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2018년 10월 23일 화요일의 살풀이

by 비누

신독愼獨.

우리 집 가훈이다. 홀로 있을 때에도 조심한다는 뜻이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선 으레 가문을 적어가는 숙제를 하지 않던가. 박찬욱 감독이 가훈을 묻는 딸에게 "아니면 말고"에서 "두 가지 종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자"라는 말을 들려준 것과는 상반되게 우리 아빠는 꽤 준비한 것처럼 이런 어려운 단어를 알려주었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빠는 혼자 있을 때도 남들이 볼 때처럼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거라고 했다. 꽤 어렸는데 나는 이 말이 멋지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게 그 유명한 <대학>과 <중용>에 나오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다. 더 정확히는 어떤 환경에서도 내 마음이 뜻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서, 혼자 있을 때도 어떤 유혹에 현혹되지 않고 풀어지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본분을 지키는 경지에 이름을 일컫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후에 조금 더 명확하게 이 말의 뜻을 알게 된 후에는 내가 그 뜻을 알지도 못한 채로 이 말을 오랫동안 삶에 새기며 살았음을 깨달았다. 아주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나는 거리낄 게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으며 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매 순간 원하는 것이든 원하지 않는 것이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설령 결과가 최고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정의나 도리, 윤리를 벗어나는 일에 가담하거나 방관하지 않도록 늘 무언가를 말했다.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한다. 곧잘 나대서 싫다고도 한다. 꾹 입을 다무는 것은 언제나 미덕이고 우리는 누구나 겸손을 종용받으며 사소한 기쁨도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은 '재수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입을 다물 줄을 모르면서 컸다. 기억의 가장 먼 곳, 처음으로 친구들이 나를 따돌렸을 때 그 이유는 내가 유럽으로 가족 여행 가는 게 '재수없어서'였다. 우리 집이라고 뭐 넉넉해서 갔겠나.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가 그야말로 조금 더 깨어있어서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데려가고 싶어서 꾸역꾸역 허리띠 졸라매면서 모은 돈이었겠지. 그때 우리 엄마 아빠 나이도 겨우 마흔이거나 마흔이 좀 안 됐거나 그럴 때였다. 우리 부모님은 각자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방에서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 와서 졸업과 거의 동시에 취업하고 결혼한 부부였는데 모아봤자 뭘 얼마나 모았겠어. 나 어릴 때 아빠가 하도 '돈을 아껴야 한다'라고 해서 그 어릴 때 2000원 용돈 받으면서도 꼬박꼬박 용돈기입장을 쓸 정도로 독한 애였다. 아무튼 그땐 몰랐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걸. 지금 생각해보면 겨우 열두 살인지 그랬는데 난 그때 '은따(은근히 따돌림을 당한다는 뜻, 요즘도 이런 말을 쓰나?)'였고 처음으로 친구가 아무도 없는 아이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배웠고 생의 모든 일엔 명암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린 내가 안돼서 슬퍼. 이제 다 옛날 일이라고 가끔 우스갯소리도 해보지만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거든.


그리고도 난 중학교, 고등학교 줄줄이 가장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랑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랬고. 상처의 크기는 같지 않고 깊이도 증상도 다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인 건 모두 도무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는 거다. 오늘도 원래는 이런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난 그냥 아침에 토스트 해 먹고 저녁에 시금치를 곁들인 닭고기 카레를 먹었다고 적으려고 했다. 혼자 있어도 먹은 걸 치우고 입은 걸 빨고 널고 밥을 챙겨 먹고 뭐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적으려고 했다는 거다. 이야기는 늘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흐른다.


아무튼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뭐 그래도 살 수 있다는 거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 뭐 별수 있냐는 거고.


한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적도 있었다. 내가 발견한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 행복함과 대단함을 나누고 근사한 장소에 가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몰랐을 때━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존재라는 거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여중생A를 알게 되었다면 좋았을까? 물론 그래도 나는 재희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 사람들의 자리는 잠시 공석이었다가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주었다. 세상은 넓고 인생은 아주 긴 시간 때우기라서 사람은 얼마든지 더 만날 수밖에 없다. 나를 떠난 사람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아니까. 아무도 내 곁에 없어도 나는 계속 오늘을 살아 내일로 가야 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끝없이 떠들 거고 여전히 여전한 나일 것이며 겸손을 모르고 나댈 테지만, 그래서 혼자일 줄 알았던 나를 그럼에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몇 있어 사는 게 좀 덜 외로워진다. 그러므로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홀로 있을 때 오롯이 자신의 감정을 책임지는 것, 다룰 줄 아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또 그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거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그럴듯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서야 비로소 같이 걸을 수 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아무튼 위와 같은 이유로 도무지 내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서였다. 억울하고, 서운하고, 슬프고, 절망적이고, 괴롭고, 음울한 이 마음을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 시작했던 일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죽고 싶은 몇몇의 순간마다 손목을 잡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글로 살풀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들과는 가능하면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희망적인 이야기. 내일을 기대하는 이야기를. 그보다 불행은 전염되니까. 나의 사사로운 불행은 0과 1로 변환해서 여기 가둔다. 현대의 주술이지, 뭐.


누가 이 글을 볼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불특정 소수의 사람일지도 혹은 특정 소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점이 이 글을 이렇게 장황하게 적어놓고도 올리지 못하고 말을 늘이고 있는 이유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를 팔아먹고 산다. 내 기억이 누군가의 위안이 된다면 몇 번이고 되팔겠다. 내 글을 찾아 읽어주는 특정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또한 불특정 소수의 당신들께도. 끝으로 내게 연락과 사랑을 주는 모든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천천히 떠올리며 글을 마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 아니면 도무지 슬퍼서 쓸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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