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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호 May 05. 2016

長에서 내려오면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어리석은 풍홍)

장수왕한테 죽은 풍홍의 어리석음


서기 438년, 중국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풍홍. 한 때 풍홍은 중국 북연의 왕이었지만, 북연이 북위의 공격을 받아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고구려로 망명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망명지인 고구려에서 죽음을 맞는다. 한 때 중국의 왕이었던 그는 왜 고구려에서 목숨을 잃었을까?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는 12월. 직장인에게 이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추울 때다. 이는 12월에 인사발령을 내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인사발령이 나면 일부는 승진의 기쁨을 누리지만, 많은 직원들은 기쁨을 느끼지 못한 채 하염없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특히 단순 승진 누락이 아닌 강등을 당하면, 칼바람이 불어 체감온도가 내려가는 겨울날씨마냥 서러움이 배가 된다. 강등의 백미는 남을 평가하는 팀장에서 남으로부터 평가를 받는 팀원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예전에는 후배가 자신의 상사로 승진하거나, 자신이 평가자에서 피평가자로 내려오면 스스로 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요즘은 고령화에 내수 경제 침체가 겹치면서 직장인들은 회사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인기 만화 <미생>에서 오차장을 찾아온 선배가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라는 말을 했을까?

 문제는 팀장에서 팀원으로 신분이 바뀌면 다시 팀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데, 몸에 배인 팀장의 습성은 그리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지시조 어투, 손짓이 나온다. 

 김부장은 해가 바뀌면서 팀장에서 팀원으로 내려왔다. 최근 5년간 팀장을 하면서 팀을 잘 다독였건만, 회사의 조직이 축소되고 무한 경쟁 시대에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팀원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팀원으로 내려온 것도 억울한데 모시는 팀장은 자기보다 후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못 내고 자존심을 누르면서 하루하루 출근하였다.

 5년 동안 실무를 내려놓다가 다시 하니, 모든 업무가 새롭다. 엑셀, 파워포인트의 기능도 새롭고, 품의방법도 서류에서 전자결제로 바뀌어 시스템에 로그인하면 어느 화면으로 들어가야 하고 결제라인은 어떻게 설정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실무에 서툰 김부장, 슬슬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면서 말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김대리! 미안한데, 거래처에 대한 담보설정 품의는 어느 화면에 들어가야 하지?”

 좋은 말도 세 번 들으면 싫다고 했던가! 똑같은 질문을 세 번째 받는 김대리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에 짜증이 들어갔다.

 “부장님! 벌써 세 번째 알려드리는 것이잖아요?”

 새파랗게 젊은 김대리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김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부아가 났다.

 “김대리! 아무리 내가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한때는 나도 팀장이었다. 내가 너 따위한테 이런 수모나 겪고 참, 세상 못할 짓이네.”

 김부장의 호통에 김대리는 움찔했다. 하지만, 자신도 쉽게 물러서기는 싫었다. 그래서 주변 동료들에게 김부장을 험담하기 시작한다.

 “김부장님은 아직도 자신이 팀장인 줄 아셔. 이제는 팀원이신데, 걸핏하면 지시조로 말하시는데, 좀 너무하지 않냐?”

 이 얘기를 들은 동료들도 똑같은 심정을 가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맞아. 한 번 가르쳐줘도 모르시고, 그렇다고 말씀을 예쁘게 하시나? 자꾸 안 가르쳐 준다고 하시면서 화부터 내시고. 이참에 우리 팀장님한테 이를까?”

 팀원들의 웅성거림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김부장에 대한 악평은 팀장에게도 들어갔다. 상황이 이쯤 되자 팀장은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 김부장님은 지금 팀장이 아닌 팀원이면서 너무 고압적으로 나가시기 때문에 팀 분위기를 해치고 있어. 이러다가는 나한테도 안 좋을 것 같아. 이참에 다른 팀으로 보내야겠다.’

 자신의 선배인 김부장을 회의실로 부른 팀장. 정중하게 김부장에게 말씀드린다. 

 “선배님! 죄송한데, 다른 팀으로 이동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상무님께 말씀드릴까 합니다.”

 후배인 팀장으로부터 원치 않는 이야기를 들은 김부장. 안 그래도 서러운데 팀장의 얘기를 들으니 또 다시 가슴에 열불이 났다.

 “박팀장!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팀장 시절 때 너를 어떻게 챙겼는데, 이제 와서 나를 토사구팽 시키려고 하나?”

 김부장의 성난 목소리에 팀장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팀장은 이 상황을 자신의 상사인 본부장에게 그대로 전달했고, 이를 들은 본부장은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연말에 김부장을 대기 발령시켰다. 




 한때 북연의 왕이었던 풍홍도 김부장과 비슷한 경우다. 고구려에 망명한 이상, 그는 고구려의 신하, 백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바뀐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처럼 거만하게 굴었다. 이를 보다 못한 고구려 장수왕은 극약 처방을 내린다. 풍홍을 죽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6 장수왕 편에 아래와 같이 나온다.


위나라 사람들이 연나라를 자주 치자 연나라가 날로 위급해지게 되었다. 연나라 왕 풍홍이 “만약 사태가 급하면 동쪽으로 고구려에 의지하다가 후에 일어나기를 도모하겠다.”고 하고, 상서 양이를 몰래 보내 우리에게 맞이해 줄 것을 청하였다. (중략) 연나라 왕 풍홍이 요동으로 왔을 때 왕이 사신을 보내 위로하고 “용성왕 풍군이 벌판으로 행차하느라고 군사와 말이 피곤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풍홍이 부끄럽고 화가 나서 천자를 칭하면서 왕을 꾸짖었다. 왕이 그를 평곽에 두었다가 곧 북풍으로 옮겼다. 풍홍이 평소 우리나라를 업신여겼는데, 여전히 정형과 상벌을 마치 제 나라에서 하듯이 하였으므로 왕이 그의 시자를 빼앗아 버리고 그 태자 왕인을 잡아와 인질로 삼았다. 풍홍이 이것을 원망해서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표를 올려 맞이해줄 것을 구하였다. (중략) 왕은 풍홍이 남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장수 손수와 고구 등을 보내 풍홍을 북풍에서 죽이고, 아울러 그 자손 10여 명도 죽였다.

* 왕은 고구려 제20대 장수왕,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의미함

직장인도 위 풍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 즉 주제파악을 잘 해야 한다. 자신이 더 이상 팀장이 아닌 팀원이면, 팀원답게 행동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몸에 배인 옛 습관을 버린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올라가는 법만 배웠지, 내려가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권위의식을 버리는 것이 더더욱 힘들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버려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내려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이 풍홍처럼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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