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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24. 2017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아날로그의 반격 (The Revenge of Analog)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척하면서 은근히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대부분 같이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가끔 뭔가가 유명해지기 전에 좋아하게 되는 운 좋은 (?) 경우에는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하면서 흐뭇해하곤 한다. 친구들이 다같이 만날 때 맛집 추천이나 만날 장소를 정하는 건 심히 부담스러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 영화, 책은 끝도 없이 추천하고 싶고, '좋았다'라는 말을 들을 때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러니까 나는 뭔가를 좋아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나 같은 사람이 분명 많은 모양이긴 하다. 요즘 SNS나 어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상당수가 모두 사용자들의 선호를 기반으로 무엇을 좋아할 지를 선별해서 상단에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때로는 내가 '좋아요' 한 게시물을 바탕으로, 때로는 내 친구들, 또래들의 선호를 기반으로 그들은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만 보여준다.


 영화를 고를 때, 지금 당장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이런 서비스는 상당히 유용하긴 하다. 그런데 이 서비스에는 큰 단점이 하나 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성이 커지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 있어 매우 게으르고 소극적이어진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귀여운 고양이, 화려한 네일아트, 예쁜 가방, 커피가 맛있는 핫한 까페에만 관심이 있다고 굳게 믿고  (이것들을 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진들은 아예 내 눈앞에서 치워버린 채 이것들이 '랜덤'한 사진이라고 말한다. 왓챠는 좀 바빠서 혹은 기회가 없어 영화를 통 못보면 '아직도 이 영화를 안 보셨나요?' 라고 다그친다. 기분이 묘하다.




 어렸을 때 '내 취향'이 생겨날 무렵, 닥치는 대로 음악을 듣고 싫은 건 걸러내고 좋은 건 간직했다. 주말마다 가족이 앉아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학교 친구들과 함께, 또는 내가 직접 골라서 보는 경우도 늘어갔다. 누구도 나에게 무엇을 좋아하라고 권하지 않았고, 나는 자유롭게 수많은 선택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에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더해져 더욱 기뻤던 듯 하다. 그런데 요즘은 좀체 좋아하는 음악이 없다. 조금 피곤한 날은 핸드폰 속 담긴 음악들이 소음처럼 들리기도 할 만큼 다소 심드렁한 느낌이다. 예전보다 더 좋은 새로운 곡들이 많아졌는데, 왜일까?


 데이비드 색스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에게 손으로 만져지는 '아날로그'가 다시 떠오르는 최근의 트렌드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트렌드는 방문객들이 직접 LP를 고르고 턴테이블을 이용할 수 있는 뮤직 라이브러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턴테이블 앞에 앉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이 걸을 때, 일할 때, 운동할 때 심심함을 달랠 겸 듣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닌 그 곳에 가는 목적이자 유일한 행위가 된다. 어플이 추천하는 음악에 시들해 졌을 때, 수천 장의 LP 중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 오직 음악 듣기만을 위해 앉으면 모처럼 집중이란 걸 해보게 된다. 음질이니, 울림이니 그런 건 모르는 '음알못'이라도 좋다. LP 뿐인가, 저자는 몰스킨, 필름 카메라, 아이패드와 교육의 문제까지 나아가며 다양한 분야에서 아날로그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혹자는 이 책을 두고 아날로그는 반격하는 것이 아닌, 몰락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미던 일상용품에 브랜딩이 더해져 사치품으로 겨우 명목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정말 그런지도 모르지만 일상품이던 시절보다 오히려 우리 삶에 새삼스런 의미를 더한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편리함은 유혹적이다. 누군가 뭔가를 대신 해준다는 건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손으로 쓰는 편지보다 톡톡 두드려 바로바로 주고받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분명히 신속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편리하고 신속한 것들은 그만큼 내게서 생각할 기회를 앗아간다. 노트에 꾹꾹 적는 동안은 내가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가? 를 돌이켜 생각할 충분한 노동 시간이 소요된다. 친구들과 CD를 돌려 들으며 고른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어플이 '회원님이 좋아하실 음악 20'을 골라줄 때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만난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런 경험들을 돌이켜 봤을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할 지 직접 선택하는 즐거움만은 편리함에 내어주지 않아야 겠다는 다짐이 든다. 편리함을 그토록 갈망하던 우리가 조금 번거롭더라도 원하는 것을 택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만으로 아날로그의 반격은 정말 시작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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