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개와 함께하는 산책의 순기능

by 벤선생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놀라겠지만 우리집 강아지는 집에서 볼일을 보지 않는다. 즉, 밖에 나가야만 쉬랑 똥을 싼다. 그래서 겨울엔 하루 4번, 여름엔 하루 5번씩 산책을 나간다. 이건 내가 이 아이를 키운 이후 단 한번도 어기거나 타협한 적 없는 패턴이다. 물론, 모든 산책이 30분 이상인 건 아니다. 어떤 산책은 길고 어떤 산책은(하루의 마지막 산책은 자기 전에 나가는 밤쉬인데, 한겨울의 밤쉬는 정말 춥고 고독하다) 정말 배변을 위해서만 나가기 때문에 짧다.


개에게 산책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문제 행동을 줄여주며, 다른 개들의 냄새를 맡고 그 존재를 인식하게 해주는 일종의 사회적 소통 방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주인과 교감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모두 맞는 말이다. 개에게 산책이 좋다는, 아니 꼭 필요하다는 얘긴 수많은 사람들이 해왔다. 오늘 난 인간, 그러니까 산책자의 입장에서 산책이 갖는 순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일단 개와 함께 산책하면 내가 사는 동네를 구석구석 알 수 있다. 나 혼자 걸었다면 음악을 들으며 지나쳤을 골목들과 코너들을 개와 함께 다 킁킁거리며 조금씩 머물다 지나가니, 한 동네의 지형을 금새 파악한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도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적응 완료다. 평소 관심이 가던 동네에서 펫시팅 예약 요청이 오면 괜시리 더 설레는 건, 아이와 걸으며 동네의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건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 나의 반려견과 2년전 여름 제주도 한달 살기를 했을때,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제주를 많이 알게 되었다. 아침 해가 뜰 때 바닷가를 따라 쭉 산책하고 돌아오면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네를 천천히 파악할 수 있었고, 거기 사는 주민들과 말을 섞을 일도 종종 생겼다. 오후에는 이제 막 물질을 하고 나오시는 해녀 할머니의 그물 안에서 보말과 멍게를 구경하고, 우리집 강아지가 태왁과 오리발의 냄새를 맡는 동안 나는 해산물로 만들수 있는 음식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많이 보진 못할지라도 느리고 꽉 찬 여행을 할 수 있다.


두번째로 개와 산책을 하면 시간을 천천히 감각할 수 있다. 이건 물론 개가 어느 정도 차분할 때의 이야기다. 아기 강아지는 산책 때 흥분도가 높고, 주의집중 범위(attention span)가 짧으며, 아무거나 주워먹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시간의 흐름을 감상할 여유따윈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아이의 입에 휴지나, 구겨진 영수증이나, 고양이 똥이 들어가 있기 일쑤다. 하지만 조금 더 커서 산책 매너를 배운 후엔 훌륭한 산책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난 요즘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알아챈다. 월요일 밤까지도 없었는데 화요일 아침 산책을 하다보니 매화꽃이 핀걸 보았다. 엊그제는 올해 첫 산수유꽃이 피었다. 내 반려견이 구르는 지푸라기빛 잔디 아래 선명한 초록색이 군데군데 올라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밤쉬 할때의 공기도 이젠 훈훈하다.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아이와의 산책이 아니였다면, 벗꽃이 피기 전까지는 봄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책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생각을 비우는 데 이만한 게 없다는 점이다. 나는 풀타임 개 엄마이지만, 본업이 도그워커는 아니다. 업무적으로 고민이 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혹은 생각의 전환이 절실할 때 개와의 산책은 좋은 환기가 되어준다. 노르웨이의 변호사이자 예술 컬렉터이며 열렬한 걷기 예찬론자인 엘링 카게(Erling Kagge)는 본인의 책 [남극으로 걸어간 산책자]에서 걷는 것이 그의 생각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고백한다. 온몸에 피가 돌 즈음 걷는 속도를 높이면 몸이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고, 자연스레 머리도 맑아진다고. 그러니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나가서 걸어보라고.


'나는 우리의 많은 부분이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만약 내가 하와이의 섬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문제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걷기 대신 서핑을 더 선호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선(Zen)을 수행하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 조용히 깊은 생각에 잠기는 참선(zazen)을 택했을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였다면 걷기의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탱고를 췄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핑도 해보고, 춤도 춰보고, 다리를 꼬고 앉아도 봤지만 노르웨이 사람으로서는 걷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특별한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도움이 되었다. 내가 늘 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개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파트타임 도그워커로서, 나는 혼자 걷는 것보다 개와 함께 걷는 것이 더 익숙하다. 평생을 그래왔던 건 아니지만 지난 몇년을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이제 그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나에게는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이 가장 효과적인 걷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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