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보산사 시절
3개월간의 '동안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많은 분들이 내게,
"스님,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돌아와야 해요."
"여러 장애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도 꼭 극복하고 오셔야 해요"
나는 "네, 네.. 그럼요."라고 대답하면서도 조금은 의아했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코비드.
미국에 있을 때부터 코비드 얘기가 조금씩 시작되더니, 한국에 돌아오니 본격화된 것이다.
'미국비자 준비가 시작됐는데... 괜찮은 거겠지?'
어쩌랴... 내 복에 달린 문제니, 복을 쌓는 수밖에.
2020년 4월에 마스터께서 한국에 방문하셨다. 공항의 검사와 격리를 무릅쓰시고도.
한국의 한 재가불자님이 마스터의 가르침이 한국에서도 펼쳐지길 염원하며 청주에 작은 도량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보산사(寶山寺)', 보물산이다.
나도 그 사이 다른 조계종 사찰에서 지내면서 마련될 도량으로 가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위산사에서 함께 수행했던 몇몇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마스터 오신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모였다.
함께 건물도 살펴보고, 근처 카페에 모여 이런저런 청사진을 그렸다.
한국에도 마스터 도량이 생기다니!!
카페에서 나와 헤어지기 전, 마스터께서 내게 다가오셨다.
"한국에서 고생이 많은 거 잘 알고 있어요. 조금만 참아요... 얼마 안 되지만 용돈이에요."
울컥...
흰 봉투를 주시며 따뜻이 말씀해 주셨다.
난 전혀 예상 못한 일이라 눈이 둥그레져서 "아니에요 마스터,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쳤지만 불가항력.
이국에 있는, 또 아직 본격적으로 훈련받지도 않는 당신 제자 된 이에게, 손수 용돈을 건네주시는 어른.
그 어른이 내 선지식이신 게 너무 감사했다.
한국에서 몇몇 일정을 더 마치시고 마스터는 미국으로 돌아가셨다.
미국에서 오는 현안스님과 한국에 있는 원택스님과 나는 5월부터 보산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장애는 코비드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출가한 절에서 의무 소임을 살아야 하는 시기와 맞물려서, 상황을 설명하고 조정하는데도 꽤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차저차 위기도 겪고 쿵쾅거리다가 겨우 5월 입주를 목전에 둘 수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