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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타스 Aug 05. 2023

여전히 약을 먹고 있어요.

많이 줄었지만

제목만 보면 공황장애인들에게는 재앙 그 자체처럼 느껴질 것 같은데, 여전히 약을 먹고 있다.

공황장애가 ‘언제’ 낫는 병인지, 약을 ‘언제’ 끊을 수 있는지, ‘언제’부터 삶을 그럭저럭 괜찮게 살게 되었는지,

‘언제’, ‘언제’, 언제‘의 물음들에 답하는 것이 피로해져서 그동안 그려서 올려왔던 인스타툰을 멈춘 지가 오래다.

공황장애가 당연히 편안해야 할 곳곳들에서 그것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뼈가 저리도록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들에겐 ‘언제’가 중요하다.

‘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모든 그림들에서 이야기해 왔는데, 이렇게 되면 조금 진이 빠지게 된다. 그래서 멈추게 되었다.


그래서, 나았나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나요,라는 질문에는 네, 그렇습니다. 약을 먹지 않아요.라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해야 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공황을 겪지 않고, 그것에 대한 약을 먹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공황이 두렵지 않으니 그걸로 나는 스스로 완치하였다 판단했다. 공황장애는 공황발작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여 역설적으로 공황을 겪게 되는 병이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더 이상 그것이 두렵지 않으니, 나는 공황장애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약을 먹고 있다. 이것은 나의 타고나기를 예민한 성정과 걱정을 많이 하는 습관들과 닿아있으므로, 공황장애에 대한 약은 아니다.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라고 일컬은 이유는 불안한 마음을 종종 누르고 싶어서 약을 먹기도 하니까, 불안장애는 크게 공황장애를 포함하고 있으니 아주 그것에게서 영영 멀어져 이세계로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어서다.


불안과 예민함은 나에게 뗄 수 없는 요소들이며, 그 또한 나 자신이다. 가끔 남들보다 과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아니, 있다. 그래서 약의 도움을 조금 받는다.

나머지는 내 몫이다. 달래기도 하고, 몸을 축 늘어트려보기도 하고, 그냥 포기하기도 한다.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이전의 인스타 계정(한때 1500명의 팔로워를 가졌지만 업로드가 없어 1200명으로 떨어진)에서 여전히 다이렉트 메시지로 ‘언제’ 괜찮아지셨냐는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그렇게까지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사회에 나가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한 사람의 몫을 한다. 언제 괜찮아져서 말끔한 몸과 정신이 되어 약 한 봉지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할 바이긴 하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나는 ‘언제’가 중요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하루를 잘 살아냈음에 스스로를 기특해하게 되었다.


왜, 덕계못이라는 말이 있다. 덕후는 계를 못 탄다는 말이다. 그렇게 ‘언제’에 집착해서 언제팬이 되어버리면 그 언제는 영영 붙잡을 수 없게 된다.

공황장애는 애초에 역설로 시작한다. 공황이 싫어서 집착하듯이 밀어내려고 노력하면 반드시 공황이 온다. 남의 일처럼 포기하라는 뜻이다.


시간과 불안을 덕질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유용하지만, 집착할 대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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