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감각

개들의 놀라운 방향감각과 귀소본능

by 벤선생

지난 주는 펫시팅 예약이 거의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8개월짜리 말티푸 산책 요청이 있어서 잠시 다녀왔다. 양손에 폭 담길 정도로 작은 베이지색 말티푸였다. 집에 들어가서 아이를 찾는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워낙 작기도 했고 소파 위 담요와 쿠션 사이에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슥 둘러봤을땐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소파에서 뛰어내려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바닥에 앉아 보호자님이 두고 가신 간식으로 조금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별 어려움 없이 하네스를 씌우고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날이 풀린 덕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춥진 않아서 크게 한바퀴 돌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책을 나와서 신났는지 아이는 폴짝폴짝 뛰며 거의 두발로 걷다시피 했다.


개뿐만 아니라 많은 동물들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흥분하면 아이도 흥분하고, 그렇게 되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좋아하는걸 보니 나도 신이 났지만, 차분하게 산책하는 습관을 들여줘야 하기에 천천히 걷도록 유도하며 아이와 발을 맞췄다. 말티푸는 나의 스타일에 맞춰 점점 매너있게 걷는가 싶더니... 어느 지점부터는 보폭이 매우 느려졌다. 잠시 멈추길래 휴식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아이는 쉬고싶은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였다. 워낙 작고 아직 어리니 지금까지 짧은 거리만을 산책해 왔을수도 있겠다. 뒤를 돌아 집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아이의 발걸음을 놀라울 만큼 가벼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기까지 오는 것보다 2배는 더 빨리 걸었다.


개들의 방향감각은 굉장히 정확하다. 특히 펫시팅을 하며 느끼는 것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걷는 방향이 집을 향하는 것 만으로 산책이 훨씬 수월해진다. 지금까지 산책을 거부하는 아이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낯선 사람이 자신을 데리고 나가고 그 사람을 따라 걷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약간은 불안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난 보통 도그워킹을 하기 전, 보호자님께 평소 산책 코스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곤 한다. 익숙한 길을 걸으면 아이도 덜 걱정할 테니까.


그런데 만약 산책이 펫시터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와 함께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내가 아는 많은 강아지들의 경우, 주인과 같이 걸을 땐 어떻게든 집에 안 들어가려고 꾀를 부린다. 즉, 최대한 집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싶어서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은지, 본인이 좋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는 공간을 향해(공원, 경비실, 동네 단골 카페 등) 가려고 난리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보호자들의 회유책 혹은 대처법으로는 간식, 장난감, 줄 놓고 가는척 하기, 단호한 목소리로 안된다고 하기 등등이 있다. 다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섞어 집에 데리고 들어가는 법을 체득하는 듯 하다.


우리집 강아지도 매일 고집을 피운다. 길바닥에 엎드려서 나뭇가지를 뜯기도 하고, 잔디에 누워 등을 대고 비비거나(지렁이 댄스), 아니면 무표정으로 앉아서 심각한 얼굴로 한참 나를 설득한다. 밖에서 더 놀자고. 아직은 집에 들어가지 말자고. 시간이 많은 날들은 어느 정도 아이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며 느리적 느리적 산책할 수 있지만, 출근을 해야 한다거나 날이 너무 추울 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안돼,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아이를 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매번 고집을 부리는 걸 보면 이게 하나의 나쁜 습관으로 자리잡아 버린것 같아 걱정이다.


이렇게 매번 힘을 주며 집에 안간다고 하면 펫시팅때는 어떡하나. 내 아이를 정기적으로 봐주는 도그워커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 한번 메세지를 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산책 중에 집에 안들어간다고 너무 고집 부리진 않나요. 힘들진 않으세요?'라고. 선생님의 답을 받고 나는 너무 놀랐다. 한번도 집에 안들어간다고 뻐팅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 아이 또한 내가 펫시팅을 하며 만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엄마가 아닌 사람과 걸을 땐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거였나보다. 그 말은 내가 봐주는 많은 아이들도 본인의 엄마 혹은 보호자들과 걸을 땐 더 놀자고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일거고.


엄마의 냄새가 가장 진한 곳이 집이라고 느껴서 그런게 아닐까, 나는 혼자서 생각한다. 개들이 가진 방향감각과 귀소본능이 사실은 엄마가 있는 방향이고 귀'엄마'본능일 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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