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헤겔의 미발표된 청년 시절의 논문집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 Der Geist des Christentums und sein Schicksal 헤겔이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정교사 하던 시절의 글들 종교와 신학 사회비판 등이 주를 이룬다. 이 글들은 기독교, 칸트, 쉴러, 피히테 그리고 그의 친구들인 셸링과 횔더린 등의 사상이 많이 나온다.
② 쉴러의 칸트 윤리학 비판과 “아름다운 영혼”
자신의 대표 미학 저술인 『우아함과 존엄』에서 쉴러는 칸트 윤리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칸트 윤리학의 변형을 모색한다. 쉴러는 의무와 경향성을 대립시키는 칸트의 엄격한 의무 중심의 윤리학에 반대하여 도덕과 경향성은 Neigung(독), inclination(영) (취미, 기호 등 = 하고 싶은 것, 끌리는 것)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를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샤프츠베리, 괴테, 쉴러, 헤겔 등도 사용한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운 영혼 이란 쉽게 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의무나 도덕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보통 의무는 하기 싫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칸트 같은 사람은 (도덕을) 재미있게 하면 그것은 도덕이 아니다, 취미(경향성)이다 라고 한다. 도덕은 오직 하기 싫은 일 혹은 어려운 일을 할 때 성립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감성적인 욕구를 의지로 극복하고 의무를 다할 때 성립한다는 것이다.
즉 천성이 동정심으로 가득차고 남을 도울 때 기쁨을 느껴 친절을 베푸는 경우 이는 칭찬을 받을 일이기는 하나 도덕적 가치는 없다 라고 한다.
③ 아름다운 영혼의 기원은 아구스티누스에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다. 이용을 위한 것이다. 신의 사랑 안에서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
④ 아름다운 영혼 개념은 괴테의 자전적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 에서도 나온다. 어거스틴을 발전시킨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제6권에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을 삽입하여 경건주의적 종교 감정을 지닌 한 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함으로써 의무와 충동의 화해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 "어떠한 것에서도 제게는 계명의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를 이끌어 저로 하여금 언제나 정도를 걷도록 하는 것은 충동입니다. 저는 자유롭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따르며, 거의 아무런 구속도 회한도 없습니다.“
경건주의 : 성경보다는 영성을 강조
⑤ 실러 : 아름다운 영혼 개념의 칸트주의적인 발전 : 의무로의 경향성
⑥ 공자와 아름다운 영혼
이런 사례는 동양의 성인 공자가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라는 말을 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욕망과 법칙이 완전히 일치, 조화 되어 나타난다. 즉 위의 아름다운 영혼처럼 충동을 따르더라도 일탈이나 범죄가 아니라 도리어 착하고 아름다운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성현의 경지이다.
⑥ 그런데 쉴러의 고향 후배인 헤겔과 그의 친구들은 이를 더욱 과격하게 수용한다. 즉 칸트의 도덕 법칙 즉 정언 명령 등을 categorical imperative 법칙의 독재로 보고 이런 경우 개별자는 일반법칙의 노예 상태로 빠짐을 경고한다. 예를 들어 칸트의 정언명령 (1형식) 즉 너 자신의 행동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의 원칙이 되도록 행동하라 등이 있다.
설명 : 담배 꽁초 버리기
칸트의 보편주의 윤리는 (기독교의) 율법주의와 비견된다. 법만 지키면 된다. 혹은 법만 지키면 구원 받는다.
# 횔더린 북방- 법칙의 독재 히페리온 법의 형식주의 비판 히페리온
이런 보편적 도덕 법칙과 개인적인 취미 (경향성)와의 연결을 청년 헤겔은-프랑크푸르트 시대- 화해(Versöhnung) 혹은 속죄(贖罪) (신과 인간의 화해) 등으로 표현한다.
이런 인간성의 두 극단의 조정과 화해를 헤겔은 다시 생명 (das Leben) 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쉴러나 그의 제자 헤겔이 말하는 화해의 윤리는 이런 대립을 초월한다. 또 그들은 칸트의 보편성의 윤리를 성경의 십계명과 각종 율법과도 동일시 한다.
