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한국씨티은행이라는 사명을 들으면 생소하게 느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이는 아마도, 1983년 한미은행과의 합병까지 거슬러 올라 그 후의 연혁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2021년 월가 최초의 여성 CEO인 제인 프레이저가 씨티은행에 취임을 하고 나서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영업 철수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쭉 그 기조를 이어오고 있는 게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돌이켜보니 내가 이 은행과 연을 맺은 것은 계좌를 개설하면 뭔가 혜택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입출금 계좌를 만들어 놓고는 지금까지 거의 사용을 하지 않았던 것만 보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이 은행이 우리나라에서 영업 실적 개선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 물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서, 당연히 이 은행에 관하여 최소한 내 주변 사람들 생각은 어떤지도 살펴봐야 하겠으나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가 상당히 낮은 상황이란 건 변함이 없을 터.
지난 9월 어느 날 해당 은행으로부터 카톡을 하나 받았다. 몇 년 전 계좌 개설 때와 비슷하게 이번엔 계좌를 해지하면 상품권을 준다는 이벤트. 언제 계좌를 해지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상품권까지 받으면서 없앨 수 있다니 결코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해지 방법으로는 개인이 직접 온라인상에서, 고객센터와의 전화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영업점을 방문해서와 같이 크게 3가지를 예시해 놓고 있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디지털 문명인으로서 당연히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해 열심히 해지 과정을 밟아가다가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디지털 OTP 번호를 부여받아야 하는데, 계좌 개설 후 휴대폰 기종을 바꾼 적이 있는 사람은 디지털 OTP 앱을 재설치하고 그 이후 다시 해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고작 이 정도 번거로움에 상품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당연히 휴대폰에 뜬 팝업창의 안내에 따라 모든 과정을 충실히 거쳐갔으나, 상품권 획득에 목메단 내 열의만큼이나 상품권을 주겠다는 해당 은행의 꼬장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일정 기간 사용치 않아 계좌가 잠겼으니 고객센터에 직접 문의해서 해지하라는 안내 메시지. 타 은행들의 경우 휴면 계좌를 푸는 건 온라인상에서도 쉽게 해왔었는데, 이 경우엔 해지와 관련한 것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한국씨티은행이라는 특정 금융기관만 이런 방침을 정해놓았기 때문인진 몰라도 절차가 좀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상품권 약발이 식지 않은 나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해당 고객센터에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계좌를 해지하려고 하는데요. 문제가 어쩌고 저쩌고.."
"아, 그러셨군요. 우선 먼저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 경우엔 저쩌고 어쩌고.."
어쩌고 저쩌고에 담은 내 사정과 저쩌고 어쩌고에 담긴 안내 사항을 요약해 보면 결국 내가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서 해지를 해야 한다는 것. 영업점 방문이라니. 빠지직! 마치 얼음이 갈라지듯 상품권 획득에 대한 내 열의에 사정없이 금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영업점까지 가서 일처리를 해야 할 바에야 차라리 해지를 안 하고 그냥 놔둬도 되지 않겠느냐는 나의 실망 섞인 멘트에 안내원은 저희 은행 영업점이 전국적으로 많지 않긴 한데 사시는 곳을 말씀해 주시면 최대한 가장 가까운 영업점 위치를 문자로 안내해 드리겠다는 멘트로 화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는 종료됐다. 일장춘몽! 내가 잠시 헛된 꿈을 꾸었구나. 상품권이 뭐라고 앱 조작부터 고객센터 전화까지 아까운 시간만 허비했구나. 띵! 이내 곧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단발음이 울리고.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을지 모를 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친절함을 유지했던 안내원의 노고가 고마워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오오~ 위치가 이곳이라고?!
여기는 지하철을 타고 누워서 떡 먹고 있으면 도착할 수 있는 바로 그 역 주변이 아니던가. 쫘아악~ 선명하게 갈라진 얼음처럼 덧없이 찢겼을 거라 생각했던 상품권이 어느새 밝디 밝은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눈앞에 아른거렸다. 지옥과 천당, 이건 너무 오번가, 아무튼 실망과 기쁨이 교차하며 다시금 상품권에 고무된 나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시간을 보니 은행에 도착해 일처리를 한 후 그 부근에서 점심을 해결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 그 와중에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오른 건 덤이자 필연이었다.
