 같다.


푸들은 가볍고 귀가 쳐져 있어서 빠르게 뛰면 귀가 팡팡 날린다. 귀가 쳐진 개들이 뛰는 뒷모습을 보면 양옆으로 귀가 날려서 마치 천사가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푸들 아가는 아까보다 훨씬 신나보였다. 나와 방 문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간식을 받아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가 살짝씩 터치하면서 칭찬해줘도 긴장한 기색 없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제 슬슬 하네스를 채워줘도 되겠다 생각한 그 때, 삐삐삐 현관문에서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뭐지? 문이 열리고 아이들 둘이 번개 같은 속도로 현관으로 달려간다. 알고보니 보호자님의 스케줄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이른 시간에 귀가하신 것!


보호자님은 프렌치 불독만 15분 정도 걷게 해주고 들어와 주시면 될 것 같다며 산책을 부탁하셨다. 마침 하네스를 채워놨으니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계속 뒤돌아보며(‘우리 엄마가 집에 있는데…’) 곁눈질로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그래도 보호자님이 부탁하셨으니 동네 한바퀴만 걷자고 아이를 설득하며 건물을 나섰다.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큰 길이 나오는 인도의 끝에서 아이는 온몸에 힘을 주며 되돌아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더 이상은 안 가겠다고 버팅기는 개들의 몸은 사람이 줄을 당길 것에 대비해 반대편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다. 우리집 강아지도 늘 그렇게 고집을 피운다.


물론 우리집에 사는 40kg의 거구와 비교했을 때 프렌치 불독의 힘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가 이렇게 집에 돌아가길 원하는데 억지로 끌고 산책을 갈 이유는 없다. “그래, 알았어. 이제 엄마한테 가자!”라고 하며 뒤돌았더니 아이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이미 집에 돌아온 엄마를 본 이상 낯선 펫시터와 기분 좋게 산책을 나가긴 쉽지 않을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시원하게 쉬도 두 번 했으니 산책의 목적은 달성했다. 공동 현관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른다.


집에 아이를 안전하게 데려다 준 후, 보호자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짐을 챙겨 나왔다. 프렌치 불독은 이제서야 내가 가는게 아쉬운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두 발로 서서 나에게 매달리고 있고, 푸들은 보호자님의 뒤에서 씩 웃는 표정으로 날 보고있다. 둘 다 각자만의 방식대로 나에게 건네는 배웅 인사다.



* 프라이버시를 위해 펫시팅한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모든 커버 이미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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