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30분, 땡! 오늘도 책방 문을 오픈 시간에 딱 맞춰서 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책방 오픈 시간을 정할 때 10시 30분은 ‘껌’이라고 생각했다. 늦어도 아침 7시 15분에는 집을 나서던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식 오픈은 10시 30분이지만 적어도 9시 30분까지는 책방에 도착하여 빨리 청소를 끝내고, 내 글을 쓰리라 생각했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역시 글 쓰는 시간을 따로 내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공간이 있으면 쓸 줄 알았건만) 책방으로 달려가기 전, 집안일은 왜 이리 많은지. (그동안 정말 밀린 집안일에 모른 척, 눈 감고 살았나 보다) 혹시나 내가 도착하기 전에 책방을 찾은 손님이 허탕 치고 가면 어쩌냐는 마음으로 총총걸음으로 책방 앞에 도착했다.
책방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의 대충의 순서는 이렇다. 청소기를 밀고 화분의 흙을 살펴봐서 건조하다는 생각이 들면 물을 준다. 책방 앞으로 온 택배가 있으면 정리한다. (책방으로 오는 택배의 95%는 책이다) 이것 외에도 일력 뜯기, 책방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심하여 고른 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기의 소소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하면 대략 11시 30분. 커피를 한 잔 내려 책상 앞에 앉는다.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라 오늘은 무얼 먹지 하고 생각한다. 책방 근처 분식집에 들러 잠깐 후다닥 먹으러 갈까 하다가, 그 사이 손님이 올까 봐 가방에 챙겨온 떡이며 빵을 주섬주섬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둔다. 책상에 앉은 지 꽤 되었지만, 손님이 없다. ‘오전은 이렇게 0권을 기록하려 나보네.’ 책방의 건물주 사장님은 나보다 더 걱정이다. 사람이 없는 게.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신다. 책방을 열기 전 준비할 때는 빈백을 놓으면 참 좋겠다 하고, 책방을 개업한 후로는 책방 1회 이용권 3천 원 정도에 책정하여 10회 쿠폰을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하신다. 좋은 생각이라고 응수하고는 텅 빈 책방을 둘러본다.
책방을 운영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냐고, 아무도 없는 책방에서 심심하지 않냐고 묻는 지인을 떠올리며 ‘난 아무도 없을 때 무얼 하지, 생각보다 바쁜데.’라고 혼자만의 변명을 읊어본다. 가장 공을 들이지만, 일한 티는 하나도 나지 않는 것. 그건 바로 프로그램 구상한 후 홍보를 위하여 게시물을 만드는 일이다.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북 토크, 책 소개를 위한 게시물을 그냥 글로 써서 홍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사진을 찍고, 문구를 생각한 후 캔바나 미리 캔버스를 이용하여 곱게 카드 뉴스 형태로 단장하는 일이 남았다. 직관적으로 눈이 가고 보는 이들이 신청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글씨를 키웠다 줄였다, 사진을 정면 배치했다가 15도 정도 틀었다가, 서체는 다정하고 귀여운 거로 했다가 정자체로 바꿔서 묵직한 느낌으로 했다가. 이러다가 보면 1시간은 훌쩍 간다. 고심하여 몇 번의 수정을 거친 뒤, 인스타에 올리거나 출력하여 책방 앞에 붙인다. 이런 작업이 의외로 손이 많이 가서, 이젠 하나의 게시물을 고정 형태로 만들어놓았다가 필요한 때 문구만 간단히 수정할 수 있도록 고안 중이다. 예를 들면, 책 입고 소식은 노란색으로 하고 책 서평은 분홍색으로 하여 한눈에 봐도 저 책방지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예상할 수 있도록.
컴퓨터로 하는 작업이 끝나면 몸을 움직인다. 지난주에 온 손님이 이번 주에 와서 책 위치와 배치가 바뀌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책을 여기 꽂았다가 저기 넣었다가 해본다. 나름의 분류는 있다. 기본적으로 어린이/청소년이 볼 수 있는 책 전시대, 성인 위주의 책 판매대, 그리고 에세이는 에세이끼리, 소설은 소설끼리 묶는다. 책방지기인 내가 특별히 제안하고 싶은 책은 따로 장소를 마련한다. 흰색 면장갑을 끼고 책등이나 모서리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들어 움직인다. 책을 여러 권 꽂으려다 책 띠지가 구겨지거나 뜯어지면 곤란하다. 띠지 하나도 소중하니까. 분명 새 책인데 헌책으로 보는 손님이 있으면 곤란하니 신중히 책 배열하는 작업도 컴퓨터 작업 만만치 않게 오래 걸린다. 홍보물을 만들면서 눈알을 빠르게 굴려 가며 컴퓨터 자판을 다다닥 치지 않고, 책 배치를 위해 종종걸음을 걷는 건 물론 아니다. 가끔 내가 백조가 된 느낌이 든다. 우아하게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있지만, 마음 저 끝 바닥에선 바쁘게 발길질하면서 지내고 있으니까.
이러다 보면, 점심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빵과 떡을 조금씩 떼어먹으면서 생각한다. 책방 내부가 다 보이는 큰 창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며 “저기, 저렇게 손님이 없어서 어쩐대?”라고 느끼겠는데. 북적이진 않아도 나름 이렇게 바쁜 걸 모르겠지. 정말 바빠서 겨우 짬을 내서 인스타 올리고, 책 읽은 여유를 만나면 기뻐할 날이 올까 안 올까. 그래도, 내 공간에서 ‘책방에 손님이 없을 때 책방지기는 무엇을 하나’ 글 쓸 수 있어서 아직은 참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