먹는 데 있어 한번 꽂히면 주야장천 한 놈만 패고 또 패는 사람. 한번 정한 타깃! 이 메뉴 저 메뉴 한눈팔지 않고 올해 들어선 더블 에그포테이토치즈 샌드위치만 집중적으로 공략해 매질을 가했던 사람. 그래서 내가 오래전 대학교 근처 동문 후배의 자취방에 놀러 가 여러 날 동안 함께 저녁 메뉴로 줄기차게 피자를 시켜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사람. 옛 추억을 소환한 즐거움으로, 이번엔 나도 소가 여물을 씹듯 재차 삼차 음미하며 맛본 바로 그 샌드위치에 지금껏 193,100원을 지출하도록 만든 사람. 그렇게 그 사람이 즐겨 찾은 샌드위치 가게가 해당 은행 근처에 있다는 게 생각났다. 이것으로 오늘 점심은 해결! 혹시 알아? 근무처가 근방이라 점심시간 거기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날 계좌는 잘 해지했고, 점심으로 해당 가게에 들러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었으나, 끝내 그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다.
https://youtu.be/QQd9gmyNdv4?si=1O2YWF5_D5Rqzkdy
1996년에 발표된 토이(Toy) 2집 타이틀곡,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초반 멤버로 등장했을 정도로 가창력이 뛰어난 사람, 김연우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게 바로 이 노래 때문이었다. 듣고 있으면 참 편안하고 쉬운 노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막상 부르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감정을 실어 중얼거리듯 부르는 초중반도 만만치 않거니와 고음으로 들어가는 후렴 부분 또한 끝까지 가사의 뉘앙스를 살려 부르기가 결코 쉽지 않아 일반인은 물론 웬만한 가수들도 시도하기 어려운 곡이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다닐 때 선후배들과, 그리고 졸업한 후 얼마 동안 마음에 맞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겨 찾았던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몇 번 불러본 적이 있지만, 소화하기 힘든 난이도 때문에 언제부턴가는 아예 그냥 듣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주 오랜만에, 그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잠시 기대했던 그날,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 노래는 이별이라는 사건을 두고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고백을 담고 있다. 상대방은 전혀 아닌데 본인만 일방적으로 질척거리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찌질하고 한심한 고백인지, 아니면 서로 간에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을 경험했던 상황에서 한때 구원이라고까지 믿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하는 가여운 고백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한데 어울린 가수의 목소리와 곡의 멜로디는 그 자체 만으로도 듣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아련한 심정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렇지만 혹 아주 냉철하고 이지적인 누군가는, 친구들과 술 먹다가 네가 떠올랐다는 걸로 시작하는 이런 노래는 그저 술기운에 취한 주정뱅이의 한탄에 지나지 않는다 일갈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느 누구건 간에 사랑이 깃든 청춘사업에 있어 한두 번쯤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망해본 적이 있을 테니 인지상정의 차원에서 이 정도는 그냥 익스큐즈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끔 널 거리에서 볼까 봐 /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하곤 해 / 아프진 않니? / 많이 걱정돼"
하지만 이 곡에 담긴 주된 정서와는 조금 다르게 그날 내가 흥얼거렸던 노래는 연인이 아닌 인연으로 만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은행의 위치가 다름 아닌 그 사람이 근무하는 곳 근처라는 것, 그리고 굳이 점심을 그 부근에서 해결하려 했던 것도 그 사람이 즐겨 사 먹었던 바로 그 샌드위치 가게가 은행 가까이 있었다는 것 때문. 그래서 나에게 그 어떤 행운이 찾아온다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반갑게 그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함께 샌드위치를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바람을 노래하고 싶었다. 집을 나서기 전 어떤 옷을 입고 갈까 잠시 고민했던 것, 은행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점심시간에 맞춰 그 가게에 가지 못할까 싶어 은근히 조바심을 냈던 것, 그날 그곳 그 시간대에 그 사람을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예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든 쓰지 않는 은행 계좌 해지 처리에서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렇듯 우연한 기회로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처럼 짐작도 할 수 없는 엉뚱한 일을 계기로 누군가가 떠오른다는 것은 평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을 자주 생각하고 그리워했기 때문은 아닐까. 치열한 일상을 버티게 했던 안식처로 옛 연인을 그리는 마음과 부담되지 않을 만큼 내 몫의 위로를 건네고픈 인연을 생각하는 마음. 그게 어느 쪽이건 간에, 아프지 않으냐고 많이 걱정된다고 묻는 짧은 한마디에 가늠할 수 없는 미안함이 담겨 있음을 상대방이 알아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나버린 사랑이기에 오래지 않은 인연이기에, 무엇 때문에 힘든지 시시콜콜 캐물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못내 미안해한다는 걸 그 사람이 알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까워한 적이 있다.
상품권이 도착하려면 아직 며칠이 더 남았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다시 제로에 수렴하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만나고파 또 다른 핑곗거리를 찾아 그 샌드위치 가게에 들를지도 모른다. 차마 미안하단 말까진 전하지 못하더라도, 걱정됐다는 말 보고팠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