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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06. 2018

북유럽은 정말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땅일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 살았으니 정서적으로도 잘 맞거니와, 동양인으로 태어난 이상 외국에서 살면 겪게 될지 모를 인종차별도 막연히 두려웠다. 여기에 뿌리를 내린 만큼, 깊게 뻗어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주변 친구들이 될 수 있으면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할 때도,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언어가 통용되는 우리나라가 좋았다.


 이 모든 문장들을 과거형으로 쓰게 된 데는 여러 계기가 있다. 우선 이상을 좇으면서도 실정에는 어둡던 대학시절과 달리 사회에 나와 사용처도 모를 세금을 꼬박꼬박 내기 시작한 것이 첫 번째이다. 외국의 거래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출장을 다니며 나라별로 어떻게 다르게 사는가를 직접 목격한 것이 두 번째이다. 또한 어찌 보면 가장 슬픈 얘기인데, 인종차별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각종 폭력이나 비극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피부로 느끼게 된 것도 컸다. 어려서는 무슨 일 있으면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집에만 일찍 들어가면 평생 안전하게 잘 살 줄 알았지(?)





 '유독 살기 힘든 나라에 태어났구나'라는 좌절감에 처진 어깨가 최저점을 찍을 무렵, 영국에서 활동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로망 국가(?) 스칸디나비아의 5개국에 대한 견문록인데, 마침 덴마크식 행복 Hygge(휘게)니 스웨덴의 Lagom(라곰)이니 하는 키워드들이 휩쓸고 간 탓인지 그들은 어떻게 행복의 대명사가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아마도 모두가 찬양하는 북유럽에 대해 가장 시니컬하게,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접근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화목하고 부유해 보이는 가정도 다 그마다 골칫거리가 있다고 하면 누가 봐도 힘든 집안 사정 듣는 것보다 조금 더 솔깃해지는 사람 심리라고 할까 (...) 저자는 웬만하면 일을 덜 하고 싶어 하는 높은 나태 지수, 세금은 선뜻 내지만 그만큼 명품 쇼핑을 위해 빚을 지기 마다하지 않으며, 죽기 전에 꼭 다 갚아야지 하는 부담감 없이 살아가는 호쾌한 경제관념 등을 이야기하며 북유럽 국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폭로한다. 
 
 소박한 삶과 균형,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는 뜻의 '라곰' 이라는 단어를 우리 나라에서는 스웨덴 식 행복의 방식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스웨덴의 놀라운 국민적 합의와 통합 이면에는 나치에 동조했던 역사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지 못한 수치심이 숨어 있고, 심지어 1922년 초에는 인간 개량 정책이라는 괴이한 프로젝트로 소위 '열등한' 여자들과 남자 소년범들에게 강제 불임 시술을 자행한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도 있다. 그들은 실제로 이를 통해 다음 세대가 더 우월한 인종으로 거듭나리라 믿었다. 또한 스웨덴인들은 혼자 사는 것을 당연시하고 이혼율도 가장 높은데, 이러한 자립심은 양성 평등을 이루는 데는 주요하게 작용했을 지 몰라도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능력중심주의 사회를 만드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이래도 북유럽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냐고?

 이 책을 다 읽고나자, 북유럽에 대해 예전처럼 핑크빛 콩깍지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북유럽 클라이언트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보면 '다음 달까지 휴가야!' 라는 한 줄의 명랑하고 무책임한 자동응답 답신을 받고 빨리빨리가 미덕인 나라의 국민으로서 허망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북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곧 행복에 대한 하나의 희망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모두가 늙고 혼자 사는 사회가 되어가고, 복지제도도 삐걱대는 북유럽에서 행복의 비밀을 하나로 찾아보라면 "삶의 자율성" 이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평등한 교육 기회, 자기실현, 일과 삶의 균형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야기하다보니 하나같이 대한민국에 결여된 것 투성이다.



 

 그렇다면 삶의 자율성이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문제일까? 지난 해 바뀐 새정권은 저소득층의 임금/소득을 늘려 소비증대를 유도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제안했다. 분배로 성장을 유도하는 이 정책의 일환으로 최저임금이 오르고, 국민연금 보험료가 올랐으며 이제 서서히 재산세 등 증세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러나 시장 논리로 인해 가게는 더이상 아르바이트를 뽑지 않고, 마트에 셀프 계산대를 세워 인력을 줄이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는 등 일각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는 여전히 비싼 임대료로 자영업자를 옥죄는 기득권 건물주를 탓하기도 하고, 이윤을 포기하지 못해 직원을 줄이기를 택하는 대기업을 비난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모두가 알아서 양심적으로 행동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북유럽을 복지의 롤모델로 삼기 앞서, 우리나라의 고장난 부분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부의 대물림, 인맥 중심의 인사로 인한 부정부패,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토론 문화의 결여 등 각자가 체감하는 대한민국의 문제는 모두 다르면서 또 모두 비슷할 것이다.


 외국인들로부터 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잠깐 떠올려본다. 다녀간 외국인들은 대부분 한국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마저도 도둑맞는 자국과 달리 소매치기가 적다며 기뻐하고, 밤 11시 이후에 돌아다녀도 비교적 안전한 국가라는 데 안도한다. 언어도, 글씨도 예쁠 뿐 아니라 행정처리 속도만큼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다. 의료복지도 비교적 잘 돼 있어 부러움을 산다(실제 미국인들은 치과 치료를 위해 가까운 다른 나라에 다녀오기도 하는데, 차라리 그 편이 싸다고 한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탈조선'을 꿈꾸고 있는데 말이다.

 타자의 시선이란 이렇듯 늘 빗나간다. 마이클 부스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자기는 다만 잘난 체 하는 영국인이며, 북유럽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집요하게 묻고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 지 면밀히 관찰했을 뿐 한 나라에 대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완전히 객관적이고 정확한 묘사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마이클 부스를 훌륭한 작가로 만드는 것은 객관적인 분석이 아니라, 관찰자적 한계를 도리어 활용하는 데 있는 듯 하다. 그가 영국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북유럽에서 주눅들지 않고 완전히 외국인으로 행동하며 인류학적 실험을 하는 부분은 특히나 눈물이 글썽할 만큼 웃겼다. 생각할 여지를 주면서도 동시에 즐거운 읽을 거리라는 점에서 모처럼 완벽한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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