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판단하지 않기
어쩌면 난 어린 강아지를 더 어려워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아이들은 아직 성격도, 예절도 정립되지 않았기에 티끌같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한다. 소위 말하는 리액션 부자인데, 이들은 사랑스럽지만 나를 금새 피곤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강아지를 좋아한다. 작고 귀여우니까. 성견이 되고 나면 너무 크다고, 안 예쁘다며 애정을 줄인다. 나는 오히려 반대다. 노견이 가진 차분함과 조심스러움이 좋다. 굳이 노견이 아니더라도, 성견이 된 아이들과는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라 기특하고 편안하다.
지난 주말에 만난 아이는 8개월 된 포메였다. 아기 포메의 정신 시끄러움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기에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었더니 베이지색 솜뭉치가 뛰어나왔다. 신발장에는 내 키만한 골프백이 두 개나 서 있고, 화장실 앞쪽에는 골프 관련 용품 박스가 쌓여있었다. 원룸의 거실 겸 침실 입구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어 강아지의 출입을 막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원룸에 포메 아이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은 현관에서부터 거실을 막아둔 울타리까지, 약 3m 되는 좁은 복도뿐인 것이다. 아이는 헥헥거리며 내 주변을 뛰어다니고, 점프를 하고, 옷을 물고 난리가 났다. 몸을 돌리기에도 너무 비좁은 그 공간 안에서 아이의 배변을 치우고 바닥을 정리하느라 땀을 뺐다.
아이는 흥분도가 너무 심해서 내 손을 계속 깨물고, 내가 손을 안주면 얼굴 쪽으로 쉴새 없이 점프를 했다. 펫시팅을 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영상을 녹화하는 기기가 내 명치쪽에 고정되어 있는데, 아이가 그 핸드폰에 계속 부딪히며 화면을 건드려서 몇번이나 라이브 영상이 중지되었다. 잠시 일어서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하면 개들은 본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걸 알고 차분해지는 경향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으로 바닥에 앉아서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왜? 왜 안 만져줘?'라는 표정으로. 천천히 자세를 낮췄더니 다시 흥분의 도가니다. 인간의 관심에 너무 목말라 있던걸까, 라는 생각에 손을 깨무는 것에도, 점프하는 것에도 짜증이 나기보단 안쓰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보호자님이 남긴 메모엔 오늘 하루종일 밖을 못 나갔으니 공원 산책을 꼭 부탁한다는 말이 써있었다. 그리고 공원까지 가는 길엔 아이를 안고 가달라고. 텐션이 폭발한 아이에게 하네스를 채워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눈 앞에 보이는 하네스를 계속 물어대느라 머리를 넣는데까지 한참이 걸렸다. 줄을 연결했더니 이젠 고개를 돌려서 자꾸 줄을 문다. 아... 산책이 막막하다. 일단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한손으로 들어도 충분한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5분 정도 안고 걸었더니 팔목이 꽤 뻐근했다. 횡단보도까지 무사히 건넜고, 드디어 공원 초입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흥분도가 높은 아이와의 산책이 어떨지 너무 뻔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공원에서 함께 걷기 시작하니 아이가 너무 잘 걷는게 아닌가! 줄을 당기지도 물지도 않고, 지그재그로 걸으며 내 다리와 산책줄이 꼬이는 일도 없고, 이물질을 주워먹지도 않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가야, 넌 어쩜 이렇게 산책 매너가 좋은거야? 뭔가에 꽂혀서 오래 냄새를 맡다가도, 내가 '가자!'라고 하면 곧잘 따라온다. 세상에... 아까 집에서 봤던 포메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 같았다. 시원하게 볼일도 보고, 똥도 두번이나 쌌다. 잠시 벤치에 앉아 산책하는 다른 개들을 구경하는 여유까지!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물티슈로 작은 발바닥들을 닦아주고, 물그릇을 씻어 시원한 물을 채워주었다. 보호자님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깨끗한 새 물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혹시 사료도 조금만 급여해주실수 있겠냐고. 사료 보관함의 위치를 안내 받고 아이의 밥도 챙겨주었다. 밥을 다 먹는 것까지 확인한 후 짐을 챙겨 나왔다. 그러고 보니 산책을 다녀온 후에는 집에서 점프를 하지 않은것 같았다. 헥헥거리며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지도, 앞에 보이는 물건들을 물어뜯지도 않았다. 산책을 조금 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흥분도가 줄어들 수 있는데! 보호자는 이 아이에게 충분한 산책을 해주고 있는걸까? 하루종일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건물을 빠져나오며 약간은 화가 났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보호자는 아이를 위해 나름대로의 방법들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로 아이를 집 안에만 방치할 것이었다면 굳이 돈 들여가며 펫시터 서비스를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지저분한 길을 걷지 않게 하기 위해 공원까지 가는 길엔 꼭 안고 가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깨끗한 물을 갈아준 것도 보호자가 실시간 영상으로 다 지켜보고 있었다.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임에 분명하다.
펫시팅을 하다 보면 다양한 반려인과 반려견을 만나게 되고, 내가 내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너무 다르면 보호자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오늘 또 한번 결심한 것은, 나와 다르다고 해서 절대 누군가에 대해서 속단하고 평가하지 말자. 세상엔 다양한 방식의 양육법이 있고, 대다수의 보호자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것일 테다. 혹시 아는가? 오늘 만난 이 포메가 사실은 주인을 따라 라운딩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 프라이버시를 위해 펫시팅한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모든 커버 이미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이미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