그런 면에서 예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런 법칙윤리, 율법주의에 대한 대항으로 본다. 그래서 청년 헤겔은 예수를 아름다운 영혼의 구현으로 본다. 이를 성경의 구절 즉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라고 하기도 한다.
⑦ 맥베스 – 운명과 생명 / 악한 영혼에 대한 통일철학적 해석
충동과 도덕의 일치로서의 아름다운 영혼 개념은 헤겔은 화해 혹은 생명 이라고 다시 풀어섰다. 그런데 헤겔의 하나의 특이한 면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다루면서 나타난다. 이는 달리 말해서 아름다운 영혼의 반대인 악한 영혼에 대한 해석이다.
도덕이나 법 특히 법은 그것이 위반될 때 처벌이 있다는 점이다. 도덕과 법은 둘 다 사회 규범이다. 단 후자가 강제 규범이라는 것이 다르다.
문제는 도덕이나 법을 무시하고 어기는 경우이다. 즉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보통은 법에 의해서 강제적인 처벌을 받는다. 법치 국가에서는 개인적인 복수 역시 불법으로 간주하고 이를 국가에 위탁해야 한다. 사적인 복수는 불법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법이 아니라 직접 피해자에게서 복수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왕위 찬탈이나 침략, 전쟁 등의 경우는 법이 무시된다. 동태복수법 탈리오 원칙
⑧ 헤겔은 복수를 칸트의 율법주의 혹은 보편주의 윤리학에 대립시킨다. 이런 사적인 복수를 그는 운명 (Schicksal) 이라고 한다. 법에 의한 집행 보다 복수가 더 낫다는 논리이다. 물론 이는 법치국가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경우에서는 이를 인정할 수도 있다. 즉 전쟁과 국왕에 대한 처벌이 문제되는 경우이다.
바로 그런 경우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악한 왕 맥베스에 대한 맥더프의 복수이다. 문제는 국왕이 전 국왕을 죽이고 등극한 경우 다스릴 법이 없다.
스코틀랜드의 왕족이자 용맹한 장군으로 글라미스의 영주인 맥베스는 그의 주군 덩컨왕을 죽이고 왕이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덩컨 왕의 신하였던 맥더프에게 죽음을 당한다는 스토리이다. 맥베스는 맥더프의 자식들도 죽인 바가 있었다.
이런 스토리를 두고 헤겔은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범죄자는 타자의 생명을 해치는 줄 알지만 실은 그는 자신의 생명을 해친 것이다. 이런 생명 개념은 흔히 민족혼, 민족 정신 등으로 표현된다. 혹은 인간 정신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임으로서 인간 정신을 훼손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헤겔의 생명(das Leben) 개념이다.
맥베스는 자신이 살해한 친구 뱅쿠오의 환영을 보고 기겁을 한다. 여기서는 국법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친구인 뱅쿠오가 복수의 신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복수자(뱅쿠오의 악령)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죽인 자에 대한 동경(그리움)일 수가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글에는 그런 감정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맥베스가 뱅코의 유령을 보고 놀라고 자책을 하는 등의 대사를 보면 이런 해석이 이해가 될 수 있다. 이런 복수에 의해서 생명은 다시 회복이 된다. 이것이 바로 운명 개념이다. 복수를 통해서, 복수자의 응징을 당함으로서 그는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생명과 화해한다. 물론 맥베스에서는 그런 장면은 없다. 헤겔의 주관적인 해석이다.
이런 면에서 복수와 운명은 아름다운 영혼의 2부라고 할 수가 있다. 즉 아름다운 영혼의 부정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철학적인 악한 영혼 관념이다. 최후의 심판도 개인적인 심판이라는 점에서 청년 헤겔의 운명 개념이 상상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영혼이 법과 (선한)인격의 일치라면 악한 영혼이 당하는 복수는 법과 적(복수자)의 일치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