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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호 Mar 25. 2016

다니던 회사가 바뀌는 것은 막을 수가없다.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소속이 바뀌는 것을 어찌 막으랴!

입사 때 받은 삼성 배지(정품) 판매합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해 보니 이제는 또 한화의 가족이 된다 길래 처분하려합니다. 그룹 연수 때 한두 번 착용해서 새거나 다름없습니다. 두 개 있는데요. 하나는 받침대가 없네요. 가격은 8400원 희망합니다. 한화 배지나 인터스텔라 왕십리 아이맥스 좀 좋은 자리 티켓으로 교환합니다. 판교역 근처에서 직거래로만 가능합니다. 문의는 댓글로만 달아주세요.


위 내용은 2014년 한 때 온라인을 달구었던 ‘입사 때 받은 삼성 배지 팝니다.’ 라는 글이다. 당시 직원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조선일보 2014년 11월 27일자 ‘삼성배지 팝니다. 삼성맨들 허탈감에 술렁.’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도 언급되었다. 


  삼성그룹은 2014년 11월에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삼성테크윈, 삼성텔레스를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이후 2015년 7월에 삼성 SDI 케미칼 사업 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 화학을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합병, 분할, 주식양수도, 영업양수도 등 M&A는 기업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자고 일어나보니, 내가 다니는 회사의 주인(최대 주주)이 바뀌는 것이다. M&A가 발생하면 언론은 신성장사업 발굴, 미래 먹거리 창출, 유망 산업으로의 집중을 위한 구조 개편 등 회사나 지배 주주의 입장에서 기사를 내보낸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삼성 그룹의 M&A에는 직원의 심경을 다룬 기사가 나왔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화그룹도 만만치 않게 큰 기업집단인데, 삼성그룹 직원에서 한화그룹 직원으로 된 것만으로 허탈하다고 하니 과연 삼성 그룹은 국내 최고의 그룹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특히 신입사원의 경우는 허탈감이 더했을 것이다. 합격 소식을 전할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던 부모님의 얼굴, 귓가에 스친 친구의 부러운 목소리,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등 입사 당시의 모습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에 위와 같이 SNS에 글을 올렸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주인이 바뀌는 경우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발생하는 슬픈 현실일까? 과거 역사를 보면 꼭 현대인에게만 발생하는 불행은 아니었다.




 2015년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 징비록에는 왜군 장수와 그의 수하들 여러 명이 경상 우수사 박진에게 항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한 박진 앞에서 조총을 내려놓고 투구를 벗는다. 그리고 항복을 청한다. 항복한 왜군 장수는 훗날 김충선이라는 이름을 받는 사야카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코니시와 함께 전공을 다툰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이었다. 사야카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명분 없는 전쟁을 반대했으나, 어쩔 수 없이 출병하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에 상륙한 후 부산성을 점령하자마자 조선에 투항한다. 

 그런데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야카 혼자서 투항한 것이 아니라, 사야카를 따르는 부하들도 함께 투항한 것이다. 2015년 5월 31일 방영된 역사저널 그날 ‘항왜 왜장 사야카, 조선에 투항한 날’ 편에 따르면 사야카와 함께 항복한 부하들은 약 3천명이라고 한다. 사야카는 어찌 되었든 간에 자신의 의지로 조선에 투항한 것이다. 하지만 사야카와 함께 한 3천명의 부하들도 사야카처럼 자신의 의지로 투항했을까? 기록이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사야카처럼 조선에 투항을 희망한 이는 아예 없거나 아니면 정말 극소수였을 것이다. 장군을 따라 조선에 투항하면 다시는 일본의 가족을 못 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부하는 없다. 그래도 부하들은 어쩔 수 없이 사야카와 함께 조선에 투항했다. 즉 주인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국적이 바뀐 것이다. 

(훗날 사야카의 부하들은 항왜가 되어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위해 싸웠으며, 이괄의 난때 반군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중국 랴오닝 성 번시 현에는 번시 박씨 집성촌이 있다. 집성촌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韓)민족의 후예이며, 시조가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박씨는 박혁거세를 기원으로 하기 때문에 중국에는 박씨가 많지 않다. 실제로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는 박씨 중 상당수는 구한말 때 건너간 사람이라고 한다. 반면 번시 박씨는 1600년대에도 중국에 살고 있었다. 번시 시의 역사지에 따르면, 1659년 “박영강 등 번시의 박씨 5형제에게 토지를 나눠줬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에도 중국에서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번시 박씨의 시조는 언제 어떻게 중국에 건너가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조선 15대 임금인 광해군 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국제 정세는 오랫동안 중원의 패자로 군림한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일어나는 시대였다. 국력이 약해진 명나라는 후금의 압박을 받자 조선에게 원병을 요청한다. 조선은 명나라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강홍립을 도원수로 하여 병사 1만 3천명을 보낸다. 하지만 광해군은 국제 정세를 읽으며 강홍립에게 필요하면 후금에게 항복을 하라고도 지시한다.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강홍립은 압록강을 건넌 후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전투를 관망하다가 항복하였다. 학계에서 명확하게 규명은 되지 않았지만, 번시 박씨의 시조는 강홍립 장군을 따라 압록강을 넘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병사 중 1명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도 앞서 본 사야카의 부하들처럼 강홍립의 부하들도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적이 바뀐 사례다. 1만 3천명의 병사 중 광해군이 강홍립에게 내린 밀지를 알고 출정한 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경영층은 M&A 관련 의사결정을 할 당시 직원 대다수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리지 않는다. 초기에는 전략부서나 재무부서 직원 중 일부만 해당 내용을 알 뿐이다. 많은 직원들은 내용을 전혀 모르거나, 사적인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정보를 시나브로 알게 된다. 이후 계약이 체결되고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시가 진행될 즈음에 대다수의 직원이 알게 되지만, 이때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 없다. 국왕이나 장수의 의사결정에 따라 국적이 바뀐 병사들처럼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따라 내 양복 배지와 명함의 모양, 그밖에 각종 신고 서류의 신청인 란에 쓰는 글들이 바뀌는 것이다.

 나 하나의 힘은 미미하다. 위에서 바꿔 버리면 내 자신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과거에는 국적까지 바뀌는 경우도 있었는데, 뭐 회사 정도야 그럴 수 있지 않냐!’ 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순응하고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뜻을 펼치는 것이 자신한테 좋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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