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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타스 Dec 16. 2019

[공황장애] 신체증상, 어지럼증.

난 이석증인 줄 알았지

공황장애가 정말 피곤한 병인 이유 중 하나는, 공황발작만이 병의 전부가 아니란 것이다.


공황발작을 겪고 나서 장애로 발전하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 몸이 진돗개 1호를 발령하는 바람에 정신이 피폐해짐은 물론이고 여러 부차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걷다가 헛구역질을 한다든지, 강박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든지, 온 신경계가 간지러운 듯한 느낌을 받는다든지, 과호흡으로 뇌에 구름이 낀 듯한 느낌을 받는다든지, 공황장애 증상은 참으로 다양하다. 근육이 뭉치는 것은 디폴트이고 이젠 내 눈 앞에 현실이 현실 같지도 않게 된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다양한 신체증상들 중 본인이 겪은 어지럼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형태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누구는 땅이 뒤집히는 듯하다고 하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고도 하고. 처음 필자가 어지럼증을 겪었을 때는 침대에서 일어나 생기는 기립성 저혈압쯤으로 생각하고 넘겼다. 샤워를 하다가 샴푸를 할 때 눈을 잠시 감았는데, 땅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분명히 눈을 감고 있는데 왜 어지럽지? 너무 무서워서 그 뒤로는 눈을 부릅뜨고 샴푸를 했다. 눈에 샴푸가 들어가든 말든 당장 어지럽고 미칠 듯한 느낌이 너무 무서웠다.


공황장애인들 대다수의 특기인 병명 검색하기를 발휘하여 네이버에서 ‘이석증’이라는 병을 찾아냈다. 귀 안에 몸의 평형을 맞춰주는 돌이 제 멋대로 굴러다녀서 균형을 못 맞추고 몸이 기우뚱하고 어지러운 거라나. 하지만 어느 병원을 가도 나는 멀쩡했다. 온갖 건강검진을 해봐도, 피를 뽑아봐도 나는 평균 이상으로 몸이 건강했다. 아마도 많은 공황장애인들이 공감하겠지만, 병원 쇼핑을 하며 내가 건강하고 멀쩡함을 입증받고서 결국 그 최후에는 정신과를 추천받게 되는 것이 이 병의 루틴 이리라.


여름에는 특히 더 심했다. 빈혈이 있는 체질이라 그 어지러움이 배가 되는 계절. 쨍한 햇볕을 받으며 학교로 향하던 도중, 나는 정문을 지나 걷다가 주저앉았다. 내 앞에 땅이, 풍경이 이상했다. 생경한 느낌의 이상함이 아니라(생경함을 느끼는 건 비현실감에 가까운 것 같다. 이건 나중에 비현실감편에서 쓰고자 한다) 무언가 뒤집히는 듯한 이상함. 아, 이대로는 더 걸을 수 없겠다.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것은 물론 온몸이 떨리고 토할 것 같아 근처 벤치에 앉았다. 단순히(단순하다고 하면 웃기지만) 발작만 올 때는 죽을 것 같은 느낌, 과한 심장박동만 이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젠 걷기조차 힘들다니. 결국 수업에도 조교 업무에도 지각하기 일쑤였고, 공황장애임을 밝히고 배려받기엔 너무 민폐라는 생각에 그냥 혼나고 말지, 하며 병을 숨겼다.


그러던 어느 새벽,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예기불안(공황발작에 대한 불안으로 공황발작 이전에 느껴지는 극심한 불안)이 찾아왔다. 미칠 듯한 불안으로 벌떡 일어나 방 안을 계속 걸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 안 미쳐. 방 안을 탑돌이 하듯 돌면서 이 주문을 얼마나 중얼중얼 외웠는지. 근데 말로만 괜찮다, 하고 마음으로는 공황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컸나 보다. 이 방이 날 옥죄는 듯한 느낌에 아무 옷이나 꿰어 입고 신발을 신고 뛰쳐나갔다. 어디든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방이 아닌 바깥이면 숨이 좀 더 쉬어질 것 같고, 바깥을 돌면 좀 나아질 것 같고. 그래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야가 점점 바닥에 가까워졌다. 내 몸이 땅에 붙는 느낌이 들었다. 어, 이상하다. 왜 이러지. 결국 발작이 터졌고 핸드폰을 꺼내 119를 눌렀다(전화는 걸지 않았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땅에 주저앉아 아주 각기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 좀 누가 살려줘. 119 번호를 지우고, 위에 주무시고 계시던 이모에게 전화했다. “이모 정말 미안한데.. 내가 지금 1층이거든. 나 너무 힘들어서, 무서워서 못 올라가겠어요.” 이모는 너무 놀라 잠옷 차림으로 후다닥 내려와 나를 데리러 오셨다. 겨우 어떻게 발작은 지나갔지만 손은 여전히 덜덜 떨렸다. 어떻게 잠을 잤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이모가 출근해야 하는데, 누가 내 옆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무서워서 이모를 꼭 붙들었다(지금 생각하면 이모가 맘고생이 참 심하셨다. 내 제2의 엄마).


땅을 밟으면 꼭 땅이 나를 먹는 것 같았다.

