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예술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8월부터 경기도 도서관 몇 곳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술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수업이 아니라 예술을 '잘 즐기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수업이다. 프로그램의 구성은 매우 간단하다. 예술가에 관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의견을 나누고, 그와 관련된 그리기나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다.
처음에 이 수업을 구상하고 도서관들에 연락을 취하던 당시, 나는 창작 활동보다는 의견 나누기에 훨씬 많은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김환기에 대해서 배우는 날이면, 김환기의 파란색을 보면 뭐가 생각나는지, 어떤 기분이 드는지, 다른 색으로 칠한다면 어땠을지 등 아이들이 최대한 본인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도록 말이다. 다행히 수업 대상이 초등학생 저학년들이라 말도 잘 통하고, 어려운 개념이 있어도 열심히 설명해주면 얼추 이해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몇 번 가르치다 보니 느끼는 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8-9살 아이들은 본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걸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 내가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이건 어떻게 생각해?' '이 그림 중에서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들어?' '왜 그런것 같아?' 등의 질문을 자주 하는데, 이때 서로 말하고 싶어서 난리가 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 되면 자기표현이 점차 줄어든다는데 이 열정적인 수다쟁이들도 그렇게 될까?
예술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답이 있든 없든. 사실 정답이 없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의 장점 아닌가. 아이들이 내 질문에 각자의 답을 하는 것이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봐 주는 어른들이 많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는 그리기나 만들기 활동에 있어 엄격한 제한이 있을까봐 걱정을 많이 한다. '제 친구 그려도 돼요?' '먼지 그려도 돼요?' '색깔 섞어도 돼요?' '작게 그려도 돼요?'와 같이 내가 생각했을 땐 당연히 해도 되는 것들인데 자꾸 질문을 한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는 '당연하지!' '그럼~!' '너 마음대로 다 해도 돼'라고 말한다. 무엇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보다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계속 말해준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에게 순식간에 정을 붙인다. 나에게 사랑을 참 많이 표현한다. 종이로 온갖 탱크, 자동차, 꽃, 벌레 등을 접어서 나한테 선물해 주는가 하면, 선생님한테만 보여주고 싶다며 스케치북 한 코너를 색종이로 가려놓고 그걸 열어봤더니 '사랑해!'라고 써둔 아이도 있었다. 너무 예쁘고 고맙고 감동적이어서 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수업을 두 번 정도 진행한 후 도서관 운영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수업 때 너무 산만하고 시끄러워서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우려를 표하셨다. 일단은 잘 알겠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아이들을 진정시키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다른 걸 한다거나, 내 말을 듣지 않는 건데, 지금 이 아이들은 좀 시끄럽고 어수선하긴 해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도서관 운영위원회 분들께 조금 더 내 철학을 강하게 얘기할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색과 감정과 표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에 노출되면 아이들이 자라서도 그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이런 식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마음껏 예술에 대해 떠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앞으로 마주하게 되는 그 어떤 예술 앞에서도 두려움이나 편견 없이 본인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커갔으면 한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