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들, 일어났니?"
아들과 딸이 등교 시간에 맞춰서 갈지 걱정되어 가족 단톡방에서 확인했다. 나는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기 위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초등학생 쌍둥이들은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가고, 중학생 큰아들은 재량휴업일이어서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을 테다. 단톡방에 기상 시간 확인과 함께 더 많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1. 오리고기+밥 먹으렴^^
2. 주혁이 물통 챙기기
3. 오늘 흐려. 간간이 비 온대. 주원이는 놀러 나갈 때도 우산 챙기고.
4. 빈 통에 포도 담아 놓았다.
이제 알아서 하겠지. 시험 볼 수험생인 내 걱정이나 해야지. 다행히 고사장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였다. 바쁜 아침에 복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니 럭키 비키다. 올해는 수능 추위까지 없으니 참 운이 좋네 싶었다. ‘인천광역시교육청 25지구 제46 시험장’이라고 적힌 건조한 현수막 아래 지인들의 응원은 간절해 보였다. 정말 오늘은 특별히 불운은 비껴가고 실력 발휘의 신이 수험생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표정. 교문을 지나 1층 복도에서 수험번호표에 적힌 26393030 수험번호가 몇 층 몇 고사실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3 고사실은 4층.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갈까 하다가 나이 든 티 내지 말아야지 싶어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4층 3 고사실의 내 자리를 확인했다. 앞에서 3번째. 이것도 좋아. 맨 앞도 아니고 가장 뒷자리도 아니니. 아! 그런데, 연두색 책상을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연두색 책상 위에 올려둘 신분증 생각이 번뜩 났다. 신분증이 없었다. 두 어깨로 메는 가방으로 바꾸면서 마지막에 "오늘 돈 쓸 일 없으니까." 하며 지갑을 뺐다. 신분증도 들었는데. 시험 보는 날, 가장 중요한 준비물을 제대로 확인 안 하는 얼빠진 사람이 바로 나라니!
본부석으로 가면 해결책을 제시해 주리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미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입실 완료 시간인 8시 10분까지는 10분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급한 와중에 본부석에 혹시라도 동네에서 본 얼굴이 있으면 어쩌나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3층 본부석 앞에서 서성이자, 다행히 나이 지긋해 보이는 선생님이 한 분이 밖으로 나오셨다. 그분 역시 '아직 시험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일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정말 죄송하다며,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하니, 굳은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신분증을 빠뜨리고 오는 일 정도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직 시간 있으니 당황하지 마시고 1층 행정실 가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팩스민원으로 받으세요."
생활기록부 맨 앞장에 있는 주민등록번호, 사진으로 신분증을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1층 행정실이라는 글자는 왜 이렇게 눈에 안 들어오는지. 1층 복도를 몇 번이나 뛰다 싶게 빠른 걸음으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른다.
행정실에 도착해서는 연신 "제가 미쳤나 봐요. 죄송합니다."를 중얼거렸다. 시험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나도 애가 타지만, 처리하는 이도 얼마나 속이 탈 것인가. 행정실에서는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일단 입실하면 생활기록부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마음이 급하여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4층으로 마구 뛰어 올라가는데 땀이 줄줄 흐른다. 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의 가장 첫 장은 1교시 시험 예비령이 울리기 직전에 교실로 도착했다. 누군가의 수고에 감사해하며 생활기록부 한 장을 건네받았다. 생활기록부에는 고3 담임선생님의 필체가 가득했다. 28년 전의 기록이므로, 컴퓨터로 쓰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직사각형 표 안에 적힌 반듯반듯한 한글 타자로 친 생활기록부를 상상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붓글씨 쓰는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단정하고 엄격한 궁서체. 맨 앞 장의 내용에는 고3 시절의 나의 신상 정보, 신체 발달상황, 나의 장래 희망, 부모 장래 희망, 담임선생님의 진로지도기록, 특기 및 취미가 담겨 있었다.
- 학생 장래 희망: 특수교사
- 진로 상담내용; 학생의 희망대로 권고함.
내가 그랬었구나. 그랬단 말이지. 그랬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힌 몸무게와 지금의 몸무게에 큰 차이가 없다. 28년 전 원했던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다. 몸무게가 같다고 똑같은 몸일 수 없듯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나이에 왜 보는 거야?" 중1 아들은 쓸데없는 일 한다는 투로 말했다. “엄마 실력이 궁금하면 나중에 시험지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으면 안 되나?” 남편은 다른 사람 괜히 고생시키지 말라며 주의를 줬다. “당신이 나오고 싶다고 하여 그냥 나오면 안 된다. 포기원 쓰는 거야.” 딸은 관심이 없었다. 가족의 반응이 이러할진대, 다른 이들이 날 이해 못 하는 건 당연했다. 많은 이들이 왜 수능을 다시 보냐고 물었다.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랬다. 50살이 되면 대학교 다니면서 좋아하는 공부 하고 싶어서요. 꼭 어떤 목적이 있어야 했나. 그냥 하고 싶은 일은 하면 안 되나. 어떤 큰 꿈과 포부가 있어야지만 수능을 볼 수 있는 건가. 하여튼, 47살이 되어 도전한 수능 시험장에서 19살의 생활기록부도 만나고. 지루할 줄 알았던 11월 14일, 생활기록부 덕에 어릴 때 내 꿈도 떠올려보다니. 이것 또한 럭키비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