발이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움풍 들어가는 느낌에 놀라 서둘러 걸었다. 보도블록이 제 멋대로 움직였다. 환각을 보는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어지럼증이 심하면 원래 좀 감각이 이상해진다고, 괜찮다고 하더라. 참고 지나가면 사라진다고. 괜찮다고? 내가 정말 몸이 괜찮거나 말거나, 내 정신은 갉아먹힐 대로 먹히고 있는데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니에요. 괜히 부아가 났다.



발표불안편에서 “괜찮아져야 해”가 아니라 “ 괜찮구나하는 순간이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적었다. 앞으로 모든 증상 글의 끝맺음은 이런 ‘노력하세요식의 진부함으로 채워질  같아 두렵긴 하나, 그것이 진리임을 얄궂지만 부정할  없다. 어지러움이 찾아왔을   분간을 해야 한다.  어지러움의 원인이 정말 이석증인지, 빈혈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불안 때문인지.  번째 이유라면 어지럼증이 있을   순간 파악해야  부분은 내가 지금 불안한가 아닌가 이다. 상당히 어지러운 상태에서 극도의 불안감이  감싸고 있다면 대개  불안이 원인일 것이다. 그때에 내가 시작할 것은  어지러움이 정말 무섭지만,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서워, 힘들어, 어지러워, 고통스러워.’ 이런 스트레스와 염려는 공황의 주식이다. 관심종자인 공황이 몸을 불리는 데에  몫하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무섭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굴레를 뜯어버리는  ‘ 이상 무섭지 않다 말하는  자신이다.  노력은 아마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평소 불안이 심하거나 건강 염려가 깊은 분들은 특히. 근데  번에 나으면 공황장애에 ‘장애라는 명칭이 붙지는 않았겠지. 내가 단숨에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장애 아니겠는가.   계속 시도해보자. 괜찮다고. 필자는 어지러움이 찾아올  처음엔 너무 놀랐고, 발작이  만큼 힘들었고, 그리고 괜찮다고 가짜로라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짜로  척하면서 가짜로라도 무시했다(실은 엄청 쫄았는데). 그리고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을 , 약간씩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  어제 왔던 놈이네. 비슷한 느낌이야, 익숙해. 근데 어제도   없었지. 그러니 오늘도   없어. 이런 경험치가 쌓이기 시작했다. 경험치가 쌓이고 쌓이면 만렙이 된다. 적이 뭔지 제대로  수록  깨부수기가  쉽지 않은가.  익숙함이, 오랜 고통이 나를 살렸다. 같은 정도의 어지러움이어도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의 대처는 달랐다.




 정도 노력했으면 나아야 하는 거 아니야?’하고 스스로에게 따지고 울분을 터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지하게 노력하셨음을 안다. 한약이건 양약이건 온갖 약을  먹어보기도 하셨을 것이고,  동네를 뛰어다니며 울기도 하셨을 것이다. 내릴 곳이 아님에도 지하철에서  번이고 뛰어 내린 적도, 비행기에서 열두 시간 동안 예기불안을 겪으며 손에 땀을 계속 닦으며 고통에 울부짖기도 하셨을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 정도 노력이라는  아쉽게도 내가 정하는  아닌가 보다 싶더라. 나를 180 변화시키고, 이전의 기준을 죄다 무너트리고, 나의 가치관을 깨부수는 작업.


그렇다고 지금 글쓴이가 엄청 대단한 사람이 되었나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아직도 엄청 별로인, 그냥 지나가는 행인 1이다. 우연히 공황장애에 걸려 7년을 겪었다고 으스대며 증상에 대해 쓰는 브런치 작가 1이다. 그런데 이전의 나에 비하면  많이 다르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싸워서 이기려 드는  아니라  그러려니도 하게 되었고, 겁먹고 시작조차  했던 일들을 그냥 일단 시작은 하게 되었고. 친구란 무릇 이래야 한다 라는 잣대로 친구들을 질식시키는 짓도 반성하고 청산하게 되었고(이젠 오히려 무심하다고 욕먹어 화제). 운전면허 필기시험  62점으로 합격하고 깔깔 웃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집을 독파해서 90 넘겨야 한다며 눈에 불을 켰을 나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스스로는  살기 편해졌고, 남들이  대하기 편해진 사람이   같기는 하다.


어지러움을 무시하고,  생각을 바꾸고, 약이 필요할 만큼 아프면 약도 꼬박 먹고. 몸이 약한  같으면 운동하고. 가끔 지치면 ‘영원한 것은 없다. 이것도 지나간다.’ 하고 주문도 꼬박꼬박 외웠다.

사실 불안장애 환우들에게 마냥 힘내라, 일어나라, 노력해라 하고 소리 지르는 교관 같은 글을 쓰기 싫긴 하지만, 쨌든 굴레를 벗어나게  주는  의사도 상담사도 가족도 아닌 나였다. 불안감이 당연한 하루하루에 익숙해져 버린 채, 스스로의 처연함으로 새벽에 눈물을 쏟는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다면 그놈의 ‘노오력  필요가 있긴 하다(너무 힘들면 , 병원 가서 약을 타 먹으며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올려놓고  노력을 하시길 추천한다).


 하고 낫게 해 주는 한약도, 양약도, 상담도, 책도 존재하지 않는다(여러 병원들의 광고에 속아  ,  천을 쓰지 않으셨으면 한다).

 스스로를 믿자. 나는  생각보다도 의외로 강하더라.



베리타스

인스타그램: @record_of_panic_disorder

http://instagram.com/record_of_panic_dis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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